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전쟁 시대
최근의 미·중 패권 경쟁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리적 전쟁 위험과 정치적 선택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중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지난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발발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를 비교적 출혈 없이 잘 극복하고 더 큰 소부장 위기에 대비한 덕분에 나름의 약점을 잘 극복하고 있었지만, 이번 미·중 패권과 대중 수출규제가 불러온 IRA 반도체지원법 등과 같은 미국의 횡포는 일본의 소부장과는 차원이 다른 핵폭탄급 소부장 사태라 할 수 있다. 챗GPT가 불러온 AI 반도체 빅뱅과 전기차 시대의 배터리 공급 부족 및 밸류체인 내재화를 위한 자원과 생산기지의 유치, 그리고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중국 견제와 대한민국의 안보를 인질로 삼은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에 대한 횡포는 결국 선택지와 국가적 산업적 기술적 약점을 빌미로 하기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우리가 대내외적인 환경의 변화와 패권전쟁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와 같은 전략무기를 더욱더 확대 및 강화하고 소부장이나 반도체 장비, 비메모리, 핵심 소재와 같이 취약한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이 IRA나 반도체지원법 등의 패권을 휘두르는 이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기술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바로 기술 습득과 특허 문제 해결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도체의 경우는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를 비롯한 막강한 반도체 장비 기업의 힘을 바탕으로 우리와 중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배터리의 경우는 전기차 배터리 수요확보와 생산 기술을 습득하고 특허 문제를 회피하는 방안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도체와 배터리 모두 미국의 전쟁전략에 필요한 필수 내재화 전략물자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의 패권전쟁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국제질서에서 벗어나는 다소 위험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어 매우 신중하고 전략적인 중립을 추구해야 한다.
퍼스트 & 패스트 전략
좀 더 구체적인 전략을 제언하자면, 앞선 분야에서의 퍼스트무버형 전략과 쫓아가는 분야에서의 패스트팔로워형 전략을 믹스한 퍼스트&패스트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 일본이 패스트팔로어에서 특허전략을 통해 현재까지 살아남아 마켓을 장악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소부장 분야이다. 소재 분야에서의 파라미터 특허를 비롯해 막강한 IP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앞선 분야에서의 시장을 탄탄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우리가 2019년 1차 소부장 공격을 잘 막아내며 기술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던 것 역시 IP에 기반한 기술 개발과 탄탄한 IP 포트폴리오의 구축이 있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반도체 초격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분야와 같이 앞선 기술 영역에서는 퍼스트무버형 IP 전략으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며, 중국과 같은 경쟁국가 및 경쟁사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 침해 가능성이 큰 특허장벽을 높고 넓게 구축함으로써 최대한 우월하게 점유율과 지위 유지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패스트팔로워 시절 선진국과 선진기업들이 구사해온 경쟁력 유지 전략이자 이젠 앞서있는 분야에서 우리가 해야하는 생존 전략이다. 또한, 소부장 및 반도체 장비와 같이 여전히 우리가 뒤처진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특허침해 리스크 해소 및 경쟁사를 공격할 수 있는 카운터 클레임을 창출하고 무기화하는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강화해야만 한다. 특히, 우리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점에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전환점이나 새로운 미래 기술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IP 포트폴리오를 선점함으로써, 선진경쟁사들의 특허 지뢰 영역을 회피함은 물론 건너뛰어 넘어 새로운 영역에 우리의 IP를 선점하는 건너뛰기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건너뛰기 전략
건너뛰기는 결국 혁신과 같은 행위이다. 블루오션 전략과 같이 레드오션이며 특허 지뢰가 사방에 깔려있는 위험지역을 건너뛰어 블루오션을 찾는 IP-R&D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건너뛰기의 좋은 사례는 영국과 중국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영국의 경우 제조업이나 첨단기술에서 이미 경쟁력을 상실해 쇠락해가던 나라였지만, 어느 순간 ARM과 다이슨,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Ameca)를 만든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와 같은 혁신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리드해가고 있다.
