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의 도래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작가 닐 스티븐슨은 <스노 크래시(Snow Crash)>라는 SF소설을 출간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2년의 일이다. 소설 속에서 피자 배달원이자 해커인 주인공은 현실과 가상을 빈번하게 넘나드는데, 다음과 같이 눈에 띄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가 보는 사람들은 물론 실제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 광섬유를 통해 내려온 정보에 따라 컴퓨터가 만들어 낸 움직이는 그림, 즉 ‘아바타’라는 소프트웨어들이다. 아바타는 ‘메타버스’에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게 해주는 가짜 몸뚱이다. 아바타는 장비가 허락하는 한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1990년대 초에는 이미 ‘가상현실’이라는 용어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현재의 메타버스 핵심 개념들을 30년 전에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실로 대단한 상상력임에 틀림없다. 스노 크래시 이후 잊혀졌던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미국에서 등장한 가상현실 서비스인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에 의해서였다. 이후 2006년에 미국에서 제1회 메타버스 로드맵 서밋이 개최되고, 2007년에는 메타버스 로드맵이 발표되는 등 한동안 큰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기술적으로 메타버스 구현에 한계가 있었고, 산업적으로 유인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한동안 업계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약 2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COVID-19 팬데믹의 환란 상황에서 비대면·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유형의 메타버스 서비스들을 실제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메타버스는 단지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가상화 서비스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메타버스의 산업적 잠재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향후 거대한 기회가 펼쳐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포스트 인터넷 패러다임으로 부각 중인 메타버스의 산업적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메타버스 시대의 미래상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메타버스의 개념과 범위
메타버스에 대해 확립된 정의는 아직까지 없다. 따라서 연구자와 연구기관별로 제각기 메타버스를 정의하고 있는데, 일부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사회·경제적 활동 공간이 현실에서 3차원 가상세계로 확장된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메타버스에 대한 정의가 변화하는 양상이 드러나는데,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등장하던 초기에는 주로 ‘가상세계’를 중심으로 정의되다가, 2007년 ASF에서 메타버스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부터는 가상과 현실의 ‘상호작용’과 ‘융합’을 강조하는 정의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여러 정의들을 기반으로, 필자는 메타버스를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융합하고 공진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문화·경제 활동이 발생하는 초월적 공간’으로 정의하고자 한다(ETRI 기술전략연구센터, 2022).
한편,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다시 회자되기 이전에 이미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결·확장하는 기술적 개념으로 ‘CPS(Cyber-Physical System)’나 ‘디지털 트윈(Digital-Twin)’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개념과 범위 상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 3가지 개념 모두 현실과 가상세계의 연결과 정보 활용에 초점을 둔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다만 CPS가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여 현실 세계의 정보를 기반으로 가상세계에서 기기를 제어하고 시스템을 모니터링하는 데 강조점을 두는 개념이라면,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정보를 기반으로 가상세계 속에 현실과 똑같은 환경이나 대상물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을 효율화하는 데 강조점을 두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메타버스는 반드시 현실 세계의 정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도 완전한 창작물로 가상세계를 창조하여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CPS 및 디지털 트윈에 비해 범위가 확장적이다. 또한, 메타버스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과 가상세계의 상호작용을 구현하는 공간으로 보는 ‘기술 개념’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적 활동 공간을 가상세계로 확장하되, 그 활동을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측면에서 다분히 ‘비즈니스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스트 인터넷 패러다임으로서 메타버스의 산업적 가능성
