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건물 외장, 내부 벽체, 칸막이, 천정부터 매일 사용하는 철제 가구, TV, 냉장고, 세탁기 등의 공통점은 모두 컬러강판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 들어 매끈함과 광택 있는 색상이 두드러져 보여 플라스틱인 줄 알았다가 만져보고 금속 강판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컬러강판을 만드는 기술력이 좋아진 덕분이다. 단색의 강판부터 복잡한 디자인의 강판까지 실로 컬러강판의 쓰임새는 다양하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하고 원하는 디자인을 강판에 입히는 것은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든다.
아주스틸(주)(이하 아주스틸)은 벽지에 그림이나 무늬를 인쇄하는 고속 디지털 프린터를 보고 강판에 이와 같은 기술을 적용할 수 없을까에 대한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기존의 컬러강판 생산방식을 훌쩍 뛰어넘는 기술혁신을 이루어냈다. 고속 디지털 프린터로 강판에 색색의 디자인을 인쇄한다는 기술 개념 자체는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사실 이는 컬러강판 생산의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기술혁신이다. 2018년 개발에 착수하고 2년여의 개발을 거쳐 2020년 첫 고속 디지털 프린팅 컬러강판 양산에 성공하였으며 2021년 24주 차 IR52 장영실상을 받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컬러강판 생산의 디지털 시대를 열다
요즘 가전매장을 둘러보면 냉장고에 예쁜 디자인이 입혀진 외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복잡한 디자인의 컬러강판은 만들기가 쉽지 않은 고가의 컬러강판이다. 우선 단색이나 일정 디자인이 반복되는 컬러강판 생산은 이미 성숙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동그랗게 말려있는 강판 롤을 풀어서 그라비아 인쇄롤 프린터를 통과시키면 인쇄되는 방식인데 그림 1에서 보듯이 금속실린더에 새겨진 요점에 묻어있는 잉크를 코팅된 강판 표면에 전달하여 인쇄하는 방법이다. 잘라 놓은 강판에 인쇄하는 방식과 비교해 말려있는 강판 코일을 풀어서 롤프린터를 통과시킨 후 다시 강판을 코일로 말아놓기 때문에 생산 속도와 사용자 측면의 편리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기술이지만 금속실린더의 둘레길이 만큼이 이미지 표현의 최대 한계이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의 반복적 인쇄만 가능하다는 점과 이미지의 변경을 위해서는 금속 실린더를 교체해야 하는 점, 이미지의 해상도가 150dpi 수준으로 낮은 점이 기술의 한계로 꼽힌다. 이에 비해 섬세하고 복잡한 이미지를 인쇄한 필름을 강판에 코팅하는 방식의 VCM(Vinyl Coated Metal) 강판이 고급 가전제품에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필름에 먼저 이미지를 인쇄하고 이를 다시 강판에 코팅하기 때문에 생산성은 떨어지고 가격은 높은 단점이 있다.
아주스틸이 개발과 양산에 성공한 고속 디지털 프린팅 방식의 컬러강판은 강판 표면에 바로 이미지를 인쇄할 수 있고, 원하는 이미지로의 변경이 자유로우며 인쇄 길이의 제약이 없는 360dpi 수준의 고해상도 인쇄가 가능하다. 기존의 그라비아 인쇄롤 방식이 금속 활자를 판에 고정하여 인쇄하는 활판 인쇄에 비유한다면 아주스틸이 개발한 기술은 디지털 인쇄기술에 비견될 수 있다. 롤 프린팅 기술에 비해 인쇄 이미지 표현의 자유도가 무한대로 커졌으며, 이미지 교체에 대한 비용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또한 필름 코팅 방식의 VCM에 비해서도 30% 이상의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가히 컬러강판 생산의 디지털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요소기술 확보로 이뤄낸 기술혁신
프린터를 이용해 어떤 소재의 표면에 인쇄하는 것은 너무 익숙한 개념이라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인쇄 표면이 강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회사가 강판 표면에 고해상도 인쇄를 하기 위해 수년간 도전하고 있지만, 상용화 제품을 내놓고 있지는 못한데 무엇보다도 고해상도 인쇄가 가능하면서 동시에 생산성과 품질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려있는 강판 코일을 풀어서 고속으로 이동시키면서 인쇄한 뒤 다시 코일로 말아놓아야 한다. 인쇄된 강판은 고객 요구에 따라 자르고 구부리고 모양을 찍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쇄가 벗겨지거나 떨어져 나가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고 완성된 제품이 최종고객의 사용 환경에서 문제가 없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건축 외장재로 사용한다면 높고 낮은 온도와 비바람에 견디는 내후성까지 갖추어야 비로소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될 수 있다. 위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 양산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회사는 아주스틸뿐이다.
