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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ech - 생활 속의 공명현상, 어디서 찾을 수 있나?

Life In Tech는 우리 생활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각종 과학기술들을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서 살펴보고, 그것이 다양하게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칼럼입니다.


글_ 최성우 과학평론가

공명(共鳴: Resonance)이란 물리학적, 공학적 용어로서, 특정의 고유 진동수를 지닌 물체가 그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힘을 주기적으로 받을 경우 진폭과 에너지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키며, 공진(共振)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진동은 소리, 기계적 진동과 같은 역학적 진동도 있고, 전자기파 등의 전기적 진동 등 매우 다양한데, 공명현상이 일어나면 원래 세기가 약했던 파동도 큰 힘으로 증폭이 될 수 있다.

일선 학교의 과학 교과서에는 공명의 원리 및 각종 실험 등을 통하여 공명현상을 확인하는 내용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공명현상은 자주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세탁기의 탈수 과정이다.

세탁물을 고속으로 탈수시킬 경우에는 세탁기가 심하게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탈수 과정이 끝나서 세탁통의 회전 속도가 줄어들면 세탁기가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크게 흔들린 후 멈추게 된다.

세탁기의 세탁통이 돌아갈 경우 회전속도에 따라 세탁기에 규칙적인 충격을 가하게 되는데, 통이 빠르게 회전할 때에는 세탁기의 고유진동수와 달라서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흔들림이 별로 없다.

그러나 회전 속도가 줄어들면서 세탁기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하게 되는 순간, 공명이 일어나 크게 흔들리는 것이다.


아찔한 사고를 만드는 공명현상

탈수과정에서의 공명은 세탁기를 크게 흔드는 정도이지만, 공명현상이 심해지면 다리가 무너지거나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공명현상으로 멀쩡하던 다리가 붕괴되는 일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있었는데, 1940년에 미국 워싱턴 주의 타코마 해협에 놓여있던 다리가 바람으로 무너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타코마(Tacoma)대교는 미국의 현대적 토목기술을 동원하여 시속 190㎞의 태풍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설계하여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완공된 지 석 달 만에, 시속 70㎞ 정도의 바람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아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전문가들이 상세히 조사해본 결과, 바람에 의한 공명현상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타코마대교는 양쪽 교각에 연결한 케이블에 다리가 매달려 있는 현수교로서, 바람이 불 때마다 약간의 흔들림이 생겼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람에 의한 진동이 다리 자체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면서 공명에 의하여 흔들림이 점점 커졌고, 결국은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다리를 건설할 경우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런 데에 대한 보완을 철저히 하게 되었다.

바람이 최초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공명현상에 의한 다리의 붕괴는 타코마대교 사고 이전에도 있었다.

즉 1850년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앙제다리(Angers Bridge) 사고인데, 478명의 군인들이 일제히 발을 맞추며 앙제 다리를 걸어가다가 공명이 일어나 다리가 무너져 버렸다.

이 사고로 226명의 군인들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는데, 그 이전인 1831년 영국 맨체스터에서도 군인들의 행진에 의해 다리가 붕괴되는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만약 군인들이 일사분란하게 발을 맞추어 행진하지 않고, 그냥 무질서하게 걸어갔더라면 공명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다리가 무너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발맞춤으로 인한 공명이 건물을 흔들리게 한 일은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는데, 서울의 한 고층건물이 갑자기 흔들리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던 것이다.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조사 결과 그 건물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실시했던 태보운동의 공진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즉 피트니스 센터의 수강생 23명이 강사의 구령에 맞추어 태보를 하면서 발을 구르는 동작을 반복하였는데, 여기서 발생한 진동수가 건물의 고유 수직진동수와 일치하면서 공명현상이 발생하여 건물이 흔들렸던 것으로 결론 내려진 것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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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들을 보면 공명현상은 교량, 건물 등을 위험하게 만들거나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즉 공명현상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우리의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적용되는 경우도 매우 많은 것이다.

공명현상이 없다면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가 없다.

즉 현악기는 울림통 재질과 형태에 따라서 고유 진동수가 달라지는데, 이것이 현악기 줄의 진동수와 일치하여 공명이 잘 일어나도록 만들어진다.

고가의 명품 악기는 연주하는 소리가 사람의 귀에 보다 아름답게 들리도록 공명이 더욱 정교하게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늘 보고 듣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역시 공명현상이 없다면 제대로 즐길수가 없다.

방송국에서는 음성이나 영상 신호를 고주파에 실어서 전자기파의 형태로 멀리까지 송출한다.

그런데 TV, 라디오 방송국이 한두 개가 아니므로, 지상파 방송국들은 각각의 고유 주파수(진동수)를 지니고 있다.
 
가정에서는 채널을 돌려가면서 라디오, TV수상기의 수신주파수가 자신이 원하는 방송의 주파수와 공명이 되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음식을 데우거나 조리하는 데에 사용되는 주방의 필수 가전제품인 전자레인지 역시 공명현상을 이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영어로는 마이크로웨이브 오븐(Microwave Oven)이라 불리는 전자레인지는, 물 분자의 고유진동수에 해당하는 마이크로파를 가해줌으로써 음식 속의 물 분자가 공명운동을 할 때 생기는 마찰열로 조리하는 것이 그 원리이다.

전자레인지의 핵심 부품인 마그네트론은 마이크로파를 만들어내는 장치인데, 여기서 발생하는 마이크로파는 전자기파의 일종으로서, 그 파장이 적외선보다는 길고 텔레비전 방송의 전파보다는 짧다.

마이크로파는 공기, 유리, 종이 등은 투과하지만 금속에는 반사되고 물에서는 흡수된다.

따라서 전자레인지에는 금속으로 된 용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산소원자 하나에 수소원자 두 개가 공유 결합한 물 분자는 104.5도의 각도를 이루는 형태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중성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전기적인 극성을 띠게 된다.
 
따라서 외부에서 전자기장이 가해지면 각각의 물 분자는 그 영향을 받아서 운동을 하게 되는데, 마이크로파에 의해 공명된 물 분자들은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인접의 물 분자와 마찰열을 발생시킨다.

빵이나 밥, 채소, 육류 등 음식물은 대부분 물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마찰열로 손쉽게 음식물을 가열하고 조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 몸의 상태나 질병 등을 진단하는 데에도 공명현상은 유용하게 활용된다.

큰 병원에서 볼 수 있는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 영상장치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공명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다만 다른 전자기기와는 달리 원자핵의 자기공명, 즉 강한 자기장에 놓인 수소 원자핵이 공명하면서 방출하는 전자기파로 영상을 만든다.

이처럼 우리 생활 주변에는 공명현상이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