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산업기술 인력 수급 애로는 공급 중심 정책으로는 해소하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공계를 기피하는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되어, 이공계 지원 특별법까지 마련하여 공급 중심 정책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인구 감소 충격은 2000년대 초반에 직면한 이공계 기피 현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공계 학생의 상대적인 숫자 감소가 아닌, 전체 대학(원) 학생 수의 절대 규모 감소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이공계 대학(원) 진학의 조건을 좋게 한다 해도 증가할 수 있는 인원수의 한계는 뚜렷하다.
이에 더해, 적은 인원으로 기존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이고 질적 고도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제는 우수 인재의 후보군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그중의 일부만 잘 양성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우수한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 다시 말해 인재 성장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해진 것이다. 과학기술인재 정책도 일단 대학(원)에 더 많은 인원을 유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인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성장하게 지원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임금 수준이나 좋은 일자리로의 취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미래 세대의 성향과 입장을 고려해 보자. 그럼 우수한 산업기술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재를 이공계 대학(원)으로 끌어들여 진학시키는 것보다, 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제시하거나 계속 성장해 나갈 가능성을 높여주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좋은 산업기술 일자리와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여, 우수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도록 만드는 전략이 절실한 것이다.
또한 인구 감소로 인해 유입할 수 있는 인재의 규모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질적으로 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이공계 대학(원) 교육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체계적으로 연구자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대학이 투자하고, 이들이 갖춘 지식이 현장과 연결될 수 있도록 기업도 함께하는, 다시 말해 산‧학‧연‧관이 모두 산업기술 인재의 육성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인재 중심의 과학기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쌓은 지식이 체계적인 경력개발과 연계되어 기업 및 연구 현장에서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 즉 개개인이 산업기술 인재로서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진학 단계를 넘어 경력개발 단계까지 이어지는, ‘전 생애주기 진로 지원 체계’의 구축이 산업기술 인력정책의 주요한 역할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여태까지의 성공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한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인력은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도구 혹은 인프라의 하나에 불과했다. 특정한 기술의 개발이나 산업 발전을 위해, 양적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공급 중심 정책만 펼쳐도 충분한 생산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산업기술 인력의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활약해야 하는 무대, 즉 일자리에서 요구하는 역량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기술 지식을 갖추고 맡은 일만 해내는 게 아니라, 빠른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역량 등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재는 대학만의 노력으로는 키워낼 수 없다. 또한 이제는 대학(원)에 진학한 인재 몇몇이 스스로 잘 성장해 기업에 충분하게 공급되는 시대도 아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성공 방식을 넘어, 인재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산‧학‧연‧관 모든 주체의 시각을 바꾸고 행태를 바꾸는 게, 어렵지만 절실한 시기가 온 것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팀장을 거쳐 현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과학기술 인력정책을 주로 연구해 왔으며,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선착의 효≫(공저), ≪K산업혁신 2.0≫(공저), ≪대학리셋≫(공저), “생성형 AI 시대의 인재상과 확보 전략”, “과학기술인력정책의 발전과정과 한계, 미래 방향에 대한 제언”, “과학기술 출연(연) 연구자의 경력개발 현황과 개선방안”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