20세기 후반부 인터넷의 등장은 인류의 산업구조에 격변을 몰고 왔다. 현실 세계의 다양한 정보와 욕구들이 연결되는 가상의 매개 장터(사이버 공간)가 생김으로써 기존에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조업을 대신하여 서비스업이 급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글로벌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매출·기업가치 기준 글로벌 상위 기업들의 순위에 대대적인 재편이 있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막 본격적인 메타버스 시대의 개막을 맞이한 시점에서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뒤를 잇는 포스트 인터넷 패러다임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이미 기술적·사회적·산업적 측면에서 과거의 한계점들을 극복하기 시작했으며, 이용자 기대와 사회·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성장할 여건을 충분히 마련했기 때문에 향후 포스트 인터넷으로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큰 것이 분명하다. 보다 자세하게 메타버스의 산업적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변화들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적 측면에서는 ◁ 5G 초고속 네트워크 상용화, ◁ VR(Virtual Reality), AR(Augmented Reality), XR(eXtended Reality) 등 실감 기술 진화, ◁ HMD(Head Mounted Display) 등 디바이스의 발전을 기반으로 가상과 현실이 융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메타버스 구현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 밖에도 ◁ 인공지능의 진화, ◁GPU 등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 ◁ VR·AR 콘텐츠 개발 플랫폼 증가 등으로 인해 메타버스 구현과 관련된 기술의 성장이 촉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사회적 측면에서는 장기화되는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사회의 확산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상호 접촉 환경의 회피가 온텍트(Ontact) 기반의 활발한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메타버스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면·디지털화 현상이 팬데믹 이후에도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향후 메타버스 환경에서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증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셋째, 이용자 측면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과 가상세계 활동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메타버스 시대로의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MZ 세대의 메타버스 서비스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한국의 메타버스 서비스인 ‘제페토’의 경우 이용자 중 10대 비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즉, 이렇게 메타버스에 익숙한 세대들이 조만간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넷째, 산업적 측면에서 메타버스는 초기에 주로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만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이후 다양한 비대면 플랫폼과 결합·확산하여 현재는 차세대 산업 플랫폼으로 메타버스를 인식하는 기업들이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메타버스 플랫폼, 3D 엔진 개발 툴, NFT(Non-Fungible Token)·블록체인 등을 통해 가상세계에서의 경제활동 구현이 가능해지면서, 메타버스가 마케팅·홍보, 부동산·건설 등 다양한 영역에 접목되고 있고, 정치·행정, 보건·의료, 국토·교통 등의 공공영역에서도 메타버스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메타버스 시대의 미래상과 시사점
2018년에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Ready Player One>은 2010년에 출간되었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인데, 서기 2045년을 배경으로 3D 메타버스 세상을 사실감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메타버스 시대의 미래를 엿보는 데 있어 최고의 작품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영화 속에서는 거의 모든 인간들이 고글과 슈트를 착용하고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메타버스 공간에 들어가서 살아간다. 친구를 만들고, 카레이싱 경기를 하고, 박물관을 방문하고, 클럽에 가는 등 현실에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초월의 3D 공간 속에서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아바타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속 오아시스(메타버스)는 단순히 게임과 친목 활동만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게임 속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현실에서의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거대 기업들조차 현실과 메타버스 공간을 연결하여 부를 창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현실과 마찬가지로 규모의 경제와 경제적 불평등도 작동한다. 이런 영화적 상상력의 모습이 바로 메타버스의 미래상일 것이다. 즉, 메타버스 시대의 미래는 현실과 가상세계의 중단 없는 ‘연결’,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가상공간의 ‘창조’, 현실의 삶을 가상공간으로 ‘확장’, 가상공간에서 만끽하는 사실감 있는 ‘체험’ 등이 어우러지는 환경으로 예상된다.
물론, 메타버스의 확산과 산업화를 위해 극복해야할 요인은 여전히 많다. 기술적으로 메타버스는 다양한 ICT와 공진화하여 발전해야 하기에 속도·성능·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한계돌파형 R&D와 표준화가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경제공간의 탄생과 합리적 운영을 위한 법률적·제도적 보완책들도 선제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새로운 가상의 비즈니스 환경에 어울리는 참신한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 역시 필요하다. 아울러 사회적 합의에 의한 자율적인 규범과 건전한 이용 문화 정착 역시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더욱 중요한 포인트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거대한 기회의 장으로 인식하고, 이 새로운 산업적 기회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은 얼마 전 회사명을 아예 ‘메타(Meta)’로 개명하고, ‘호라이즌 월드’라는 플랫폼을 발표하면서 메타버스 비즈니스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과거 페이스북이 소셜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기회의 장을 인식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걸린 시간이 7년 정도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의 기업들이 메타버스라는 더 거대하고 새로운 기회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뜨길 기대하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