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 삼성중공업(주) 선박해양연구센터 박종진 파트장
기술혁신 성공사례는 기업의 연구책임자 인터뷰를 통해 성공프로젝트를 기술혁신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독자적 기반기술 스마트 선박 선내 솔루션 플랫폼 개발 성공사례
▲ 박종진 스마트십연구 파트장
삼성중공업(주) 선박해양연구센터
공동 작성.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우리나라는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 산업에서 물량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자타공인 세계 1위 국가이다.
그렇다면 배에 관한 모든 면에서 우리는 해양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결론에 앞서 조선 산업의 최종 제품인 선박의 세 가지 구성요소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가장 중요한 ‘배’라는 하드웨어가 있으며 바로 이 ‘배’를 건조하는 능력이 우리 조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그러나 배가 온전히 기능을 하려면 여러 가지 ‘장비’들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배와 장비들을 운영하기 위한 운영체제인 ‘플랫폼’이 필요하다.
미래 우리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핵심 원천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 선박(Smart Ship) 시대
스마트 선박은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선박으로, 조선 기술에 자율 운항 제어 시스템(ANS), 선박 자동 식별 장치(AIS), 위성 통신망 선박 원격 제어 기술(IMIT) 같은 최첨단 정보 기술을 접목해 자율운항은 물론 경제적 운항, 안전 운항을 할 수 있는 차세대 디지털 선박을 말한다.
국내를 비롯한 글로벌 해운업계는 지금 ‘스마트 선박’ 경쟁이 한창이다. 노르웨이의 경우 무인항행 선박을 위한 테스트베드만 10곳 이상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 조선소들은 2025년까지 자율항행 선박을 250척 정도 건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은 1995년 이미 스마트쉽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요크타운함의 함교 승선인원 13명을 단 3명으로 줄였다.
국내 조선사들 역시 조선 산업의 미래 기술인 스마트 선박 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 또한 스마트 선박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율 운항 선박’의 조기 도입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스마트 선박의 선내 솔루션 플랫폼 자체 개발
삼성중공업 선박해양연구센터가 2014년 11월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최근 건조되는 선박에 탑재되기 시작한 차세대 스마트십 시스템 '에스베슬(SVESSEL)'이 2019년 32주 차 IR52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스마트선박 선내 솔루션 플랫폼은 항해 중인 선박 데이터를 활용해 선박의 경제성·안전성·효율성을 증대하는 기술이다.
선박 설계 데이터와 선박별 성능 등 선박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선박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조선업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면 선내 솔루션 플랫폼(이하 플랫폼)이 무엇인지 플랫폼 자체 개발이 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선박이 항해하는데 필요한 운영체제이다. 선박의 브레인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오랫동안 조선 강국으로 자리를 굳혀왔지만 운영체제 만큼은 해외 제품에 전부 또는 일부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플랫폼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조선 산업의 중요한 경쟁력 세 가지 중 두 가지 부문에서 선두임을 입증하게 되었다.
대당 평균 가격이 2천억 원을 넘나드는 대형선박을 항해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각종 빅데이터들을 처리하여 신뢰성 있는 정보들로 만들어내야 하고 여러 가지 기능들이 최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운영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용화 제품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그만큼 만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의 플랫폼 독자개발은 기술경영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스마트 선박 선내 솔루션 플랫폼 개발의 의의
독자적 원천기술 확보
선내 솔루션 플랫폼 개발이 갖는 첫 번째 의의는 원천기술의 확보이다. 원천기술의 사전적 의미는 근원이 되는 기술로, 근원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한 지류(支流)를 파생시킬 수 있는 본류(本流)의 개념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보더라도 운영체제 자체가 모든것을 다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어플리케이션 개발과 활용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제공해준다.
근원 기술을 가지면 전체 최적화가 가능하지만 파생된 기술들은 부분 최적화로 만족해야 한다.
사실 원천기술이라는 용어는 선진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가 없어 가장 유사하게 Original Technology(독자 기술)과 Fundamental Technology 또는 Base Technology(기반기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SVESSEL은 독자 개발한 기술이 면서 다른 어플리케이션 기술들의 기반을 제공해주는 기반기술로 정의할 수 있다.
아무리 선박을 잘 건조할 수 있어도 최종적인 전체 최적화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플랫폼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으며 같은 이유로 아무리 개별 어플리케이션이나 장비들이 훌륭해도 플랫폼 없이는 제대로 퍼포먼스를 낼 수 없게 된다.
