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세계화의 주역
컨테이너

 


 

 

물류를 바꾼 단순한 아이디어

전례 없는 전염병 사태를 맞아 그 분위기가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 사회의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된 데는 ‘세계화된 물류시스템’이 있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화물을 전달하는 물류체계가 없었다면 세계적으로 자원과 실물의 이동이 제한돼 경제발전은 무척이나 더뎠을 것이다. 현대를 만들어 낸 발명품이라고 하면 흔히 집적회로나 발전기, 인터넷, 자동차를 떠올리지만 실은 물류 세계화의 주역인 ‘컨테이너’가 그 근간에 있었던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대량생산 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화물이 쏟아져 나오자 화물을 포장하자는 아이디어가 산업적 규모의 물류시스템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현대식 컨테이너의 탄생

다양한 국제 규격이 탄생하고 현장에 조금씩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무역항의 풍경은 화물들이 제각각 크기와 모양이 다른 상자에 예쁘게 담겼을 뿐, 19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운사 입장에서는 배가 기항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인건비가 부담되기는 하겠지만 큰돈을 들여 규격화된 컨테이너를 구입하기에는 수지 타산이 애매했다.

트럭 운송 회사를 운영하던 미국의 사업가, 맬컴 맥린은 항만의 정신없는 풍경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맥린의 고객 상당수는 북미와 유럽, 또는 미국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거래하는 기업들이었다. 맥린의 트럭이 항만에 도착해서 물건을 내리거나 실을 때마다 일일이 화물을 손으로 나르느라 한참이 걸렸으며 이 과정에서 손실되는 화물도 적지 않았다. 이런 난장판을 보면서 맥린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예 트럭을 통째로 배에 실어버리면 어떨까?

맥린은 엔지니어인 키스 탠틀린저와 함께 T2 유조선을 개조한 뒤 다양한 소재와 규격의 컨테이너를 시험했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컨테이너는 약 11m 길이의 차대에 올릴 수 있는 직육면체 모양의 철제 상자였다. 상자는 여러 단으로 쌓을 수 있도록 측면에 요철을 줘서 강성을 보강했다. 현재 사용하는 컨테이너와 거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컨테이너 운송 방식을 서비스하기 시작한 이후 맥린의 기업 ‘시랜드 서비스’는 빠르게 성장하며 전 세계 물류의 변화를 이끌었다. 컨테이너는 곧 국제 교역의 보편적인 운송방법으로 자리 잡아서 1960년대 말 국제해양기구가 국제 표준을 마련했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현대식 컨테이너인 ‘협동일관용기’는 이때 제정된 표준을 따르고 있다.

현대식 컨테이너가 탄생한 이래, 국제 물류비용은 급격히 낮아졌다. 과거에는 일단 항구를 거친 물품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이상 가격경쟁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제품들끼리 가격을 두고 경쟁하기도 하고,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이 국내 공장에 납품 경쟁을 하기도 한다. 해운의 부담이 크게 낮아지면서 국제 교역량은 빠르게 늘어나 오늘날 하나로 묶인 세계를 형성했다. 상자 하나가 세상을 바꾼 셈이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과학사를 전공하고 동아사이언스의 기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동아사이언스의 고경력 과학기자들이 의기투합해 독립한 동아에스앤씨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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