생태계의 물질 흐름을 닮자
순환경제의 핵심 개념은 자연 생태계의 물질 흐름을 닮자는 것이다. 자연 생태계 내의 물질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고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은 없다. 인간의 사회경제 시스템 내에서도 물질이 순환한다면 자원 및 쓰레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순환경제의 핵심이다. 순환경제 개념은 1966년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되었는데, 순환경제라는 용어는 1990년 피어스 및 터너가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학자들 사이에서 개념적으로 논의되는 순환경제가 정책적 의미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이다. 특히 2010년 순환경제 전문 기관인 앨런 맥아서 재단이 창립되면서 순환경제 관련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2015년 EU에서 순환경제 실행계획이 발표되면서 순환경제 관련 정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물질 이용의 흐름을 바꾸자
순환경제란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고 재생 원료 기반의 물질용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물질 이용의 총량을 줄여야 한다. 재생 원료만으로 필요자원 충당이 가능해지려면 물질 소비 총량이 증가해서는 안 된다. 둘째, 재활용률이 100% 가까운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 현재 전 세계 생활폐기물의 평균 재활용률은 20%에 불과하다. 100개 중 20개만 다시 재생 원료로 순환하고 나머지 80개는 쓰레기로 버려진다. 셋째, 재생 원료의 품질이 높아져야 한다. 업사이클링이 필요하다. 재생 원료의 양이 천연자원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야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원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
앨런 맥아더 재단에서는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5가지 목표와 10가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순환경제로 가기 위해서 제품 생산단계 디자인을 바꿔야 하며(목표1),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 없이 다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목표2). 그렇지만 이런 목표는 경제 시스템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목표3). 물질 이용 방식의 변경이 경제 시스템의 파괴나 몰락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과 인프라, 기술이 필요하고(목표4), 경제 시스템 내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업이 필요하다(목표5).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 전략으로 기존의 3R을 넘어 10R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10R은 스마트한 제품 생산 및 사용(R0 Refuse, R1 Rethink, R2 Reduce), 제품 및 부품의 수명연장(R3 Reuse, R4 Repair, R5 Refurbish, R6 Remanufacture, R7 Repurpose), 물질의 유용한 활용(R8 Recycle, R9 Recover) 3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1그룹은 제품 사용을 원천적으로 줄이거나(Refuse), 하나의 제품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거나 한 개의 제품이 여러 기능을 가지게 하는 등 새로운 접근으로 제품 사용을 줄이거나(Rethink), 제조공정의 효율성을 높여 원료 사용을 줄이는 방법(Reduce)을 통해 물질 사용량을 줄이는 전략이다. 2그룹은 버려지는 제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거나(Reuse), 고장 난 제품을 수리해서 수명을 연장하거나(Repair), 오래 사용한 제품의 기능 및 성능을 복원하거나 업그레이드해서 수명을 연장하거나(Refurbish), 버려진 제품의 부품을 신제품과 동등한 수준으로 다시 제조하거나(Remanufacture), 버려진 제품 혹은 부품을 다른 용도로 사용(Repurpose)하는 것을 말한다. 3그룹은 물질을 재활용(Recycle)하거나 에너지 회수(Recover)를 통해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순환경제는 환경문제가 아닌 산업 문제다
재활용 체계를 강화해 양질의 재생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문제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원료를 공급하는 문제다. 재생 원료 공급이 되지 않거나 불안정하면 기업들의 산업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를 여전히 외부 장식용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앞으로는 ESG가 기업 내부 의사결정에서 실질적인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 당장 가격이 비싸다고 재생 원료 사용을 기피하거나 재생 원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재생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순환경제라는 나비가 일으키는 바람은 미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태풍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태풍에 휩쓸려 도태될 것인지 태풍을 타고 멀리 도약할 것인지는 우리의 준비에 달려있다. 우리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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