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를 경영에 접목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ESG 전략을 세워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많은 국내 기업 CEO가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주지하다시피 ESG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따라서 기업경영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기존의 방식에 ESG 요소를 추가하기보다 기업 내부 사명(mission) 및 비전에 ESG 가치가 담겨야 한다. 또한 ESG를 구현하기 위한 사업 전략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R&D 부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UN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제시하는 비즈니스 찬스
ESG를 통한 지속성장의 기회를 찾는 데 유용한 이정표가 있다. 바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이다. SDGs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적인 약속을 의미하며, 전 세계 국가가 따라야 할 공통의 목표를 지칭한다. 2015년 9월 25일 뉴욕에서 개최된 제70회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유엔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는데, 2016~2030년까지 15년간의 목표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SDGs는 사회발전, 경제성장, 환경 보존의 세 가지 축을 기반으로 17개 목표, 169개 세부 목표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사회발전 영역(목표 1~6)에서는 빈곤 종식, 기아 종식, 건강한 삶과 웰빙, 양질의 교육, 성평등, 깨끗한 물 등이 있고, 경제 성장 영역(목표 8~11)에서는 양질의 일자리, 사회 인프라와 지속가능한 산업화, 국가 내/국가 간 불평등 감소, 지속가능한 도시 등이 목표로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환경 보존 영역(목표 7, 12~15)에서는 지속가능 에너지, 지속가능 소비와 생산, 기후변화 대응, 해양자원 보존, 육지생태계 보호 등이 있다.
이러한 목표는 일견 인류의 숙제 혹은 지구 전체 차원의 어젠다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신사업, 신제품, 비즈니스 모델 등의 단초가 녹아 있다. 누가 먼저 그 기회를 찾아낼 것인가, 또 R&D를 통해 어떻게 기회를 수익으로 연결해 내느냐가 미래 경쟁 우위 확보와 지속성장의 열쇠라고 하겠다.
유럽연합, ESG와 DT의 융합 통한 신성장 기회 모색
2020년에 유럽연합(EU)은 기후 중립화 및 디지털화 가속을 통해 EU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신산업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중심에는 자원 순환 촉진을 위한 이니셔티브인 3R(Reduce, Reuse, Recycle)을 성장전략으로 승화시킨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CE)’가 있다. CE는 채취, 생산, 소비, 폐기의 선형적(Linear) 경제 구조를 벗어나 각 단계마다 관리와 재생을 통해 자원을 재활용하는 지속적 경제 구조이다.
EU는 이러한 CE를 가능하게 하는 엔진이자 촉매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T)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의 중추에 디지털 전략을 놓아두었다. DT는 데이터의 힘으로 종래의 업무 방식을 혁신하는 것이다. EU는 디지털과 순환이라는 두 가지 변화(Transformation)를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도록 해 여기서 창출되는 시너지로 그린 딜을 완수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독일 기업의 ESG 구현 노력에 주목할 필요
ESG를 통한 지속가능경영의 선두 주자는 단연코 유럽, 특히 독일 기업들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역시 제조업 강국인 독일 기업들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독일 기업들의 지속 가능 미션, 비전, 전략 및 그 인에이블러(Enabler)로서 R&D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적인 소재기업 바스프(BASF)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화학 창조(We create chemistry for a sustainable future)’를 미션으로 내걸고 본업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지속가능성 관점의 포트폴리오 관리(Sustainable Solution Steering, SSS)가 인상적인데 바스프가 다루는 전 제품(6만여 종)을 대상으로 사회, 환경, 경제적 기여도를 자체 평가하여 Accelerator, Performer, Transitioner, Challenged의 4개 제품군으로 구분하고 있다. 현재 30%에 육박하는 Accelerator의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대신 10%에 달하는 Transitioner/ Challenged의 비중은 점차 줄여간다는 것이 요체이다. 그 실행 수단은 물론 R&D로 귀착된다.
지멘스(Siemens)의 사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멘스는 ‘성공적이고 지속가능한 사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Serving society while doing successful and sustainable business)한다’는 미션 하에 전동화, 자동 화, 디지털화를 통해 고객을 위한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공급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2015년부터 Business to Society(B2S)라는 고유의 방법론을 개발하여 전 세계 35개국 사업장에 적용하면서 단순한 이윤 창출이 아닌 앞선 기술을 기반으로 현지 사회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 한다는 방침이다. 현지 사회에서의 기여는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이나 전력 등 인프라 구축, 기술 이전, 일자리 창출 등 구체적인 수치로 측정, 공개되고 있다.
탄소중립의 성공 여부도 R&D가 결정
우리 정부는 2020년 12월 7일, 2050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는데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신유망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 등 3대 정책방향에 탄소중립 제도적 기반 강화를 더한 ‘3+1’ 전략으로 구성돼 있다. 2016년 발효된 파리협정 이후 121개 국가가 ‘2050 탄소중립 목표 기후동맹’ 에 가입하는 등 탄소중립이 전 세계의 화두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연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서는 현재로서는 100%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배출한 탄소배출을 상쇄할 만큼의 탄소를 흡수하여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탄소중립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이 분명하다. 유일한 희망은 R&D에 있다. 사실 현 시점에서 추구해야 할 답안도 이미 나와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시한 탄소중립을 위한 10대 핵심기술 개발 전략이 그것이며, 계획한 대로 태양광과 풍력, 수소, 바이오 에너지, 수송효율과 건물효율, 디지털화 등의 기술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와 해외의 동원가능한 R&D 자원과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 개별 기업 연구개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산학연을 연계한 공동의 노력, 국제사회와의 연구개발 공조 등을 통해 단계별로 로드맵을 정하고 추진하는 것만이 탄소중립 달성으로 가는 정도가 될 것이다.
ESG는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가는 경영 이정표
지속가능성이나 ESG는 얼핏 이상적이고 먼 미래의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고 변화의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ESG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적응하고 변신하면서 진화해 가는 길만이 생존을 담보한다.
ESG가 지향하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의 모습, 그 모습을 달성하기 위한 경영 패러다임의 대전환, 그리고 그러한 대전환을 가능하게 해 줄 R&D 부문의 도약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지만 그만큼 미래는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적극적으로 ESG 이슈를 선점하고 해결하는 기업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