미래 조선 산업 경쟁력 선점
삼성중공업의 선내 솔루션 플랫폼 개발이 갖는 두번째 의의는 미래의 조선 산업 경쟁력 선점이다. 최근 건조되는 모든 대형 선박들은 많은 기능들의 디지털화가 필수적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원격 운항되는 선박들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고 현재 시점에서 상상해 볼 수 있는 가장 진화된 선박은 무인자율운항선박이다.
LNG선이나 콘테이너선 등 대형 선박들이 무인자율운항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그 기술적 기반이 되는 것이 운영체제인 플랫폼이다.
아무리 선박 건조 능력이 뛰어나도 무인자율운항선박의 운영체제를 외부기술에 의존해야 한다면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
따라서 독자적 플랫폼을 확보했다는 것은 미래 조선 산업에 있어 선박 건조 능력과 운영체제 두 가지 경쟁력을 선점하고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운영체제는 단순히 더하기 1의 경쟁력 확보가 아닌 조선 산업의 판도를 좌우하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커다란 배가 경제적이면서도 안전하게 운항하려면 수많은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일단 항로 선정, 구간별 속도에 따른 시간과 연료소모량 등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바람, 파도, 해류, 해수면 온도, 폭풍 등의 기상상황을 더하면 훨씬 더 복잡해진다.
선박의 크기, 구조와 같은 설계 데이터, 운동성능 그리고 화물의 종류, 무게, 온도에 따른 상태 변화, 육상과의 통신, 각종 선박용 장비들의 유지보수관리 등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다시 여기에 미래의 원격 운항이나 무인자율운항까지 더하면 선박의 원격 제어 및 원격 관리가 되어야 하며 나아가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율운항까지도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어떤 하나의 솔루션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이 존재하게 되고 이들을 종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이쯤 되면 삼성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플랫폼 기술이 미래 조선 산업의 경쟁력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경영 관점에서 본 SVESSEL 개발의 성공 요인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R&D 프로세스
기술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술의 시장화 또는 사업화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의 목표인 이윤창출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쓸모없는 기술인 것이다.
기술 사업화는 개념상으로 매우 당연한 것이고 기업 R&D 활동의 이유이자 목적이지만 막상 모든 기술 개발이 경영에 기여하지는 못한다.
그 원인은 참 다양한데 기술적인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경우, 개발기간과 비용이 늘어나는 경우, 원하는 성능과 기능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는 경우, 새로운 대체기술이 출현하는 경우, 고객의 요구사항이 달라지는 경우 등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다.
그래서 R&D는 높은 실패위험성과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한다.
삼성중공업 연구소는 2014년 당시 TF를 구성하여 10명도 되지 않은 인원이 6개월간 스마트 선박에 대한 상세한 기획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쟁제품, 특허, 기술 트렌드를 분석하고 선주나 인증기관인 선급의 요구사항 등을 종합하여 기술로드맵을 수립했다.
물론 이 기술로드맵은 단지 기술만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제품로드맵을 우선적으로 반영하였고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R&D프로젝트까지 기획을 마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많은 기업연구소들은 대부분 다 비슷한 일들을 최소 몇 년 단위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드맵을 매년 수정 갱신하면서 제품·기술과 연결된 R&D 프로젝트도 업데이트하고 다시 심의·선별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수행하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미래 준비를 위해 중·장기 R&D 로드맵을 그리지만 보기 좋은 보고용 그림이거나 해당 시점이 되었을 때 참조용으로는 사용하되 실행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 끊임없이 수정 보완되면서 살아 움직여야 실행이 가능하다.
2~3년 전에 세운 계획을 손보지도 않고 현상황에 딱 들어맞기를 기대하는 것은 실행의 의지가 없는 무책임한 일이다.
그림 4를 보면 삼성중공업은 전사적으로 매년 3월에서 7월까지 제품 및 기술 로드맵을 갱신하여 차년도 준비를 시작한다.
8~9월에는 연구소의 각 부서가 구체적인 차년도 연구과제들을 기획하고 9~10월에는 3차에 걸친 과제심의를 통해 과제를 선별한다.
