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공격적 R&D 투자 전쟁

전 세계가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산업기술정책 경쟁에 뛰어들면서, 가장 먼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적극적인 R&D(연구개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의 확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체적인 R&D 확대가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핵심기술’의 확보가 국운을 결정하는 기정학(技政學; techpolitics) 시대에는 R&D 투자가 더욱더 중요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R&D 투자전략 방향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 R&D 투자가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1) 정치와 R&D 투자의 분리: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R&D 투자

우리나라가 천연자원의 부족 등 지정학적 악조건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기술혁신에 대한 열정과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기술혁신 정책에도 정치적 이슈가 결부되면서, 원자력이나 친환경에너지 같은 특정 기술 분야에 대한 R&D 삭감이나 급격한 정책 전환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R&D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정책 기조 유지’가 중요하다.

2) 한국형 테마섹: 경직된 정부 주도 R&D 투자 방식을 민간 중심으로 혁신

정부의 R&D 투자는 R&D의 성격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 회계연도에 따르는 출연금 집행이 대부분이며, 보조금(subsidy)이 아닌 출연금(grant)임에도 불구하고 보조금에 준하는 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직적인 국가 R&D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 민간이 창의적인 R&D를 주도할 수 있도록, 특수법인 형태의 R&D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림1] 한국형 테마섹(R&D PPP) 개념

 

3) 첨단산업과 주력산업, 뿌리산업 간의 균형

양자, 바이오,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은 미래 먹거리로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글로벌 비교우위를 점해야 하기에 중요하다. 그러나 산업기술의 다른 한 축은 전통 제조업과 뿌리산업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매출과 부가가치, 일자리는 기존산업에서 창출되고 있다. 첨단 미래산업이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기존 제조업을 고도화하거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맞춤형 투자도 이루어져야 한다.

4) R&D 투자 방식 다변화

기술혁신의 경로 복잡성, R&D의 높은 불확실성, 융복합 기술의 증가 등 변화를 맞이하여, 선진국은 정책 혼합(Policy mix) 기반의 기업 지원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투자 방식을 포트폴리오로 구성하여, 기업의 복잡한 기술혁신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보증기금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출연금과 조세지원만을 결합하는 다른 나라들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보유하고 있다. R&D 출연금을 기술 보증에 따른 융자나 조세지원과 결합한다면, 기업의 자체적인 투자를 견인하는 긍정적인 보완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5) 낡은 R&D 조세지원 제도 혁신

우리나라는 상당히 다양한 R&D 조세지원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조세감면의 대부분은 1981년에 도입된 기업부설연구소 제도와 맞물린 ‘연구 인력 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와 신성장동력산업 투자와 연결된 ‘통합 투자세액공제’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세감면은 산학연 협력을 촉진하지 못한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고, 융복합 신산업에도 적용할 수 없으므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6) 정부 R&D 프로젝트 관리 방식에 대한 행정 혁신

R&D 투자뿐 아니라, 출연금이 기업에 전달되고 관리되는 방식도 혁신해야 한다. 강제적 산학연 컨소시엄 구성을 완화하고, 매출액이 아닌 기술에 기반한 기업평가를 도입하는 등 R&D 예산사업의 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과다한 제출 서류와 복잡한 행정절차도 문제이다. 이러한 행정부담은 특히 영세한 중소기업들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브로커들이 개입하여 R&D 시장을 왜곡하는 문제까지 발생시킨다.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에서 공학사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기술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계로 옮기기 전에는 중소기업청, 교육과학기술부 등에서 공직 생활을 하며 다양한 기술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과학기술 혁신 정책, 인공지능 기반 정부, 디지털 전환, 기업가정신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