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은 기술혁신의 전략적 관리로 정의될 수 있다. 기술혁신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 먼저, 혁신의 역동성에 대한 심층적 지식이 필요하다. 혁신의 원천인 개인의 창의성, 기업 R&D의 특성, 대학이나 정부연구기관의 협력 및 네트워크 구성에 대한 전반적 이해뿐만 아니라, 혁신의 유형과 패턴,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 시장 진입 시기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요구된다.
두 번째로는 잘 만들어진 기술 전략이 필요하다. 조직의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혁신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자체개발,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설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립된 전략과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 구성, 개발 프로세스 관리와 구체적 전개 계획의 수립 및 실행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방대하고 다양한 이슈들이 발생하고 해결되어야 하나, 필자가 경험했던 여러 이슈들 중에서 몇 가지 중요하다고 생각 되어지는 이슈를 SPRO(Strategy, Process, Resource, Organization)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Strategy
기업의 전략은 전사 전략(Corporate Strategy), 사업 전략(Business Strategy), 기능 전략(Functional Strategy)으로 나누어진다. 기술전략은 기본적으로 기능 전략에 해당한다. 수립된 전사 전략과 사업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기능부서 중 하나인 연구개발 조직이 수립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전사 전략 또는 사업 전략에 많은 내용이 담기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구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낼 신규 사업 영역(Domain)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업부문에서 선행적으로 이러한 신규 사업 영역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기술 전략에 이러한 내용이 담기고, 이런 측면에서 기술 전략이 사업 전략을 리드하는 경우가 흔하게 있다. 연구개발 부서가 가진 기술 발전 방향에 대한 지식과 미래 트렌드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업 전략 수립 과정에 기술 인력을 충분히 참여시키는 방법과 기술 전략이 신규 사업 전략을 어느 정도 리드하도록 하되, CEO를 포함한 Top Management와의 컨센서스 형성을 강화하여 이를 보완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략과 관련한 두 번째 이슈는 수립된 전략의 공유이다. 수립된 전략에는 여러 중요한 사안들이 반영되어 있을 수 있어 이를 비밀스럽게 관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수립된 전략을 몇몇 고위층 인사들만 보고 다음 전략 수립 때까지 서랍에 잘 보관해 두는 우를 범하기 쉽다. 수립된 전략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구개발 부서는 관리해야 할 시간 영역(Time Frame)이 상대적으로 길고, 잘못된 의사결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의 공유는 더 중요하다. 수립된 기술 전략을 연구개발 구성원과 공유할 때 구성원들이 미래 개발 방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과제가 수립된 전략 하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전략의 공유는 새로운 과제를 어떠한 방향에서 제안하고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도 제공해 준다. 잘 수립되었지만 공유되지 않는 전략보다 다소 부족하지만 공유된 전략이 휠씬 큰 힘을 발휘한다.
Process
기술 혁신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업 현황에 맞게 관리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업마다 다양한 방식의 관리 프로세스를 도입 운영하고 있고, 그 중 대표적인 프로젝트 관리 방법이 로버트 쿠퍼(Robert Cooper) 교수가 제안한 스테이지 게이트 프로세스(Stage Gate Process)이다. 과제 관리에 매우 유용한 방법이지만, 모든 프로젝트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실수는 피해야 한다. 특히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추구하는 과제에 스테이지 게이트 프로세스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중도에 중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와해성 혁신은 거짓 음성(False Negative)으로 판단하기 쉽고, 마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파괴력은 클 수 있지만 현재의 주류 고객이 원하는 특성 측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적 한계를 지니고, 시장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성장해서 나중에 백조로 거듭날 과제에 처음부터 명확한 규격(Specification)이나 마일스톤(Milestone)을 요구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와해성 혁신을 위해서는 조직적 분리와 같은 처방이나 반복 처리 프로세스(Iterative Process)와 같은 과제 관리 프로세스의 적용을 고려해야만 한다.
