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 과학으로 대중과 소통하다 과학커뮤니케이터
R&D 나침반은 최신 과학기술의 이슈와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글_ 류준영 기자(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다양한 곡을 뛰어난 가창력,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불러 인기를 모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제이플라(JFla·본명 김정화·32). 그가 지난해 돌연 신문과 방송뉴스에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그의 유튜브를 구독하는 팬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가운데 개인 유튜버 구독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건 제이플라가 처음이다.
당시 이 숫자는 올해 3월을 지나며 1,100만을 찍었다. 불과 세 달 만에 100만 명이 더 모였다.
제이플라와 같은 1인 미디어들을 ‘유튜버’(Youtuber·유튜브 영상 제작자)라고도 부른다.
연예인 인기 못지않은 이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권력이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2017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도티(게임 분야, 약 15억 9,000만 원 수익), 대도서관(게임 분야, 9억 3,000만 원 수익)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 시사, 뷰티 분야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분야 유튜브 채널도 하나둘 개설되는 추세이다.
대표적으로 ‘과학쿠키’ 채널을 운영 중인 이효종 씨를 꼽는다.
그는 최근 KBS와 함께 국제도량형총회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과학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가 맡은 역할은 과학 해설이었다.
그는 그곳 분위기를 전달함과 동시에 130년 만에 킬로그램(kg), 암페어(A), 켈빈(K), 몰(mol) 등의 단위 정의가 바뀐 이유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KBS 제작진은 대학 전문교수 못잖은 그의 해설능력에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이효종 씨가 과학 유튜브 채널 과학쿠키를 운영한 건 14개월 정도에 불과하나 그의 인기는 단기간 구독자 15만 명, 누적조회수 500만 회를 기록하며 가히 폭발적이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 물리선생님이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을 뛰쳐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부터 과학을 가르치는 일을 꿈꿔왔죠.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과학지식은 입시 위주다 보니 매우 한정적이었어요. 저는 교과서 범위를 벗어난 더 많은 지식을 알려주고 싶었죠. 과학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를 함께 전달하면 이해가 더 쉬워집니다. 이런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튜브를 선택하게 됐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해외에 나가 해외리포트 형식의 콘텐츠를 제작·배포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겁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사직을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만뒀어요.”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나 말 그대로 과학으로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최근 라돈 침대 방사능 문제, 살충제 계란, 가습기 살균제 등의 문제에서 보듯 정확한 과학기술 정보 유통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이 없다.
그 역할을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하는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분포를 보면 대학원생부터 대기업·중소·중견기업 연구원, 제약회사 종사자, 관련 창업가까지 다양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10월 ‘과학문화산업 혁신 성장안’을 통해 과학커뮤니케이터를 한국고용정보원의 표준직업분류에 포함시켜 전문직업군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전문 과학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하는 ‘사이언스 아카데미’ 등도 올 들어 개설·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 등으로 인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는 과학문화 대중화 해법을 어쩌면 과학커뮤니케이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하지만 당면한 숙제가 있다.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채널 ‘과장창(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을 개설한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인력양성실 김재혁 연구원은 “과학 기술 전문 팟캐스트가 더 많이 등장하기 위해선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총 1만 9,500개 정도의 팟캐스트가 있는데 거기서 종합 10위권 안에 들어야 광고가 들어와 수익을 얻을 수 있죠. 팟캐스트 플랫폼은 유튜브처럼 모든 광고수익을 나눠가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그래서 아무리 구독자가 많아도 종합 10위권에 진입하지 못하면 돈을 벌기 힘듭니다.”
일본 정부는 일찍이 과학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인정하고, 관련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다.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지식의 활용이나 사회환경을 담당하는 다양한 인재 양성’의 4가지 인재상 중 하나로 ‘과학커뮤니케이터’를 꼽았다.
훗카이도 대학, 도쿄대학, 와세다대학에서는 과학커뮤니케이터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일본 훗카이도대학교에서 열리는 CoSTEP(Communication in Science & Technology Education & Research Program)이 대표적이다.
대학 관계자는 “스타 과학커뮤니케이터에 의존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세대 계층의 시민 과학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지속적”이라며 이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4월 21일은 ‘과학의 달’이다.
우리 정부는 이달 22일~26일을 ‘과학주간’으로 선포하고 청계광장, 세운상가 등 서울 도심 곳 곳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과학문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행사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주축이 돼 사이언스버스킹, 과학 상황연극 등을 펼칠 계획이다.
한편, 과학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온라인에서만 과학뉴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나 개인블로그가 큰 인기를 얻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세계 유수의 대학 및 연구기관의 최신 과학뉴스를 선보이는 사이언스데일리는 세계적으로 월 600만 명이 방문하고 있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재커리 마이어스의 블로그는 하루에 약 2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과학커뮤니케이션은 아직 불모지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은 “정작 변화의 주역인 과학기술인들은 팟캐스트나 SNS 참여도가 극히 낮다”며 “과학기술과 ICT가 사회경제 발전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이 미디어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과학기술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또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가는 과학기술은 연구개발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