선별된 과제들은 11월부터 차년 10월까지 수행을 하고 평가를 받는다. 연중 내내 로드맵에 의한 과제 계획과 실행이 이루어지는 R&D 프로세스로 볼 수 있다.
2014년 10명도 안 되는 소규모 인원으로 시작한 스마트십 TF는 현재 연구개발파트로 자리 잡아 26명의 인원으로 늘어났으며, 출범 당시 8개 정도였던 과제는 현재 연평균 16개 정도로 늘려 수행하고 있다.
플랫폼 개발을 성공리에 마친 현재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능 추가와 성능 개선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데 업무량을 보면 현재의 인력도 매우 부족한 느낌이다.
더구나 SVESSEL의 실물 제품과 기능을 보면 어떻게 이 인원으로 개발이 가능했을까 의아할 정도다.
실제 스마트십 연구개발파트에서는 연구개발인력 부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고 있을 정도인데 현재는 한국해양대 등 대학과 산·학 연계 개발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외부와의 협업을 통해 R&D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과제에 대한 계획과 목표설정이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과제들이 연결되지 않으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
로드맵이 모든 과제들의 연결고리가 되어 시너지가 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적은 인원으로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혁신적인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선택과 집중이란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적은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목표로 선택할 것인가’와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스마트십 선내 솔루션 플랫폼 자체 개발이라는 목표는 시작 당시에는 매우 도전적이고 높은 목표였음을 먼저 주목해야 한다. 높지 않은 목표가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없음은 당연하다.
다음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분야의 높은 목표를 향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집중을 할 수 있었는가에 주목해보자.
일반적으로 근무 인원이 많고 인사이동이 잦은 대기업 연구소에서는 한 가지 R&D 테마를 진행함에 있어 연구 책임자나 프로젝트 멤버의 변경 없이 5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긴 시간을 불확실성 속에서 10명 미만의 TF가 30여 명 가까운 파트로 성장하기까지 지속적인 인원보강과 지원을 받는 것 또한 어렵다.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선박 개발이 주 임무였을 연구소에서 처음 시도하는 제품인 플랫폼 개발에 5년간 지원과 투자가 이루어진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선택과 집중의 성과다.
또한 개발 과제에 대한 선택과 집중도 이루어졌는데 플랫폼 개발과 연관성 있는 과제가 타부서에서 별개로 추진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과제를 통합하거나 협업하는 방식으로 관련 과제의 모든 결과물들을 한데 모아서 한 부서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권한을 집중해주었다.
연구소 차원에서 강력하게 과제 포트폴리오 관리를 하고 책임과 권한을 집중해주지 않았다면 어느 한 부서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연구소 규모가 큰 기업들에서는 유사중복 연구개발이 자주 발생되지만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하거나, 설사 알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그냥 진행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런 경우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뿐더러 낭비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삼성중공업 연구소에서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런 유사중복 연구가 서로 다른 부서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서 결과물이 집중되지 못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한 곳으로 귀속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플랫폼이 가지는 기술적 난이도나 용도적인 중요성을 감안할 때, 지난 5년간의 개발 과정은 매우 간결하게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기본에 충실함이다.
로드맵과 과제 포트폴리오 관리 그리고 선택과 집중 모두 흔하게 들어본 기술경영 방법들이다.
새로울 것 없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에 충실함은 마치 특별한 비법을 쓴 것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혁신의 시대,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플랫폼은 2017년 8월부터 현재까지 수주한 62척의 선박에 적용이 확정되었으며, 그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삼성중공업에서 건조하는 선박에만 장착하고 있지만 플랫폼의 기술적 완성도로 보면 장차 단독 제품화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선진국의 인증기관인 선급으로부터 인증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2천억 원이 넘는 배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플랫폼을 장착할 선주는 없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쯤 되면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룬 성과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기술 개발 하나만도 쉽지 않았을 텐데 기술 인증과 사업화까지 거침없이 혁신을 이어왔다.
혁신은 머물러 있을 겨를이 없는 파도에 비유되기도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시장에서 쌓아 놓은 성을 지키는 것은 백사장의 모래성을 파도로부터 지키는 것과 같다.
또 다른 혁신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 파도를 막아내며 버틸 수만은 없다.
이미 많은 업체가 스마트 선박 개발에 나선 상황에서 차별화한 솔루션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 경쟁사 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로운 기술로 한국 조선업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삼성중공업의 새로운 로드맵에는 어떤 혁신이 담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