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Intro 02


 


생태계의 물질 흐름을 닮자

올해는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발간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2년 3월 출간된 이 보고서는 인구 급증, 급속한 공업화, 식량부족, 자원고갈 및 환경오염으로 100년 이내 경제 성장이 멈출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예언했다. 출간 당시 큰 충격을 줬지만 이후 보고서에서 예견한 만큼 인구도 증가하지 않았고 식량부족과 자원고갈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 인간의 기술 진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모델링으로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간 로마클럽은 틀렸다는 비웃음을 받았지만 요즘 이 보고서는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등 신흥국가들의 경제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전 세계 자원소비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 위기도 심각해지고 있다. 1900년의 전 세계 자원소비량은 70억 톤에 불과했다면 2017년 920억 톤으로 증가했고, 2050년이 되면 약 1,800억 톤으로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원소비량의 증가는 앞으로 자원채굴 및 소비로 인한 생태계 파괴, 자원고갈로 인한 자원공급 부족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다.

세계 최대 경영컨설팅 기관인 액센츄어는 2050년이 되면 자원 공급량이 최소 100억 톤에서 최대 480억톤 부족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원소비량 증가로 인해 2000년대 이후 자원가격 및 상품의 실질가격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전략자원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국가의 자원 무기화 경향이 증가하면서 자원 안보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와 같은 물질 소비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이다. 자원공급 부족과 기후 위기 등 생태환경 위기 심화로 인해서 자원 이용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 및 갈등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는 2000년대 이후 심각해지는 자원 및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대두되었다. 현재의 경제시스템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 시스템의 대안으로 순환경제가 부각된 것이다. 순환경제의 핵심 개념은 자연 생태계의 물질 흐름을 닮자는 것이다. 자연 생태계 내의 물질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고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은 없다. 인간의 사회경제 시스템 내에서도 물질이 순환한다면 자원 및 쓰레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순환경제의 핵심이다. 순환경제 개념은 1966년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에 의해 처음으로 제시되었는데, 순환경제라는 용어는 1990년 피어스 및 터너가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학자들 사이에서 개념적으로 논의되는 순환경제가 정책적 의미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이다. 특히 2010년 순환경제 전문 기관인 앨런 맥아서 재단이 창립되면서 순환경제 관련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2015년 EU에서 순환경제 실행계획이 발표되면서 순환경제 관련 정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물질 이용의 흐름을 바꾸자

순환경제란 물질 이용의 전면적 전환을 의미한다. 자원을 채굴하고 사용한 후 바로 폐기하는 선형경제(linear economy)에서 벗어나 자원을 반복적으로 순환 이용하는 경제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순환경제란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고 재생 원료 기반의 물질용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물질 이용의 총량을 줄여야 한다. 물질 소비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순환경제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100개의 자원을 소비해서 100개의 쓰레기를 다시 재활용했는데, 소비가 150개로 증가하면 50개의 천연자원은 신규로 투입될 수밖에 없다. 재생 원료만으로 필요자원 충당이 가능해지려면 물질 소비 총량이 증가해서는 안된다.

둘째, 재활용률이 100% 가까운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 현재 전 세계 생활폐기물의 평균 재활용률은 20%에 불과하다. 100개 중 20개만 다시 재생 원료로 순환하고 나머지 80개는 쓰레기로 버려진다. 셋째, 재생 원료의 품질이 높아져야 한다. 업사이클링이 필요하다. 재생 원료의 양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품질이 낮으면 기껏 재활용한 것들도 쓰레기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 재생 원료의 양이 천연자원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야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원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 정리하면 강력한 물질 수요관리를 통해 물질 소비를 억제하고 강력한 순환관리와 품질관리를 통해 고품질의 재생 원료의 생산량을 높여야 순환경제로 이행할 수 있다.

앨런 맥아더 재단에서는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5가지 목표와 10가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순환경제로 가기 위해서 제품 생산단계 디자인을 바꿔야 하며(목표1),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 없이 다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목표2). 그렇지만 이런 목표는 경제 시스템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목표3). 물질 이용 방식의 변경이 경제 시스템의 파괴나 몰락을 야기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과 인프라, 기술이 필요하고(목표4), 경제 시스템 내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업이 필요하다(목표5).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 전략으로 기존의 3R을 넘어 10R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10R은 스마트한 제품 생산 및 사용(R0 Refuse R1 Rethink, R2 Reduce), 제품 및 부품의 수명연장(R3 Reuse, R4 Repair, R5 Refurbish, R6 Remanufacture, R7 Repurpose), 물질의 유용한 활용(R8 Recycle, R9 Recover) 3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1그룹은 제품 사용을 원천적으로 줄이거나(Refuse), 하나의 제품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거나 한 개의 제품이 여러 기능을 가지게 하는 등 새로운 접근으로 제품 사용을 줄이거나(Rethink), 제조공정의 효율성을 높여 원료 사용을 줄이는 방법(Reduce)을 통해 물질 사용량을 줄이는 전략이다.

2그룹은 버려지는 제품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거나(Reuse), 고장 난 제품을 수리해서 수명을 연장하거나(Repair), 오래 사용한 제품의 기능 및 성능을 복원하거나 업그레이드해서 수명을 연장하거나(Refurbish), 버려진 제품의 부품을 신제품과 동등한 수준으로 다시 제조하거나(Remanufacture), 버려진 제품 혹은 부품을 다른 용도로 사용(Repurpose)하는 것을 말한다. 3그룹은 물질을 재활용(Recycle)하거나 에너지 회수(Recover)를 통해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순환경제는 환경문제가 아닌 산업 문제다

순환경제 이행을 위한 새로운 규제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제품의 수명연장을 위해서 제품설계 단계에서 제품 내구성과 수리 용이성을 높이도록 하고 있고 소비자의 수리권(Right to repair) 보장을 위한 조치가 강화되고 있다.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서 생산단계에서 재질 구조를 단순화하고 재생 원료 사용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재고 물품의 폐기를 금지함으로써 과잉생산 억제 및 재고 물품의 재판매, 기부, 업사이클링 등을 생산자 주도로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쓰레기를 사지 않을 소비자의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요구와도 연결된다.

순환경제는 생산자의 실질적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여 제품의 생산 및 폐기단계의 물질 흐름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경제구조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지라도 기존의 생산 및 소비시스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새로운 산업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사용·재활용이 되지 않는 제품, 재생 원료가 사용되지 않는 제품은 시장에 판매되기 어렵거나 경쟁력을 상실하도록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정부 규제강화와는 별도로 세계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순환경제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주요 식품, 전자, 자동차, 패션 등 기업들이 제품 내 재생 원료 사용 비율 목표를 자율적으로 제시하면서 제품 생산 사슬 내의 기업들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당장 피부로 느낄 만큼의 변화는 미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의 흐름이 거세질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시장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재활용 체계를 강화해 양질의 재생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문제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원료를 공급하는 문제다. 재생 원료 공급이 되지 않거나 불안정하면 기업들의 산업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를 여전히 외부 장식용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앞으로는 ESG가 기업 내부 의사결정에서 실질적인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 당장 가격이 비싸다고 재생 원료 사용을 기피하거나 재생원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재생 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당장 비싸더라도 안정적으로 재생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순환경제라는 나비가 일으키는 바람은 미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태풍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태풍에 휩쓸려 도태될 것인지 태풍을 타고 멀리 도약할 것인지는 우리의 준비에 달려있다. 우리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