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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생명이야기 - U's Triangle 이야기

재미있는 생명이야기는 우리 일상과 연계되어 있는 생명과학의 주요 개념들을 살펴봅니다.


글. 방재욱 명예교수(충남대학교 생명시스템과학대학 생물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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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다가오며 김장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육종의 선구자인 우장춘 박사가 떠오른다(그림 1).
 
지난 8월 9일 부산 동래구에 위치한 우장춘기념관에서 우리에게 ‘씨 없는 수박’으로 기억되고 있는 우장춘 박사 서거 60주기 추모식이 개최되었다.

우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씨 없는 수박은 우 박사에 의해 처음 육종된 것이 아니라 1943년에 일본 교토대학의 기하라 히토시(木原 均)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된 품종이다.

실제로 우박사가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업적은 배추속 식물을 대상으로 연구해 발표한 ‘우장춘 박사의 삼각형’을 의미하는 'U's Triangle'이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개최된 배추유전체학회에 참석해 배추에 관한 학술발표를 할 때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발표 서두에서 U's Triangle을 언급하는 것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 추억이 있다.
 
이렇게 배추 관련 학술대회에서 많은 학자들이 발표를 시작할 때 이야기하는 U's Triangle은 무엇일까?


U's Triangle

U's Triangle에서 'U'는 우장춘 박사의 성(姓)이며, 'Triangle'은 주요 배추속 식물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삼각형을 의미한다.

우 박사는 일본 이름이 스나가 나가하루(須永 長春)였지만 논문에는 자신의 영문 이름을 N. U라고 표기하였다.
 
이름에서 'N.'은 長春(장춘)의 일본어인 나가하루(Nagaharu)의 약어이고, U는 한국 성씨 禹(우)를 나타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우씨들이 성을 'Woo'로 쓰는 데 비해 우 박사가 자신의 성을 알파벳 한 글자인 'U'로 쓴 것은 특이한 일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東京)제국대학 졸업 후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서 작물육종 분야에 참여해 연구하던 우 박사는 1935년에 ‘일본식물학잡지’에 배추, 양배추, 겨자 등이 속하는 배추속(Brassica) 식물의 유전체 분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종(種)의 합성’ 이론을 제안해 세계 육종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배추속 식물 6종의 게놈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 도식화한 것이 바로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은 ‘우 박사의 삼각형’으로 불리는 'U's Triangle'이다.

U's Triangle은 그림 2에서처럼 기본 염색체 수(N)가 다른 A(N=10), B(N=8), C(N=9) 세 가지 게놈으로 구분되는 배추속 식물들의 게놈 조성 관계를 삼각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2배체 식물의 경우 A 게놈인 배추는 염색체 수가 20개(2N=AA=20), B 게놈인 흑겨자는 16개(2N=BB=16), 그리고 C 게놈인 양배추는 18개(2N=CC=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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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박사는 배추속 식물 종들을 교잡(交雜)시키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그 실례로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그림 2에서처럼 A 게놈과 C 게놈의 염색체가 합쳐져 4배체(2N=AACC=38)인 잡종(雜種)이 생겨난다.
 
이 식물이 바로 이른 봄에 노란 꽃을 만개하며, 최근에는 바이오디젤의 원료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유채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흑겨자와 배추를 교배하면 갓김치를 담가먹는 갓(2N=AABB=36)이 만들어지고, 흑겨자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에티오피아겨자(2N=BBCC=34)가 만들어진다.

우 박사는 'U's Triangle'을 통해 서로 다른 종들의 교잡으로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 있다는 ‘종의 합성’ 이론은 제안했는데, 이 이론에는 ‘종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일부 수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 박사는 ‘종의 합성’ 이론으로 당시 국력이 미약했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노벨상 대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스웨덴 왕립협회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육종학자 대열에 올라 있다.


우 박사 이야기

우 박사는 1898년 4월 9일에 일본 도쿄에서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 여사 집안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인 1903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불리는 을미사변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아버지가 암살당한 후 가정생활이 어려워져 한 동안 고아원에 맡겨지기도 했다.
 
가정 형편이 나아지며 어머니가 고아원에서 데려와 가르치며 항상 조선인임을 강조하며 키웠다고 한다.

이런 어머니의 후원으로 우 박사는 1916년에 히로시마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인들이 동경하는 도쿄제국대학 농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 연구원으로 취업해 1937년 퇴직할 때까지 18년간을 육종학 연구에 전념했으며, 퇴직 후 교토(京都)의 다키이종묘회사의 연구농장장으로 자리를 옮겨 연구에 몰두하다가 1945년 조국이 해방되며 환국할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 박사는 1950년 3월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환해 한국농업과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취임해 우리나라 농업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제주도 감귤의 품종을 개량해 장려하였고, ‘강원도 감자’로 알려진 무병 씨감자를 개발해 척박한 강원도 땅에 재배가 가능한 특산물로 개발한 것도 우 박사의 업적이다.

우 박사는 당시 채소 종자를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우리나라 재래종 배추와 중국 배추의 교배를 통해 포기가 크며 속이 꽉 차고, 병해에도 강한 결구배추 ‘원예1호’를 육성해 배추의 국내 자급을 가능하게 하였다.

우 박사의 ‘배추 품종개발’ 성과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광복 70년을 맞이해 발표한 광복 70년 ‘과학성과 70선’에 1960년대 대표성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6년 과학의 달 4월에 ‘국민이 뽑은 현대 과학자 10인’에도 소립자 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와 한탄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이호왕 박사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우장춘 박사는 서거하기 3일 전인 1959년 8월 7일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포상 받으며 ‘조국이 나를 인정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1950년에 환국해 ‘농업이 애국’이라는 일념으로 우리나라 농업 발전의 기반을 마련한 우 박사의 업적과 작물 육종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학생들에게 널리 확산되어 앞으로 우리나라 미래 농업을 주도해 나갈 ‘제2의 우장춘 박사’가 나오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