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다양화 시대 기업 R&D 인적자원 관리의 과제와 대응 방안: 혁신을 위한 경계인 육성_코스맥스 랩
▲ 이준배 수석연구원
코스맥스
다양화 시대에 기업의 기술혁신을 위해 우수한 인력들을 채용하였지만 기술혁신 속도는 정체되고 있다.
경계인 양성을 통해 우수한 인적자원보다 효율적 인적자원 관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코스맥스 랩 사례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계인 양성을 통한 기업의 인적자원 관리 전략에 대해 제언한다.
K-뷰티의 성장과 위기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한류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겨났다.
한류는 단순한 드라마 인기를 넘어 가요, 영화, 음식 등 한국 대중문화의 전 분야로 확대·재생산되었다.
한편 이러한 한류 확산의 최대 수혜자는 화장품 산업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것은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니다.
수치상으로도 화장품 산업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매우 급성장하였다.
2002년 대비 2017년 한국 화장품의 수입액은 3배 정도 증가하였지만, 수출액은 무려 40배나 증가하여 약 49.6억 달러에 이르렀다.
마스크시트, BB 크림 및 쿠션화장품은 2010년대 한국 화장품의 르네상스를 이끈 핵심 성장 원동력으로 K-뷰티의 세계화에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한편 2016년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반도 긴장 사태는 국내외의 정세에 따라 특정 산업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불행한 선례를 만들었다.
비록 수출액은 증가하였지만, 중국 관광객 유커에 크게 의존하던 내수시장과 중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K-뷰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해준 뜻깊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특히,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자성의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중국 로컬 화장품의 저가 시장과 일본 화장품의 고가 시장 사이에서 K-뷰티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게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중국 이외에 동남아, 러시아 및 남미 등 신흥시장에 대한 진출이 시작됐다.
또한, 기술개발 측면에서는 그간의 우수한 기초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히트 상품이 없었다는 반성에 따라 응용 및 융합연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마스크시트, BB크림 및 쿠션화장품 이후에는 어떤 제품들이 시장을 이끌어 갈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 어떤 혁신을 해야 할지 화장품 회사들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과연, 새로운 혁신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다양화 시대 새로운 인적 관리의 필요성
지식의 축적과 접근성이 어려웠던 시대에서는 도제식 방법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졌기 때문에 지식의 진보와 확산은 매우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IT 및 모바일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과거보다 지식과 정보 습득의 기회가 다양하고 용이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모바일 기반인 SNS는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습득의 속도는 매우 빨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빨라지고 용이해졌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 기술혁신은 과거보다 다소 정체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술혁신의 원동력은 인적자원이라는 조언에 따라 과거보다 우수한 학력의 신입 연구원들이 채용되었지만, 기술혁신 속도는 그대로였다.
또한, 과거와 달리 한 명의 천재보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협업이 좀 더 우수한 성과 사례도 있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화장품 산업은 특히 천재성보다는 집단지성의 지혜가 더욱 빛을 발휘하는 분야이다.
화장품 시장은 과거 공급 주도에서 벗어나 현재는 수요 중심의 특성을 보여 준다. 그만큼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고객의 니즈를 철저히 생각하는 지혜로운 연구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결국 훌륭한 인적 자원들이 마음껏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 즉 새로운 인적자원 관리가 필요해진 것이다.
또한, 지식의 생산과 축적보다는 기존 지식을 통해 지혜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조직과 문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다방면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고 사내외에서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는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인재상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 박힌 연구소 조직을 버리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경계인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내외 거의 모든 화장품 연구소는 크게 스킨케어 연구소와 메이크업 연구소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연구조직은 각각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기술혁신은 점점 어려워진다.
이러한 원인은 같은 회사 연구소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영역에 대한 존중 또는 무관심이 결국 커뮤니케이션 부족과 왜곡된 인식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연구원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조직과 문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경계인은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뜻한다.
경계인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라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다소 부정적인 단어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KAIST 경영대학 권영선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세력으로 경계인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물론, 그는 경영학자의 관점에서 기술을 활용할 줄 알고 공학인과 소통할줄 아는 경영인을 이 시대에 필요한 경계인이라 하였지만, 큰 틀에서는 보면 경계인 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화장품 연구소 관점에서 경계인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화장품 연구소에는 스킨케어 연구소와 메이크업 연구소라는 2개의 커다란 중심부가 있다.
2개의 중심부에서 근무하는 많은 연구원들은 각자 자기 전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많은 개선은 있었지만, 혁신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권영선 교수는 중심부에 속한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할 수 있고, 위기를 느끼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추구하지만 그들의 변화 속도는 경계인의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관계가 기존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화장품 연구소의 인적자원 관리는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지식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기존 질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새로운 경계인의 양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계인들은 기존의 고정 관념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기존 중심부에 속한 사람들의 관점이 아닌 경계인의 시선으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부서 간 장벽을 허물 수 있고, 이를 통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할 수 있다.
