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은 태생적으로 부자를 위해 개발되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사용자 경험(UX)이 고도화되지 못한 초기 형태의 첨단기술은 사회의 엘리트, 즉, 교육과 자본력을 지닌 사람을 주된 사용자로 가정하여 개발되는 성향이 있다. 첨단기술을 사용 및 구매할 수 있는 사회집단은 사회구성원의 평균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은 사람들이다.
‘혁신확산 이론(Diffusion of Innovations)’01에 따르면 새로운 혁신을 만드는 사람과 이를 선택해서 일찍 사용하며 앞서가는 사람이 사회 구성원의 약 16%를 차지하는 반면, 다수가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원활히 사용하게 된 시점에도 뒤처지고 기술의 발전 뒤에 남겨진 사람이 전체의 약 16% 정도 된다고 제안한다. 한편 기술이 일상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도구가 아니라, 개인의 레저·게임 등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한 제한된 영역에만 머무른다면, 이러한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디지털 기술은 우리가 생필품을 사고, 재난 및 사건·사고 정보를 얻고, 일자리를 찾고, 일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며, 이로 인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가 발생한다. 팬더믹으로 인해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사회집단 간의 디지털 기술에의 접근과 사용의 격차인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심화시키며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많은 사람은 디지털 기술로 편리를 누리지만 다수의 편리 속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의 여러 섹터(정부 부문, 민간영리 부문, 제3부문)는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팬더믹, 디지털 전환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버즈 워드(buzz word)로 떠오른 메타버스는 미래먹거리, 혁신성장동력의 아이템으로 부각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메타버스는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는 단어로 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ASF)02은 2007년에 메타버스를 두 개의 축(Augmentation vs. Simulation과 External vs. Intimate)을 기준으로 네 개의 영역으로 분류했다. 일상 사진을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등은 라이프로깅(lifelogging), 온라인 회의·강의 등은 거울세계(mirror worlds), 포켓몬고 등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제페토, 디센트럴랜드, 로블록스 등은 가상세계(virtual worlds)에 속한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메타버스가 존재하지만, 뉴스매체에서 회자하고 있는 메타버스는 주로 ‘가상세계(virtual worlds)’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상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환경과는 다른 가상의 세계에서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다른 사람 그리고 컴퓨터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고 급속히 사용자 수가 늘고 있는 가상현실 메타버스로는 제페토가 있다. 제페토는 기존의 SNS처럼 연령이 낮은 사회집단이 주축이 되어 놀이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과의 차이점은 제페토는 기존의 SNS의 주된 사용자가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인 것과는 달리 더 연령대가 낮은 알파세대(Generation Alpha)라는 점이다. 알파세대03는 Z세대의 뒤를 잇는 세대로 2010년 초반부터 태어난 사람을 지칭한다. 알파세대는 세대 구성원이 모두 21세기에 태어난 최초의 세대이며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으로 스마트기술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세대이다.
제페토와 같은 가상현실 서비스가 지금은 10대들의 놀이로 소비되고 있지만 앞으로 디지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SNS는 초기에는 젊은 세대의 놀이문화인 듯하였으나, 지금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좌우하는 사회의 중요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자원은 사람을 통해 이동하고 SNS는 사람을 이어주기 때문에 SNS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여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를 넘어서서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알파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해 주요 경제주체로 활동하게 되는 약 15년 뒤에는 가상세계 메타버스가 중요한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경험한 SNS의 발달과 확산, 그리고 사용 용도의 다변화 및 발전 곡선은 메타버스로 인한 디지털 격차와 세대 간의 단절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 메타버스가 지금은 알파세대인 10대들의 소통의 창구로 10대의 문화로 머물러 있지만, 그 10대가 20~30대가 되고 한국의 산업을 이끄는 주된 인력이 되어 자신들에게 편한 메타버스를 이용해 소통하게 되면 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은 사회변화에 뒤처지며 주류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주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메타버스 이주자(metaverse immigrants)는 뒤늦게 이 문화에 합류하기 위해 메타버스를 열심히 배워야 할지 모른다.
우리의 디지털 격차 경험은 메타버스를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메타버스 기업이 비즈니스모델과 주요 기술을 개발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세대(generation)와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에 대한 이해’이다. 디지털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의 의도와 다르게 개발한 기술과 서비스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소비자의 민감도는 커졌다. 이제 저렴하고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주목받는 시대가 아니라, 현명해진 소비자는 사회를 보다 나아지게 변화시키고 사회적 책임감이 있는 기업을 선호한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가 기업을 평가하는 주된 잣대가 되고 있다.
기업은 메타버스 개발에 있어 개발 초기부터 개발될 서비스로부터 배제되는 사회집단이 누구인지 심층적으로 고민하고 디지털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UX)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포용적 혁신은 개발의 전 주기에서 실천해야 하는 가치이며, 특히 개발 전체를 구상하는 첫 단계에서 중요하다. 다수가 이용하는 건물을 지을 때 선택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게 설계하면, 완공한 다음에 소외된 사람이 생기고 사회문제가 되어 뒤늦게 수습하기 위해 건물을 뜯어고치려면 더 큰 비용을 필요하게 된다. ‘모두를 위한 메타버스’는 기술의 혁신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혁신을 필요로 한다.
01 Rogers, E. M. (2003). Diffusion of innovations (5th ed.). Routledge.
02 Smart, J.M., Cascio, J. & Paffendorf, J. (2007) Metaverse roadmap overview.
https://www.metaverseroadmap.org/overview/
03 McCrindle, M.,] & Wolfinger, E. (2009). The ABC of XYZ : Understanding the global generations. McCrindle Publ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