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 찬란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T. S. 엘리엇 El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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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박은몽 소설가
어디서 비롯된 말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너도 나도 인용하게 되는 말이 있다.
창의적인 말일수록 상황에 따라 이렇게 또 저렇게 다양하게 해석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런 말 중 하나가 바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이다.
4월의 찬란함과 비통함을 동시에 전달해 주는 듯한 이 말은 바로 미국의 시인 엘리엇이 그의 대표작인 < 황무지 >에 쓴 시구이다.
미국 출신 작가인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이 1922년 발표한 < 황무지 >란 시는 4월이 되면 더 생각나는 시다. 이 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전개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무려 433행에 달하는 < 황무지 >는 제1부 죽은 자의 매장, 제2부 체스 게임, 제3부 불의 설교, 제4부 익사, 제5부 우레가 말한 것의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부 첫 구절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 황무지 >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가장 현대적인 시로 평가되고 있다.
엘리엇은 이 < 황무지 >를 발표하고 시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고, 1948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국내에서는 < 황무지 >보다 뮤지컬 < 캐츠 >의 원작자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두 시인이 만들어낸 예술, < 황무지 >
< 황무지 > 앞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에즈라 파운드는 엘리엇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는데, 엘리엇은 자신의 대표작 앞에 에즈라 파운드에게 시를 바친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보다 나은 예술가”라는 극찬으로 치켜세우면서 말이다.
“보다 나은 예술가”라는 것은 단테의 < 신곡 >이란 작품에서 나오는 말로서 12세기 이탈리아 시인 다니엘을 찬양한 문구이다.
엘리엇은 고전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에즈라 파운드를 예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엘리엇이 자신의 소중한 창작물의 서두에서 에즈라 파운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데에는 사연이 있다.
에즈라 파운드가 없었더라면 < 황무지 >라는 작품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황무지 >의 초고는 지금의 수 배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었다. 그 방대한 분량을 지금의 < 황무지 >가 될 수 있게끔 고쳐준 사람이 바로 ‘에즈라 파운드’였던 것이다.
엘리엇은 1914년경에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수천 행에 달하는 이 시의 초고를 끝낸 것은 1921년 말 경이었다.
특히 1921년 하반기 몇 달 정도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원고작업에 매달렸다.
이렇게 완성한 초고를 에즈라 파운드에게 보여주었는데, 에즈라는 가차 없이 줄일 것을 제안했다.
엘리엇은 파운드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수정 작업을 해 나갔고, < 황무지 >가 인정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서서히 확신하기 시작했다.
1968년 뉴욕 공립도서관의 버그 콜렉션에서 그 초고가 발견되었는데, 평범한 원고의 모습이 아니었다.
타자로 친 부분도 있고 부분적으로 육필 원고가 섞여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인의 심오한 문학, 철학, 언어에 대한 깊은 조예는 물론 여러 사람과 함께한 치열한 작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천 행에 달하던 황무지 초고는 433행으로 정리될 수 있었고, 미국 출신의 엘리엇이라는 시인은 영국 시문학계에 분명한 금자탑을 세울 수 있었다.
정서가 메말라버린 현대의 ‘The Waste Land’
엘리엇은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 황무지 >를 작업했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은 모든 것이 황폐하였는데, 특히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우울, 급속도로 진행되는 현대화로 인해 정서적인 황폐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엘리엇이 말한 황무지는 바로 전후 현대사회에서 보이는 정신적 황폐가 만연한 불모지를 암시한다.
엘리엇 스스로가 황무지가 상징하는 것에 대해 암시하려는 듯 작품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네는 대답했다. 죽고 싶어.”
희랍신화에서 쿠마는 유명한 무녀다.
그녀는 아폴로신에게서 많은 햇수의 수명을 받았으나 그만큼의 젊음도 함께 달라는 청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수명만 받고 젊음을 얻지 못했다.
그 결과 늙고 메말라 들어 조롱 속에 들어가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죽음보다 못한 죽은 상태, 그것이 황무지인 것이다. 시인은 정서적 황폐에 빠진 전후 사회를 그러한 황무지에 비유하고 있다.
모든 세상을 환히 비추고 투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4월. 정서적 가사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4월은 오히려 잔인한 달이다.
또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졌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찬란한 4월은 그 찬란함만큼 더 잔인한 달이 된다.
이처럼 시인이 고뇌를 통해 만들어낸 시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재창조되고 있다.
엘리엇은 정서가 황폐화된 현대사회를 꼬집었지만, 정작 자신의 난해한 시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깨우고 있다.
살아 있던 그는 지금 죽었고 He who was living is now dead
살아 있던 우리는 지금 죽어간다 We who were living are now dying
약간씩 견디어 내면서 While a little patience
- 엘리엇의 시 < 황무지 > 제5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