Resource
연구자라면 한정된 자원 하에서 기술 개발하는 어려움을 느낀다. 다양한 실험을 마음껏 해 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부서의 입장에서 보면 불확실성이 높은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보다는 당장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일들에 돈을 더 쓰고 싶은 유혹이 크다. 그래서 연구개발 투자는 Bottom Up보다는 Top Management에서 Top Down으로 정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처해 있는 사업 여건과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를 고려하여 투자할 수 있는 규모를 정하고 이에 따른 연구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정해진 연구개발 투자금을 어떤 프로젝트에 배분할 것인가는 연구소 운영을 책임진 연구소장이나 CTO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연구경영자들은 과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사업 부문과 협의하면서 수행 과제를 선정하고 관리한다. 하지만, 전체 과제를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검토하는 부분은 매우 취약해 보인다. 과제 하나하나를 여러 기준에서 면밀히 검토하고 골라내어 연구과제 풀을 힘들게 구성한 후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것이 최선일까? 개별 과제들을 중요도 순으로 나열해서 연구개발 투자금에 맞추어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부터 선정해서 모아 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제의 풀이 최선은 아니다. 오히려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하위 순위에 있는 과제라도 수행 과제에 포함시킨 과제 풀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도 쉽게 장담하기도 어렵지만, 전략적 의도를 고려한 미래 준비 시도들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를 어떠한 매트릭스(Matrix)로 검토할 지는 기업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할 수 있지만, 이안 맥밀런(Ian C. MacMillan)과 리타 맥그래쓰(Rita Gunter McGrath)가 제안한 Uncertainty 기반의 매트릭스는 참고할 만하다. 기술적 불확실성(Technical Uncertainty)과 시장 불확실성(Market Uncertainty)에 따라 3개의 Option(Positioning Option, Scouting Option, Stepping-stone Option)과 2개의 Launch(Platform Launch, Enhancement Launch) 영역(Category)에서 프로젝트를 최적화해 볼 수 있다. 정해진 영역별로 투자금액이나 비중을 정해 놓고 영역별로 과제들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법이다. (그림 2)
Organization
기업의 규모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연구개발 조직이 운영되겠지만, 조직 설계 시에 연구개발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다른 기능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개발 조직은 창의성 중심이어야 한다. 창의라는 단어와 연관성이 높은 단어는 단연 자율이다. 창의성은 자율적 분위기에서 발현될 확률이 높다. 창의와 자율에 적합한 조직은 아무래도 계층이 단순화되고 상위자의 간섭이 적은 조직일 것이다. 그래서 연구 조직은 프로젝트 근간의 수평적 조직 구조(Project Based Flat Organization)가 바람직하다. 이러한 조직 구조를 통해 인터페이스(Interface)해야 할 상사의 수를 줄여 주는 것이 자율과 창의의 조직에 도움이 된다. 하나의 연구소에 관리의 범위(Span of Control)를 넘어서는 프로젝트가 생긴다면 그 때는 연구소 분리를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연구인력 관리 측면에서 연구원의 경력 경로를 설계하는 연구전문직제도(Dual Ladder System)의 도입이 필요하다. 단순히 연구위원이라는 직급을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연구전문직(Technical Ladder)과 연구관리직(Managerial Ladder) 경로를 만들어 다수의 연구원들이 연구전문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조직적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술경영은 사업경영에 비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경영의 대상인 기술이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경영을 위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더 많은 고민이 요구된다. 몇 가지 이슈를 SPRO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더 많은 전략적 고민, 더 바람직하고 섬세한 프로세스의 설계와 적용, 연구 자원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관리, 그리고 연구개발 특성에 맞는 조직 설계와 조직 문화의 조성. 하나하나 녹녹치 않은 일들이다. 개인의 심도 깊은 고민에 동료들의 참여와 협력이 더해질 때 더 나은 기술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