영국의 이런 기업들은 새로운 혁신 대륙을 찾아 그들만의 영역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레드오션 같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LG와 삼성이 개척한 그들의 대륙에 특허 지뢰 걱정 없이 새로운 다이슨만의 땅을 개척해가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보다 더 광범위하고 파워풀하다. 저가 제품과 선진국의 제품을 베끼기에 급급하던 중국이 전기차, AI, 5G, 드론을 대표선수로 전 분야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잡고 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 2015년 리커창 총리가 발표한 ‘중국 제조 2025’는 제조업 기반 육성과 기술 혁신, 녹색 성장 등을 통해 중국의 경제 모델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중국 정부의 산업 전략이다. 결국 이 전략이 산업 대부분에서 결실을 맺고 있는데 유일하게 반도체의 경우는 미국의 제재와 반도체 제조의 특성상 고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건너뛰기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린 이미 선진국들이 높게 친 중화학공업의 장벽을 건너뛰어 세계적인 기업을 길러냈고, 가전, 디스플레이, 자동차, 반도체, 게임, ICT 등에서 선진국을 뛰어넘었다. 시대에 따라서는 제조업 황금기와 디지털 전환기, 인터넷 시대 등의 시류에 잘 올라타고 미래의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건너뛰기 전략을 잘 수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중 패권과 저성장의 위기이지만, 우리의 혁신 DNA와 건너뛰기 경험이 Chat GPT로 촉발된 AI시대에 다가올 미래 먹거리와 기술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과 기업의 생존 전략
최근의 미·중 패권전쟁의 핵심은 반도체 규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반도체 규제의 핵심은 미국의 핵심 반도체 장비 기업의 역량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pplied Materials가 출원하고 있는 핵심 장비 특허의 경우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핵심 권리와 응용범위를 보호하고 있어 반도체 제조 회사의 침해 가능성이 크며, IP 리스크 때문에라도 Applied Materials 제품을 채용하지 않을 수 없는 파워풀한 IP 장벽을 구축하고 있다. IP가 곧 마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반도체 장비 독립이 결국 경쟁력과 협상력을 키우는 일이며, 경쟁기업을 공격 가능한 카운터 클레임 IP가 곧 무기이자 마켓을 확보하는 힘이 된다. 국가 간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역시 카운터 펀치 가능한 핵무기급의 전략무기가없었기 때문에 전쟁을 억제하지 못하고 침략을 당한 것이며 이는 기업의 비즈니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성장시대에서 불황이 지속될수록 선진국을 포함한 다양한 파워를 지닌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그 힘과 패권을 휘두르며 다양한 이익을 취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과 기업들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로봇 등과 같은 대체 불가능한 전략 무기급의 핵심기술을 지속적으로 R&D하고 제품화하는 것은 물론, 제품의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와 장비 밸류체인을 내재화해야만 한다. 반도체의 경우를 예를 들면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네덜란드의 ASML, 일본의 TEL 사 의존성이 결국 미국의 반도체 패권의 무기가 되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K 방산의 경우도 결국 AESA 레이더와 같은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단순히 제품 자체뿐만 아니라 제조와 핵심 부품의 개발 능력과 밸류체인 내재화 생태계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최고의 무기가 되고 있다.
세계는 지금 팬데믹 이후 극도의 저성장과 국제질서의 과거로의 회귀 및 미·중 패권전쟁과 밸류체인 내재화 등 국내외의 리스크가 어느 시대보다 위험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배터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우리가 개척한 앞선 분야를 효과적으로 지키며 확장시켜야한다. 또한 소부장과 반도체 장비와 같이 취약한 분야에서의 혁신적인 건너뛰기 전략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과 전략물자를 통한 횡포에 휘둘리지 않는 탄탄한 기술적 경제적 안보 전략을 확립하며, AI/로봇/UAM/XR 등 다가올 미래 먹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혁신과 건너뛰기 전략을 지속적으로 실행해야만 할 것이다. 특허청과 한국특허전략개발원은 이러한 기업의 혁신 활동과 건너뛰기 전략에 필수적인 IP-R&D 전략지원 사업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