화장품 경계인 양성소 코스맥스 랩
코스맥스는 경계인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연구원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조직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드디어 랩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탄생하게 되었다.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연구원들로 구성된 새로운 랩 조직은 기존 화장품 연구소의 고정 관념 탈피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기존에 사용하던 고유한 원료, 연구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상대방의 노하우와 경험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등의 개발 부서와는 별개로 소재 랩과 이노베이션 랩이라는 새로운 경계인들을 만들었다.
이들 부서는 개발부서 경계인들이 놓칠 수 있는 중장기 미래 신기술 개발을 담당하여 단기 성과에 매몰될 수 있는 기업체 연구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야심찬 시도에도 불구하고 초기 랩 조직은 많은 혼란을 겪었다. 마치 분단국가의 통일 직후 사회 혼란처럼 각자의 연구방법과 조직문화의 차이로 혼란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곧 해결될 수 있었다.
빠른 혼란기가 지난 후 경계인들은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크림과 파운데이션 연구원들이 의기 투합하여 만들어진 랩 조직에서는 스킨케어 기능과 메이크업 기능을 동시에 갖는 톤업크림을 개발하였다.
선크림과 스틱 제품 연구원들은 제품 사용 시 손에 묻지않는 소비자 편의성이 향상된 선스틱을 개발하여 엄청난 성과를 달성하였다.
에센스와 마스크시트 연구원들은 다양한 스킨케어 내용물이 함침된 마스크시트를 개발하였고, 파우더 연구원들은 젤리팩트와 같은 새로운 혁신 제품 개발에 성공하였다.
한편 소재 랩에서는 세계 최초로 인체 피부에서 항노화 유익균을 발견하여 제품화에 성공하였다.
또한 고체 발효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인삼 등 다양한 천연 소재에 대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노베이션 랩은 화장품과 이종 산업의 융합이라는 미래 기술 개발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이용되는 액정 기술을 화장품에 접목하여 인체 피부 구조를 모사한 액정 화장품을 개발하였다.
또한 자외선 차단제로만 알려진 선케어 화장품의 미래 신기술 영역인 적외선 차단 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향후 국제표준 선점을 준비하는 등 다양한 기술개발에 매진하였다.
이러한 다방면에 걸친 혁신 활동과 성과로 인하여 코스맥스는 2016년 IR52 장영실상 기술혁신상 수상의 영예를 얻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코스맥스 경계인들은 자신의 전문영역에만 안주하려던 습성에서 벗어나 확장된 시야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무형의 성과도 얻게 되었다.
사실 랩 조직의 성과는 금전적인 성과보다 연구소의 체질을 개선하여 새로운 연구소 문화를 만든 데에 있다.
소통의 부재, 연구의 중복과 부서 이기주의 등 그동안 인적자원 관리에 장애가 되었던 다양한 악재들이 점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코스맥스 랩 조직은 우수한 인적자원보다 효율적인 인적자원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검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 인적자원 관리에 대한 전략적 제언
코스맥스 랩 조직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있었지만, 시스템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여기에서는 연구소 인적자원 관리에 대한 몇 가지 전략적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보이지 않는 헌신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고성과자 위주의 시상을 하게 된다. 랩 조직이 정착되면서 보이지 않는 헌신자들의 보상 이슈가 발생하였다.
집단지성의 지혜를 통해 얻어진 성과는 보상 체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구성원들이 마음의 상처를 쉽게 받을 수 있다.
다행히 공동 시상 또는 가점 제도를 이용하여 보이지 않는 헌신자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였다.
두 번째로 제안제도가 있다. 제안제도는 업무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거나 기존 대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경우 회사에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제안을 통해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 개인과 회사 모두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매달 적극적인 제안이 넘쳐나고 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 제도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디어 미팅이 있다. 제안제도가 개인의 창의적인 생각에 관한 것이라면 아이디어 미팅은 집단지성의 지혜를 목적으로 한다.
서로 다른 랩 조직의 연구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가볍게 티타임을 즐기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아이디어 미팅은 생각보다 많은 우수한 아이디어를 도출하였다.
인적자원 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제언은 가능하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운영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그것을 잘 운영하는 것이 결국 인적자원 관리의 핵심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코스맥스는 B2B 사업이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에 혁신은 곧 회사의 존망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사회구조 변화에 따라 인적자원 관리 또한 끊임없이 바뀔 수밖에 없다.
코스맥스 연구소의 인적자원 관리는 당연히 코스맥스에 최적화된 방법이지만, 그 본질과 운영 방법은 다른 기업에서도 얼마든지 벤치마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화 시대 코스맥스의 경계인들이 앞으로 어디까지 혁신해 나아갈지 많은 관심을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