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난 10월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올 3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에 따른 법정 기구로 대통령령에 근거를 두었던 기존의 ‘탄소중립위원회’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탄소중립 이행과 녹색성장 추진을 위한 정책과 계획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기구로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추진을 위한 국가비전 및 중장기 감축 목표, 국가기본계획 수립과 변경 및 이행현황 점검 ▲국가 기후 위기 적응대책의 수립과 변경 및 점검 ▲탄소중립 관련 국민 이해 증진 및 홍보와 소통, 국제협력 등을 총괄하고 있다.

탄녹위는 국무총리와 민간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기재부 장관을 비롯, 21개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정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민간위원’ 32인을 포함해 모두 55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와 산업전환, 공정 전환과 기후적응, 녹색성장과 국제협력 4개 분과를 두고 있는데 업무 범위가 워낙 넓고 일의 난이도 역시 높아 총괄기획위원회를 비롯, 특별위원회와 전문위원 등을 보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탄녹위가 당면한 핵심 임무는 2023년 3월까지 부분별, 연도별로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세부 감축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중장기 감축목표를 최대한 지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결심에 따른 것인데 안팎의 여건을 살펴보면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림 1에 나타나듯 지난 정부가 온실가스 40% 감축을 국제사회에 발표한 2021년의 경우 온실가스는 3.5% 이상 늘어났다. 이렇게 되면 2030년까지 연평균 4.17%를 감축한다는 당초의 계획과 달리 연평균 5.48 %(2020년 기준)를 매년 줄여 나가야 한다. 안 그래도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짧은 기간에 훨씬 더 많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그 부담이 더욱 크게 가중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과 안보 이슈가 가세하고 있다. 환경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독일의 경우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던 파이프라인 가스 단절로 석탄 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어 2~3천만 톤의 온실가스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라프 슐츠 총리는 차제에 화석연료에서 탈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더욱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지만 탈원전 기간을 연장하는 등 독일 특유의 ‘에너지 전환(Energie Wende)’ 정책이 커다란 도전을 맞이한 모습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가스를 비롯 에너지 수입 가격이 급등하면서 30조 원대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의 사정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탈원전을 비롯, 고비용 구조의 에너지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전기요금을 5년 내내 사실상 동결하는 바람에 요금 인상 압박 요인은 훨씬 더 증폭된 형태로 윤석열 정부에 전가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대통령직 인수위 기간을 포함, 이미 세 차례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지만 2023년의 경우 추가로 몇 차례에 걸쳐 대폭 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임을 토로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와 경기침체에 직면한 상황에서 전기요금과 가스는 물론 버스와 택시 지하철 등 공공요금의 연쇄적 인상 압박이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빨리, 그러나 천천히’라는 형용모순의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은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즐겨 쓰던 격언이라고 한다. 안팎의 도전 속에서 ‘팍스 로마나’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신속하면서도 신중하게’일을 처리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과 온갖 악재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탄소중립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묘하게도 닮은 듯하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했으니 말이다.

이 같은 난제를 풀어갈 탄녹위의 키워드는 ‘ROI, Together’로 요약된다. 여기서 ROI는 ‘투자수익률(Return on Investment)’이라는 경영용어와 일맥상통하기는 하지만 Responsibility (책임), Order(질서), Innovation (혁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왜 ROI인지 좀 더 설명을 하겠다.

먼저 ‘책임’이다. 야심찬 목표를 약속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이 약속 이행의 책임을 스스로가 아니라 타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래서 책임 있는 탄소중립을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이념과 아집에 사로잡힌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실천해 나가고자 하는 이유이다. 전기요금 인상에서 보듯, 인기 영합의 포퓰리즘을 버리고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해야 할 일을 하는 이유다. 국제사회와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질서’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에너지 정책의 골간이 급작스럽게 바뀔 경우, 그 혼란과 비용이 얼마나 막대한 것인지 우리는 뼈아픈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과학과 합리를 토대로 법과 절차, 사회적 의견수렴을 존중하는 ‘질서 있는 전환(Orderly Transition)’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모든 경제주체가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을 가지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특히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경제의 역동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와 규제를 정비하고 올바른 가격 시그널이 작동하도록 에너지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금리정책을 펴는 것처럼, ‘탈정치화’된 독립적 에너지 가격결정 기구가 있어야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한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말 뿐인 에너지 절약도 실현성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혁신’이다. 제조업 비중이 독일이나 일본보다도 높은 한국은 에너지 다소비와 탄소집약도가 매우 높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어려운 이른바 Hard-toabate 분야가 많은 이유이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을 위해 산업을 포기할 수는 결코 없다. 새로운 기술과 성장동력, 일자리를 창출할 녹색성장 전략이 그래서 절실하다. 그 중심에 기술혁신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에서도 2050년까지 글로벌 에너지 분야의 CO2 감축 중 95%는 기술혁신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10월 탄녹위 제1차 전체 회의에서 30조 원에 달하는 국가 R&D의 초점을 전략기술과 탄소중립에 두고 수소와 CCUS를 비롯 17대 분야 100대 녹색기술을 발표한 배경이다(표 1).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이를 ‘임무중심 R&D’로 명명하고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통해 반도체에 버금갈 세계적 수준의 초격차 녹색기술 육성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를 위해 범부처 통합 녹색기술 R&D 예산 확충은 물론 단계별 실증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민간과 기업, 즉 수요자 중심으로 기술혁신 로드맵을 수립, 예타를 신속-유연화해 나갈 것이다. 탄소중립을 새로운 기회로 이끌 글로벌 인재 육성에도 주력할 것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 주요 강대국들이 탄소중립 시장을 선점하고자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돌파형 기술(Breakthrough Technology)’
개발 레이스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을 적극 도모하고자 한다. 철강, 시멘트, 화학, 운송 등 8대 분야의 탈탄소를 촉진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통해 녹색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하는 ‘FMC(First Movers Coalition)’ 참여 여부도 검토 중인데 한-미 양국은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기후 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부산항과 시애틀 타코마항을 연결하는 ‘녹색 항로(Green Shipping Corridor)’ 시범사업에 착수했다(표 2).


 

ROI, 즉 책임과 질서 그리고 혁신을 연결하는 동력은 Together, 즉, 모두 함께하는 것이다. 탄소중립은 모든 것을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새롭게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이해당사자가 함께 긴 여정에 참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정부와 민간, 중앙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 시민사회와 언론, 기성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가야 정의로운 전환, 결실 있는 전환이 될 수 있다.

인류의 실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은 불가피한 길이다. 탄소중립은 그 자체로 위기와 기회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 27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투자에 연간 4조 달러, 저탄소 글로벌 전환에 6조 달러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명문화했다. 기회에 주목하는 쪽은 이를 승부처로 삼고 막대한 재원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새로운 글로벌 질서의 주역이 되고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는 산업화, 정보화에 이어 찾아온 탈탄소 녹색화의 물결 속에서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 우뚝 서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