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성장과 탄소중립이라는 불가피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과거 압축 성장의 상징인 '한강의 기적'은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통해 완성되었다. 1962년부터 34년간 연평균 9.5%의 성장을 이끈 이 모델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산업을 주역으로,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공급망과 경부고속도로 중심 물류망이 맞물린 결과였다. 기후변화 대응이 전 지구적 과제로 부상한 오늘날, 이 성공 유산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GDP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자 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9위라는 현실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한다. 2024년 기준, 국내 탄소 배출의 약 70%는 산업(37.6%)과 에너지 전환(32.7%) 부문에서 발생하며, 이 중 한강의 기적을 이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3대 업종이 산업 부문 전체 배출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들은 포기할 수 없는 국가 기간산업이지만, 수소환원제철, CCUS(Carbon Capture, Utilizaiton and Storage)등 친환경 전환 노력은 '대규모 청정에너지 확보'라는 전제 조건 앞에서 더딘 걸음을 보인다. 탄소 기반 원료라는 본질적 한계와 막대한 전환 비용이 현실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에너지 전환의 길목에서 마주한 도전은 복합적이다. 첫째,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원자력은 무탄소 에너지원으로서 중요한 선택지이나, 안전성과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SMR 등 차세대 기술의 가능성에도, 원자력의 녹색 에너지 분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우리 에너지 정책에 중대한 과제를 던진다. 둘째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전력망 문제다. 섬과 같이 고립된 전력망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수용하기에 취약하며, 이미 발전을 중단시키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분산형 전원 체계 전환이 시급하나, 한국전력의 막대한 재정 적자는 신규 전력망 투자에 큰 부담이다.


설상가상으로, 미래 핵심 성장 동력인 AI 산업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며 에너지 수요를 극대화한다. IEA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기존 검색보다 약 10배의 전력을 소비하며,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3대 강국'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AI 기술 발전, 양질의 데이터 확보, 초저전력 반도체 개발과 더불어, '안정적인 청정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지 않고, 에너지 전환이라는 도전을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적 선택에 달려있다. 기간산업의 성공적인 친환경 전환,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아우르는 최적의 에너지 믹스 구축, 지능형 전력망 고도화, AI 산업의 에너지 효율 혁신 등 복합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때, 우리는 탄소중립 시대를 선도하며 “두 번째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