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빠르게 늙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노인성 질환의 증가는 의료비 부담 등 사회적 지출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건강한 노화(Healthy Aging)를 위한 민관 전략 및 의지가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2%를 기록하며 ‘고령화사회(Ageing Society)’에 진입했다. 2018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두 배가량 늘어난 14.3%로 나타나며 ‘고령사회(Aged Society)’에 들어섰다.
2년 후인 2025년에는 노인 인구 비중이 20.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돼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의 고령화비율 연평균 증가율은 3.3%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고령화 속도는 단연 1등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문제는 고령화에 따른 퇴행성 및 노인성 질환이 늘어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노인들의 건강 상태는 이미 ‘빨간불’이 켜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인들의 40%는 “스스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는 그저 인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만성질병이 없는 건강 노인은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51%의 노인들은 세 가지 이상 복합질환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고령층은 건강의 질 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건도 낮은 상황에 처해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노인 빈곤율 1등이다. 노인 4명 가운데 1명은 독립적인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이 있지만 자녀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다. 노인 부부끼리만 사는 비율도 절반가량에 이른다.
고령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 급증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자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퇴행성 척추·관절 질환 등이 있다. 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언어·판단력 등 다 영역의 인지 기능이 감소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질환이다. 치매의 종류로는 알츠하이머병이라 불리는 노인성 치매와 중풍 등으로 인해 생기는 혈관성 치매가 있다. 현재까지 왜 치매가 발생하는지 기전에 대한 규명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치료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는 2030년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는 약 13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050년까지 퇴행성 뇌 질환 환자 수가 1억 1천40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해 현재 글로벌 치매 치료제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치매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 시장 규모는 지난 2020년 63억 4,000만 달러(약 7조 8,387억 원)로 2026년까지 연평균 6.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킨슨병은 치매에 이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이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세포들이 파괴되면서 도파민 분비가 감소해 나타나는 중추신경계 질환이다. 도파민은 운동 능력이나 감정 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분비가 감소하게 되면 무기력·우울감·손발 떨림·경직·불안정한 걸음걸이 및 자세·느린 동작 등의 운동 능력 저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아직 이렇다 할 치료제나 치료법도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로선 빠른 발견으로 질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방법이 전부인 실정이다. 파킨슨병 환자 역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파킨슨병 환자수 변화는 ▲2017년 11만 5천679명 ▲2018년 12만 977명 ▲2019년 12만 5천607명 ▲2020년 12만 5천927명 ▲2021년 13만 1천548명 등으로 나타났다. 4년 만에 약 13%가 증가한 것이다.
뇌졸중 전체 환자 수는 2020년 기준 약 59만 명이다. 흔히 중풍으로 불리는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나 혈관이 파열되는 ‘뇌출혈’이 있다. 일단 뇌졸중이 발생하면 뇌의 해당 부분이 영구히 손상돼 여러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뇌졸중 환자도 고령화와 연관이 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의 5명 중 4명은 60세 이상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의 환자가 전체 진료 인원의 77.8%를 차지했다. 뇌졸중 위험인자들 중 고혈압, 당뇨병, 이상 지질혈증, 심장질환, 비만, 대사증후군 등이 고령층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 혈관 자체도 고령층이 될수록 탄력이 떨어지고 모양이 변하는 등 퇴행성 변화가 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퇴행성 척추·관절 질환자의 수도 고령화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다. ‘연골판 손상’이 대표적인데, 이는 허벅지 뼈와 종아리뼈 사이에 위치해 충격을 흡수하는 반달 모양의 연골판(반월상 연골판)이 파열되는 것을 말한다. 고령층의 경우, 연골 퇴행성 변화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월상 연골 파열이 진행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반월상 연골판 손상 환자 수는 84만 명에 달했다.
이와 함께 엉덩관절이라고도 부르는 고관절 질환도 고령층에서 빈번하다. 고관절은 엉덩이에 위치한 골반뼈와 다리뼈(대퇴골)를 연결하는 관절이며, 양쪽 사타구니 부위에 위치한다. 고관절은 척추에서 골반으로 내려오는 체중을 지탱하고, 걷기와 달리기 같은 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데 이곳에 질병이 생기면 엉덩이 쪽 골반과 사타구니 부위에 통증이 생기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절뚝거리게 된다.
고관절 질환으로는 탈구나 골절, 충돌증후군,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고령에 따른 연골이 닳고 관절 주변 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퇴행성 고관절염이 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고관절증 환자는 ▲2019년 8만 9천 명 ▲2020년 8만 5천 명 ▲2021년 8만 9천 명 등 증가하고 있다.
고령층을 위한 ‘하드웨어’ 기술개발 물꼬
세계보건기구(WHO)는 초고령사회 대응 방안으로 노인통합관리 실행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건강 노화 10년이란 목표하에 노년기 삶의 질 향상을 핵심과제로 규정한 것이다. 건강 노화(Healthy Aging)는 질병 극복을 넘어 신체·정신·사회 기능을 극대화해 나이가 들더라도 자기 삶의 터전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최대한 유지토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에서도 고령층의 돌봄과 건강 유지를 위한 헬스케어 분야의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민간 주도의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gy)’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노년학과 기술의 융합을 말한다. 고령자의 삶의 질 개선을 돕는 기술개발과 서비스 디자인 등을 총합하는 개념으로 풀이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고령자를 위한 스마트 헬스케어, 스마트 돌봄, 스마트 홈, 스마트 도시, 스마트 모빌리티, 스마트 여가문화 개발 등이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나라에서 제론테크놀로지는 당면한 건강 노화를 위한 대안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제론테크놀로지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실버산업전문가포럼 측은 지금까지는 유럽에서 시작된 제론테크놀로지를 뒤따라왔지만, 초고령사회 진입까지 남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가 해당 분야 선도국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건강 노화 관점하에 여러 기술개발을 추진 중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에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 체계 강화’를 포함시킨 바 있다. 고령 친화산업과 연계해 돌봄 로봇 등 복지 기술 연구개발 강화 및 복지관과 요양시설 등을 리빙랩으로 지정, 생활밀착형 서비스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3월 28일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고령 친화 기술(Age-Tech)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사각지대 없는 돌봄 서비스 제공과 고령 친화 산업 생태계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단기적으로는 고령친화산업·돌봄 로봇·보조기기·스마트서비스 등 분야별 기술개발을, 오는 2025년부터 2031년까지 노인·장애인 재활·자립·돌봄 연구개발 R&D 사업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건강 노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최근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오대종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국내의 60세 이상 노인 5천852명을 8년 동안 관찰해 정서적 지지와 물질적 지지가 각각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는 노인의 치매 발병률은 매년 1천 명당 9명에 그쳤다.
반면,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인의 발병률은 연 1천 명당 15.1명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치매 발병 위험이 61%나 높았고, 치매 중 가장 흔하다고 알려진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도 66%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는 치매 등 고령층의 퇴행성 질환 관리 및 예방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활동의 양보다, 사회적 활동의 질이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건강 노화를 위한 각종 기술개발 및 제도를 통한 인프라 구축이 하드웨어라면, 소프트웨어로써 작용할 요소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선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고령층에 대한 정서적 지지 확대는 인간 간의 인식적 관계성 이상의 실제적인 효과성, 즉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인 치매 유병률과의 관련을 나타냈다.
우리는 초고령사회 진입까지 불과 2년밖에 남겨놓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 노화를 위한 ‘안팎’의 해법을 마련하는 것과 그러한 요소들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민간이나 정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늙는다. 이 불변의 명제 뒤에 ‘병든다’는 요소를 제거 혹은 감소하기 위한 시간은 이제 2년 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