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명강연

 

지난 6월 10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온라인을 통해 제55회 산기협 조찬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강연자로 나선 노근창 현대차증권㈜ 상무는 코로나 이후 반도체 지역주의와 패권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며 이를 극복하고 초과 성장할 길을 함께 모색했다.

 

반도체 패권주의의 배경과 이유

2019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심화되었다. 그 상황에서 일본마저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에 나섰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미 한국은 반도체 패권주의의 실체를 목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제조업의 중요성을 세계인에게 각인한 계기였다. 미국은 현지에 반도체 공장 설립 시 100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투자비의 최대 40% 세액공제 등을 지원하는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정책을 펼치고 있다. 유럽에서도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 반도체 투자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파운드리(Foundry) 업체인 대만의 TSMC 역시 유럽에 반도체 공장 설립을 요청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에는 인텔을 제외하고는 반도체 공장의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게다가 이마저도 대다수 반도체 공장들이 12㎚ 이하의 공정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인텔 역시 10㎚ 이하의 반도체 공정이 없고, 시스크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첨단 공정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향후 미래 자동차는 대부분 컴퓨팅 반도체를 탑재하게 되어 있다. 자율주행차, 로봇, 항공, 우주, 군수 등의 분야에서 5㎚ 이하의 RISC(Reduce Instruction Set Computer) 방식의 AP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지원책을 내세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과연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인지 살펴봐야 한다.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려면 웨이퍼(Wafer)를 가공해 완제품에 탑재할 수 있게 패키징을 거쳐야 하는데, 현재 미국에는 패키징 공장이 없어 결국 미국에서 생산한 웨이퍼 및 가공 칩은 아시아 에서 후공정을 거쳐야 한다. 경제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실질적인 이득이 높지는 않은 셈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생산 역량이 집중되어 있으면, 제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불안감이 크다. 또한, 고객은 전력 소모가 적고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라면 수급 경로를 다변화하는 것이 좋다. TSMC는 미국과 일본에 동시 투자에 나섰고, 주요 패키징 회사 생산 공장 역시 대부분 아시아에 있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각종 지원책을 겨냥해 200억 달러를 투자해 신규 공장 건설 및 신규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다. 이미 대만 UMC와 PSMC 등 몇몇 기업은 증설에 나섰다. 이러한 증설은 올해 하반기 공급에 영향을 미쳐 IT반도체 부품난 해소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신규 증설 혹은 경쟁사와의 협업 등 다양한 선택지를 고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은 외부 위협에 흔들리기보다 기업들의 로드맵을 지켜봐야 할 때다.

 

반도체 패권주의 극복 해법은 기술의 초격차

현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달리는 중이다. 기술적으로는 발전할 수 있으나, 초과 성장은 쉽지 않은 국면에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 또한, 파운드리 시장에도 주목해야 한다.

화재와 정전, 가뭄 등 각국에서 발생한 재해로 반도체 산업은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저가 스마트폰 부품 수급은 심각한 상태다. 공급 부족이 진행 중인 까닭에 2022년 상반기까지는 파운드리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공급 부족이 해소되는 하반기부터는 신중하게 투자에 접근해야 한다. TSMC의 선단 공정은 현재 가동률 100%에 있으며, 생산 역량 역시 삼성전자보다 2.6배 많다. 삼성전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투자로 TSMC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타이밍이다. 현재 7㎚ 이하 시장에서 경쟁 중인 TSMC와 삼성전자는 향후 5㎚ 이하 시장에서도 기술 주도권 경쟁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는 어떠한 기회가 있을까. 무빙 디바이스(Moving Device)가 늘어나는 향후에는 ‘저전력’과 ‘고성능’ 이슈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반도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세공정 기술에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시스템IC 역시 300㎜ 웨이퍼팹인 M10을 이미지 센서로 전환 중이다. 한편으로 삼성전자의 CIS(CMOS Image Sensor) 사업은 고화소에서 소니를 뛰어넘고 있다. 스마트폰 AP(Application Processor) 시장에서는 퀄컴의 점유율이 올라갈 것으로 보이며, 중국 최대 칩 제조업체로서 중국 반도체 굴기를 상징했던 칭화유니그룹은 오히려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한편으로 자동차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377억 달러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8%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자동차 반도체는 전통적으로 유럽 업체들이 강세를 보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자동차 반도체인 MCU(Micro Controller Unit)를 제조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국산화를 고심할 수도 있다. 다만, 투자에 대한 의미는 살펴봐야 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에 주목하는 이들은 2차 메모리 반도체 빅사이클의 도래를 기대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과거의 메모리 반도체 빅사이클은 컴퓨팅 D램 사이클이었다. PC D랩과 서버 D램의 가격 상승은 2차 빅사이클의 전제 조건이 될 수는 있다. 저가 스마트폰 공급 부족과 인도의 코로나 2차 유행 등 여러 변수가 있는 가운데, 서버 D램 가격은 지난 4월에 전고점을 돌파했다. 2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은 급증했고, TSMC와 인텔은 정체 또는 감소했다. 자율주행과 메타버스, 게임용 TV,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새롭게 부상한 신생태계에 주목한다면,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회 속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려면 역시 집중할 것은 ‘기술의 초격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