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연초부터 우리나라 과학계가 들썩였던 소식이 있었다. 바로 연세대학교 양자산업융합선도단(QILI)이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초전도물질을 비롯한 소재 개발 분야를 연구한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이 당시 상온·상압 초전도체인 ‘LK-99’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가 직접 참여하면서 더욱 큰 화제가 됐다.

그런데 연세대 양자산업융합선도단이 보유했다는 양자컴퓨팅 기술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터가 처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를 양자역학의 법칙으로 해결하는 컴퓨팅 기술이다. 통상 과학자들은 인간이 풀기에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컴퓨터에 들어있는 수천 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이 복잡한 계산을 대신해 준다.

하지만 슈퍼컴퓨터도 풀지 못하는 난제가 있다.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의 경우 수많은 프로세서를 활용해 모든 방법을 시도하더라도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봉착했을 때 어쩌면 양자컴퓨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를 비롯한 일반적인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이진수(비트)를 구성한다. 예컨대 4비트 컴퓨터는 0101이나 1010과 같은 4개의 비트를 묶어 정보를 구성한다. 

이에 비해 양자컴퓨터는 비트 대신 양자적 상태의 조합인 퀀텀 비트(Quantum Bit), 혹은 큐비트(Q bit)를 이용해서 연산한다. 큐비트는 0과 1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고, 0~1 사이의 어중간한 상태를 나타내다가 관측하는 순간 0 또는 1로 결정된다. 즉,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와 달리 하나의 입력값에 대해서 하나의 결과만 내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슈퍼컴퓨터는 어떠한 입력값을 입력하느냐에 따라 선형적으로 출력값이 결정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알려진 입자 상태의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을 이용한다. 양자 중첩은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말한다. 이론적으로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수백 년이 걸려도 풀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기초과학연구원에 따르면, 10개의 큐비트를 가진 양자 컴퓨터는 2의 10제곱의 비트를 갖는 셈이어서, 한 번에 처리하는 정보량이 비트 체계의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다.

양자컴퓨터에 비하면 슈퍼컴퓨터가 ‘주판 수준’이라고 비유되는 배경이다. 다리오 길 IBM 리서치 수석 부사장은 “양자 컴퓨터가 기존 접근 방식을 뛰어넘어 자연의 물리 현상을 정확하게 계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제 양자컴퓨팅이 새로운 과학적 활용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양자컴퓨터는 에너지, 화학, 의학, 금융 등 다양한 사업과 분야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물론 가능성으로 보면 적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겠지만, 미국의 다국적 복합기업 하니웰은 양자컴퓨터가 바꿀 현실성 있는 분야를 5가지 선정해 발표했다. 첫째는 항공우주 분야다. 기후는 슈퍼컴퓨터 예측이 종종 빗나가는 대표적인 분야다. 예를 들어 대규모 폭풍으로 항공 운항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을 때, 양자컴퓨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하는 날씨 변수를 양자적으로 고려해 항로에 관한 최적의 대안을 결정할 수 있다.

둘째, 화학 분야에서도 양자컴퓨터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인류는 여전히 새로운 분자 구조의 속성이나 작용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 있다. 양자컴퓨터가 확률적 관점으로 분자 모델링에 접근한다면, 화학 분야에서 보다 다양하게 양자컴퓨팅이 응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니웰의 고성능 재료·기술·비즈니스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가빈 타울러는 “미래에는 양자컴퓨팅을 사용해 지구 온난화 영향이 낮은 새로운 냉매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분자의 특성을 예측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셋째는 의료 및 제약 분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지난 수년 동안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백신과 치료제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었다. 새로운 의료 요법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10년 이상이 걸리고 최소 25억 달러(3조 2,900억 원) 이상이 소요되는 데도, 실패 확률이 성공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컴퓨팅의 성능을 활용하면 표적 식별, 분자 구조모델링 등 의료·제약 연구 분야에서 제품 개발 일정을 단축하고 품질을 향상할 수 있다.

넷째는 물류와 로봇 공학 분야다. 전자 상거래와 물류 분야는 상품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과정이 사업성과 직결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창고, 공장 등 유통 과정 전반에 필요한 장비에 센서를 부착해야 하고 여기서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 양자컴퓨터는 대량으로 발생하는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해 최적의 경로를 판단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양자컴퓨팅은 금융 기관에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하니웰의 예상이다. 예컨대 금융투자 시장에서 양자컴퓨터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고 변종 금융 파생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거나, 리스크를 감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처럼 막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양자컴퓨터가 국내에 들어온다. 연세대는 오는 6월 송도에 위치한 국제캠퍼스에 국내 최초로 IBM의 양자컴퓨터를 도입할 계획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 센터도 조성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인천 송도 신도시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2단계 부지에 양자컴퓨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연세사이언스파크에 양자컴퓨팅센터(4,319.7㎡)와 양자연구동(4,249.7㎡)을 포함한 양자클러스터를 신설한다. IBM의 최신 사양인 ‘127-Qubit(Eagle Processor) IBM 퀀텀 시스템 원’이 이곳에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한민국의 양자컴퓨터 연구가 진일보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IBM은 양자 하드웨어 개발에서 글로벌 선두 주자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에 실제로 양자컴퓨터가 들어서면 한국은 미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IBM 퀀텀 컴퓨팅 센터를 보유하게 된다.



연세대 관계자는 “양자컴퓨팅은 여러 산업에서 중요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유망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초전도체 후보 물질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퀀텀에너지연구소와 손잡은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연세대 양자산업융합선도단은 “기술 및 인프라를 공유하며 초전도물질 등 새로운 물질의 개발, 특허 확보, 상용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고, 퀀텀에너지연구소도 “연세대와 협업으로 초전도물질과 같은 신소재 개발, 물질 고도화·상용화까지의 과정을 앞당길 수 있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양자컴퓨터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데 실제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일반적으로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구현하려면 컴퓨터 내부를 영하 270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실온의 바람이나 입자가 큐비트를 불안정하게 할 경우 출력값이 다르게 나올 수 있어서다. 이런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도 문제다. 또 극저온에서 작동하는 큐비트와 시스템을 연결하는 케이블의 신호 손실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여전히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지만 그럼에도 양자컴퓨팅은 인류의 미래를 바꿀 거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양자 상태’다. 오는 6월 한국에 들어오는 양자컴퓨터를 두고 과학계가 기대를 품고 있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