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을 생각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 기존보다 월등한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1~2위를 다투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후발주자이고 국내에서 처음 개발하는 기술이라면 우리는 기술혁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아마도 기본기를 갖추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혁신일 것이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요소 기술들을 확보해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기술혁신이고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과정일 것이다.
기술혁신만이 문제가 아니다. 어느 기업이든 이윤 추구 없이 도전만 할 수는 없다.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돈도 벌고 기술개발도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윈프릭션은 기술개발과 기술사업화를 절묘하게 조율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진출에 성공했고 시장의 골리앗들과 싸움 없이 지혜로운 기술사업화를 모색하여 시장개척을 한 다윗이 되었다. 다윈프릭션은 ‘해외 공군 항공기용 휠 및 브레이크 조립체’를 개발하여 국내에 관련 기술이나 제품이 없던 상황에서 스스로 기술 축적을 이루어가며 각종 국내외 시험 규격을 만족하였고 수출실적을 올리는데 성공한 기술혁신으로 ʼ22년 41주차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글.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기술혁신의 새로운 정의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술혁신이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고객 니즈를 충족시켜주면서 보다 나은 가치를 제공하거나 또는 기존의 방식과 동일하더라도 월등한 수준으로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다윈프릭션의 기술개발 과정을 듣고는 기술혁신의 다른 정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국내 항공기 관련 산업에 대해서는 2000년대에 들어 국산 수리온 헬기 개발 및 양산 성공, 고등훈련기 T-50이나 경공격기 FA-50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져 수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KF-21 보라매의 개발로 항공기 관련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 정도를 뉴스에서본 것이 전부일 정도로 낮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항공기 관련 산업 전반이 글로벌 선두를 다투는 최고 수준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윈프릭션은 2003년 대우종합기계에서 분사하여 설립한 회사로서 중장비의 유압펌프 실린더 블록 등 윤활재료 신소재 기술과 금속계 소결 마찰재 기술을 핵심기술로 창업한 회사다. 기술 기반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성장의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보유한 기술로 앞으로 무엇을 해야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와 ‘현재는 없지만 어떤 기술을 확보해야 앞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의 두 가지 방향이다.
이 두 가지 방향은 기술의 관점에서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 사업에 있어서는 비즈니스가 될 것인가?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 기술개발에 필요한 역량과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등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다윈프릭션의 ‘해외 공군 항공기용 휠 및 브레이크 조립체’ 기술혁신 과정은 이를 압축해서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다윈프릭션은 창업 초기부터 금속계 소결 마찰재 기술, 쉽게 말해 금속계 브레이크 패드를 개발하고 양산·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공군 항공기 중 금속계 마찰재를 이용하는 항공기에 소모품 마찰재와 디스크를 국내 공급해오다가 2006년 착수된 국산 수리온 헬리콥터 개발 프로젝트에서 휠과 브레이크 체계개발에 참여하게 되면서 기술혁신은 시작되었다. 브레이크의 마찰재와 디스크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보유 기술에 더하여 브레이크 조립체 전체와 이를 감싸는 휠까지 개발하고 양산해야 하는 기술 과제가 생긴 것이다.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성장 방향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기술개발에 성공하면 비즈니스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위의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기술혁신인가? 당시나 지금이나 항공기용 휠과 브레이크 조립체 전체를 개발하고 양산한 국내 회사는 다윈프릭션이 유일하다. 개발도 개발이지만 환경시험과 성능시험만 대략 40여 가지를 통과해야 요구사항을 만족할 수 있다. 기술을 이전받은 것도 아니고 국내에 개발 경험이 있는 기술자도 없다. 시험 기준이나 방법도 모두 학습을 통해 스스로 기술 터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개발과 시험, 양산 모든 과정이 기술 개척이자 혁신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어쩌면 현재 글로벌 기술 선두를 다투는 여러 국내 기업들의 기술혁신 시작도 과거에는 이와 비슷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항공기용 휠과 브레이크에 있어 다윈프릭션이 또 하나의 새로운 기술혁신 역사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기술 축적과 틈새시장을 통한 기술사업화
높은 목표를 가지고 훌륭한 기술개발에 성공했다고 하여도 고객과 시장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나 항공기 부품은 고객의 인정이 없으면 비즈니스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공기 체계제작사나 부품 개발사 등 고객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고객이 요구하는 가치가 매우 명확하며, 이에 부합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 흔히 말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될 수가 없으며 가치를 제안할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다윈프릭션은 금속계 소결 마찰재 기술을 가지고 크레인이나 풍력발전기, 모터사이클, 군용 탱크, KTX 고속철도, 군용 항공기에 들어가는 브레이크 패드를 개발하고 공급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이미 보유 기술에 있어서는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고객을 확보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착실히 확장해온 것이다. 수리온 헬기의 휠과 브레이크 체계 개발을 통해 기존 보유 기술에 추가로 신규 기술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실적을 만들었다.