아주스틸의 기술개발 과정은 기술혁신 기법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매우 스마트한 전략으로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오픈 이노베이션이고 세부적인 관점에서는 필요한 요소기술을 정확히 도출하고 하나씩 확보해 나가는 기술 트리(Technology Tree) 기법을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확보해야 할 핵심기술은 크게 4가지로 고속으로 이동하는 금속 강판에 잉크를 분사하는 디지털 프린터, 강판에 적합한 잉크, 생산라인과 프린터의 연계 및 최적화 그리고 제품 테스트인데 이를 모두 자체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필요한 설비와 소재에 대해 가능성 있는 외부 기술을 찾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협력하였다.
벽지와 같은 종이 소재에 인쇄하는 고속 디지털 프린터 업체를 찾아 금속 표면 인쇄에 적합한 노즐과 프린터를 개발하였으며 자외선 경화 잉크를 생산하는 회사를 찾아 잉크 개발을 의뢰하였다. 두 회사 역시 금속 표면에 원하는 물성이 나오도록 인쇄하는 것은 도전적 기술과제였기에 아주스틸과 밀접한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오픈 이노베이션을 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기술은 강판이 이동하는 속도에 맞춘 프린팅, 강판이라는 소재 표면 특성에 맞는 잉크 분사량과 분사 위치에 정확히 안착시킬 수 있는 노즐, 자외선 경화가 되어도 강판의 구부림과 같은 2차 가공에 손상되지 않는 잉크의 개발, 고속 이동하는 강판의 좌우 흔들림과 속도를 정밀하게 잡는 공정 기술, 프린터와 생산라인을 연계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등이었다. 기술개발이 완료되어 이미 양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요약해서 말하긴 쉬워도 개발 당시에는 요소기술을 명확히 정의하고 목표 수준을 정하는 것 하나하나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참고할만한 레퍼런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기술의 정의는 제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볼 수 있으며, input이 output으로 변환되는 과정, 그리고 제품에 내재된 무형적 자산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아주스틸의 디지털 프린팅 컬러강판 기술개발에 있어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기술보다 본질적인 기술자산은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내재화된 경험의 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험은 경쟁사들이 설비와 소재를 갖춘다 해도 금방 따라올 수 없는 기술 장벽으로 작용하는 진정한 기술이다.
제품 혁신이 가져올 컬러강판의 미래
아주스틸의 고속 디지털 프린팅 컬러강판 생산기술이 갖는 진짜 중요한 의미는 기술이 가져올 제품의 혁신에 있다. 원하는 디자인을 강판에 인쇄하려는 고객 요구에 대해 기존 기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한대의 자유도를 가지면서 가격은 낮출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깔끔한 이미지 구현은 기본 품질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컬러강판으로 벽지가 필요 없는 벽, 디자인뿐만 아니라 질감이 살아있는 표면을 가전제품에 구현할 수 있는 가치가 더해졌다.
비용을 좀 더 지불하면 VCM 방식으로도 이미지를 강판에 입히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질감과 내후성 같은 물성까지 구현하는 것은 어렵다. 디지털 프린팅 방식은 강판 표면에 잉크를 적층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실크벽지 표면 같은 고급스러운 질감까지 구현할 수 있어 또 다른 가치 부여가 가능해졌다. 가까운 시일 내에 벽지가 이미 인쇄된 벽과 칸막이를 사무실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미리 보기가 가능하다. 요즘 나온 최신형 LG OLED TV 뒷면의 커버를 손으로 만져보면 질감을 인쇄한 텍스틸(Texteel)이 어떤 것인지 미리 보기를 할 수 있다.
아주스틸의 컬러강판 기술혁신은 디자인과 질감을 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도 계속 진행형이다. 현재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 인쇄된 강판에 펄이나 메탈을 이용해 반짝이는 효과까지 인쇄할 수 있다면 아마도 VCM 기술은 완전히 대체될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해본 다. 2021년 6월 준공된 아주스틸 김천 공장에는 4번째 컬러강판 라인이 갖춰지며 더욱더 진화된 고속 디지털 프린터 설비가 도입될 예정으로, 기술적으로는 앞서 설명한 2세대 디지털 프린팅을 넘어서 3세대에 접어들 예정이다. 600dpi 해상도로 기본 품질을 더 높이고 여기에 조개껍질 분말로 펄까지 인쇄할 수 있는 다단계 프린팅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아직 양산된 제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얼핏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나전칠기가 떠올랐다. 옻칠한 나무에 조개껍질로 장식하여 가구나 그릇을 만든 나전칠기가 21세기에는 디지털 프린팅 강판으로 가전제품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단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기술이란 결국 가치를 더하는 수단이다. 그냥 평범한 제품을 만드는 강판으로 쓰일 것인가, 디지털 프린팅이라는 수단을 통해 21세기 나전칠기를 만드는 고급재료로 쓰일 것인 가는 그냥 나무 가구와 나전칠기의 차이만큼 엄청난 가치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주스틸은 2020년 2월 첫 양산을 시작해 25억의 매출을 올렸고 이듬해 261억으로 무려 10배 넘는 성과를 달성했다. 가치의 차이는 만든 사람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인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과는 기술혁신에 대한 고객의 인정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고 했듯이 이제 아주스틸은 제2의 기술혁신을 성공시켜 수비하는 숙제가 남았다.
글/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