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명강연



지난 11월 9일, 제70회 산기협 조찬세미나가 엘타워 그레이스홀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에는 조동철 KDI원장이 연사로 나서 <한국경제 전망과 개혁 과제>를 주제로 2024년의 한국 경제 및 글로벌 경기 현황을 살펴보고, 장단기 전망과 극복 방안에 대해 전했다. 



세계경제의 변화와 전망

전망이란 다양한 변수를 전제로 한다. 다만 2024년을 앞두고 세계경제를 둘러싼 최근 트렌드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몇 년 전부터 현재까지, 경제와 관련한 핵심 화두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다. 최근의 현상을 두고 누군가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재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코로나 충격에 대응한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막대한 재정확장으로 인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지만 경기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다만 그 시절과 지금의 통화정책에 대한 관점에는 차이가 있다. 19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통화정책에 있다는 인식이 약했다. 대신 오일쇼크 등 외부적인 요인이나 노조에 의한 임금 상승 등이 주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미국의 더블딥 당시 미국중앙은행 총재였던 폴 볼커 이후 인플레이션의 궁극적 원인이 통화정책에 있음을 일반인들도 인식하게 되었다. 단기적 경기 침체를 수반하더라도, 인플레이션 만성화를 막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 안정에 더 유익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최근과 같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근원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고금리 정책 기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 이후 과도한 재정 팽창으로 유지되어 온 경기과열은 급격한 금리인상 여파로 마침내 진정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속도는 더디다.

한편, 중국 경제는 봉쇄정책의 충격에서 다소 벗어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수출이 회복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침체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통제력을 감안할 때, 당장의 금융위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더 큰 틀에서 볼 때, 중국의 성장세는 추세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으로는 노동력과 과잉투자 문제가, 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세계와의 교역 및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의 문제점이 한계를 보이는 까닭이다. IMF는 물가상승세는 둔화되나 고금리 정책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유가의 경우, 중동 사태가 급격히 악화하지 않는다면 현재 수준 정도의 유가가 유지될 전망이다. 


한국경제 진단과 전망

한국경제를 살펴보자. 2022년 4/4분기 이후 급격하게 악화된 한국의 경기는 2023년 2/4분기를 기점으로 반도체 섹터 위주로 회복하는 추세다. 반면, 민간소비에서는 코로나 충격에서 반등하던 보복소비가 일단락되면서 내수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원자재가격이 안정되며 경상수지 흑자 폭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경제의 경상수지는 25년 동안 흑자였다. 일시적 경상수지 적자가 경제 전반의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참고로 미국이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는 것과 비교해, 한국은금리를 천천히 인상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변동환율제 하에서는 국내외 금리차가 환율에 반영되므로 환차손이 발생한다. 환율의 변동성이 보장되는 한, 한국이 미국의 금리를 따라 올릴 이유는 없다.

한동안 유가와 가스값, 국제 식료품 가격 등이 급등해 한국의 물가도 많이 올랐으나 현재는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 한편으로,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할 경우에는 가계부채가 대규모로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 주택 가격에 1980년대 일본 정도의 버블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0년 이후 급등했던 주택가격이 금리 인상으로 조정되어, 최근 연착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KDI에서 바라보는 한국경제 단기 전망은, 내수가 완만한 흐름을 유지하는 가운데 수출 부진에 의한 경기둔화는 완화될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은 2024년 말경 2% 부근까지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험요인과 개혁과제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숙화, 고령화, 비효율 누적 등으로 인해 성장률이 지속해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규제가 많다. 특히 생산물 시장에서 기업의 진입 및 퇴출과 관련한 규제가 과잉된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규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 보호정책에 안주하게 하는 영향도 있다. ‘노동개혁’으로는 사업장별 특성에 맞춘 탄력적 시간 조정과 비효율적 근무 시간 단축 등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필요하다. 경직적인 연공서열성 임금체계에서 벗어나 생산성에 따른 차별적 보상이 가능한 임금 유연화, 인적자원의 적재적소 배치와 젊은이들의 재기 기회 확대 등을 위한 고용 유연화 등도 시급하다.

또한, 초·중등교육의 생산성 저하를 혁신하기 위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은 학령인구 1인당 정부재정지원이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런데도 상위학력은 줄어들고 기초학력 미달자는 늘어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수요자의 학습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지속불가능한 공적연금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연금 기금의 고갈 우려가 있는 현 제도의 틀을 유지한 상태에서 보험료율만을 인상하는 개혁은 젊은 세대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기존 수급률을 유지하는 가운데 젊은 세대가 동의할 수 있는 보험료율 인상을 추진하려면 향후 모든 세대에게 원금상환 이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