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



기업의 R&D 전략과 조직관리는 속해 있는 산업의 특성과 기업 규모, 그리고 기업의 경영전략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R&D 전략과 조직관리 방식보다는 전체적인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R&D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첫 번째로 유념해야 할 것은 사업전략과의 연계성(alignment)이다. 기업 R&D 활동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신규 사업 개발을 통해 경영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연계성은 단기적인 프로세스 관점으로 볼 때, 사업전략 수립 과정과 R&D 전략 수립 과정이 서로 중첩되어 상호 조율(match)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먼저 사업전략이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R&D 전략이 따라갈 수도 있으며, 반대로 연구소의 선행 R&D 전략에 의한 성과를 기반으로 신사업 개발이나 기존 사업전략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신사업을 창출하여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업전략의 변화뿐 아니라 기업가정신을 가진 경영자와 함께 새로운 경영방식과 조직문화도 필요한 어려운 접근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업부와 연구소 간 핵심기술(core technology)에 대한 합의와 R&D 전략의 목표로서 기업의 핵심 및 원천 기술 역량 확보, 신규 사업 기술 개발, 기존 사업(차세대) 제품 개발 간의 비중이 정해진다. 



 

두 번째 유념해야 할 것은 바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R&D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결정이다. R&D 프로젝트는 기술적인 난이도와 성격에 따라 급진적(radical), 점진적(incremental), 지원적(supportive) 등으로 구분될 수 있고, 기간에 따라 단기(1~2년), 중기(3~5년), 장기(5년 이상) 등으로 구분된다. 또 과제 목적에 따라 탐색 과제, 연구 과제, 개발 과제, 사업화 과제 등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이는 R&D 전략 목표와 방향에 따라 그 포트폴리오 구성과 비율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단순화하면 기존 기술과 역량을 기반으로 단기 성과를 창출하는 활용형 R&D 과제(exploitation)와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개발하는 장기적 관점의 탐험형 R&D 과제(exploration)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특성은 표 1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기업의 사업전략에 따라 그 비중은 달라질 수 있으나 장기적인 지속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다만 두 가지 과제의 특성은 매우 달라 이를 위한 재원 확보와 조직 운영, 그리고 성과평가 측면에서 서로 다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활용형 과제의 경우 관련 사업부의 예산 지원과 상호 협력과 교류, 그리고 단기적인 성과평가가 중요하다. 탐험형 과제의 경우에는 CEO나 전사적인 예산 지원과 후원, 기존 R&D 활동과의 갈등 관리,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의 성과평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세 번째 유의할 점은 R&D 전략과 과제의 성격에 따라 연구소 조직의 설계와 운영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표 2는 기업의 중앙연구소와 사업부 연구소 조직의 차이점을 요약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중앙연구소와 기존 사업의 경쟁력과 성과를 높이기 위한 사업부 연구소의 조직 운영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림 1은 이러한 차이를 염두에 두고 연구소 조직 운영의 핵심을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로축에는 기업의 핵심기술 분야별로 구분된 비교적 고정적인 조직이 있고, 가로축에는 이러한 기술을 엮어 구체적인 개발이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별 조직으로 구분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R&D 조직은 이처럼 matrix 성격을 갖고 있으나 기존 연구 결과는 양 축을 동일한 비중으로 가져가는 것보다 R&D 전략에 따라 기술 역량과 프로젝트 성과 중 하나를 더 강조하는 비대칭적 조직 운영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연히 기술을 책임지는 리더와 프로젝트 성과를 책임지는 리더 간 상호 협력은 항상 필요하지만, 핵심기술 역량 확보와 강화가 더 중요한 경우 기술 분야별로 조직화하고 기술 리더(technology leader)의 권한과 책임을 높여야 한다. 반면, 프로젝트 성과가 더 급하거나 중요한 경우 프로젝트 분야별로 조직화하거나 최소한 프로젝트 리더의 권한과 책임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대신 연구원이 특정 연구실이나 프로젝트팀에 국한되기보다 자신의 역량과 관심에 따라 관련 기술 분야의 세미나나 연구회에서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관심 분야 연구회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핵심기술 분야에서 현재 누가 center of excellence이며 또 미래에 누가 성장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연구소 외부의 대학이나 공공연구소, 혹은 전문가 집단과의 공동 개발과 정보 및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전략도 아울러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술 보안이 중요한 연구소 조직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조직의 내외부 경계를 넘어서는 인적 개발과 교류, 활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기업의 R&D 전략에 따른 하향식 과제 선정과 운영에 더해 연구원 스스로 제안하는 상향식 과제 제도와 이를 사업화하는 사내벤처 제도 등도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M이나 구글과 같이 자율 과제를 위한 예산이나 시간을 배려함으로써 창의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는 R&D 전략과 조직 운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