고객사가 우리와 비즈니스를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첫 단계가 인지이고 두 번째가 인식이며 세 번째가 인정이다. 수리온 헬기는 지금까지 200여 대가 만들어졌다. 200여 대에 휠과 브레이크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헬기가 운용되는 수십 년간 소모품에 대한 고정고객이 확보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이 인지할 수 있는 실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실적은 캐나다 Mecaer America Inc.와 미국 Bell Textron 사의 헬리콥터 Bell 525용 휠 및 브레이크 조립체 개발계약으로 이어졌다. 개발은 성공적으로 완료하였고 미국 연방항공청(FAA, 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의 형식승인 대기 중이다. 2024년에는 미국 벨 525 헬기에 다윈프릭션의 휠과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판매될 예정이다. 이제 고객은 우리를 인식했고 인정했다.
이탈리아 랜딩기어 회사이자 캐나다 Mecaer America Inc.의 본사인 Mecaer Aviation Group으로부터 이탈리아 공군 훈련기인 M-345의 휠 및 브레이크 조립체 개발계약을 2017년에 체결하여 현재는 제품개발에 성공하고 각종 시험과 비행시험을 통과하여 양산과정에 있다. 이 제품은 휠 및 브레이크 조립체 세 번째 기술개발 성공작이자 장영실상 수상 기술이기도 하다. 이 제품의 개발 성공으로 인해 튀르키예의 훈련기 Hurkus에도 파생 제품을 적용하고 있다. 기술개발 실적의 축적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 가지 포인트는 기술사업화 또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항공기용 휠과 브레이크는 민간 항공기 시장이 훨씬 더 크지만, 경쟁자들이 골리앗과 같이 덩치 큰 대기업들이다. 후발주자이자 해당 분야에선 신생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입장에서 시장이 크다고 뛰어들 수도 없고 고객의 인정을 받을 수도 없다.
다윈프릭션은 경쟁자들이 잘 보지 않는 군용 항공기 부품시장을 본 것이고, 경쟁자들이 제공할 수 없는 유연성을 제공했다. 고객의 설계 수정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유연함을 보여주었고 개발기간, 비용, 시간에 대해 덩치 큰 경쟁자들은 제공하기 어려운 가치를 제공한 것이다. 현재 제품의 수출실적은 매년 50~60만 달러 정도이고 유지보수용 부품까지 포함해서 100만 달러의 해외 매출이 기대된다. 항공기가 운용되는 수십 년의 기간을 생각하면 꾸준한 매출이 앞으로의 기술개발과 시장 확대에 든든한 연금이 되어줄 것이다.
정리하면 다윈프릭션은 보유한 핵심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기회를 찾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규로 확보해야 할 기술을 정의하고 개발에 필요한 역량을 집중하였다. 기술개발 성공은 고객이 인지할 수 있는 실적을 만들어냈고 또 다른 기술 축적을 가져다줄 기회를 얻게 해주었다. 거대기업들과 경쟁을 피해 독자적인 시장을 창출해냈으며 향후 수십 년간의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가능케 했다. 작게 보면 한 기업의 성공담이지만 크게 보면 대한민국 항공산업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과 비즈니스 그리고 미래
수많은 기술혁신 성공사례들을 보아 오면서 느낀 점이 많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시장의 인정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기술인데 혁신이라는 인정만을 받은 경우는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은 연구개발이 시장과 고객을 향해 있지 않으면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윈프릭션이 준비하는 미래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힌트가 될 것 같다. 내가 가진 핵심기술이 무엇이고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 수립의 기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무엇은 고객에게 가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의 기본이다.
다윈프릭션은 금속계 소결 마찰재라는 기존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회사이고 이제는 항공기용 브레이크 조립체와 휠까지 핵심기술의 영역을 확장했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가까운 미래에 이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고,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멀지 않은 시기에 도심항공수단(UAM, Urban Air Mobility)은 자동차와 비행기의 역할 일부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UAM이 상용화되면 자동차처럼 이용하겠지만 항공기의 규정을 적용받게 될 것이다. UAM은 자동차도 아니고 거대한 여객기라 할 수도 없다. 국내에서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휠과 브레이크 조립체를 만들 수 있고, 경험이 있고, 항공기 규정을 알고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될까? 다윈프릭션이 유일하며 이미 전사적 노력으로 미래의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더 가까운 미래를 살펴보자. 대형 항공기나 전투기와 같은 크거나 빠른 비행기들은 브레이크 마찰재 소재가 다르다. 핵심기술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에 40인승 내외의 민항기나 금속계 소결 마찰재를 브레이크에 사용하는 항공기들은 여전히 운항 중이며 앞으로도 운항해야 한다. 다윈프릭션은 보잉737 등의 브레이크 라이닝 PMA(Parts Manufacturer Approval) 획득을 목표로 개발 진행 중이다. PMA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발급하는 유지보수용 부품 인증으로 인증된 부품이 항공기에 최초 부착된 부품과 동등한 정도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증명받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항공기의 평균 사용 연수는 3~40년이고, 항공 부품시장에서 유지보수용 부품시장은 약 3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시장이라고 한다. 기술혁신을 시장의 인정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만 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개발로 비즈니스를 영위하겠다고 하면 더 합리적인 결론은 아직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