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utterstock
한때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벌써 10년도 더 전, 무력감보다는 ‘내가 하기에 따라서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아직은 보편적인 정서이던 시절이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무엇이든 한 가지 일에 큰 성과를 보이려면 1만 시간 동안은 경험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딱히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인내와 기다림, 노력의 중요성이 드러난 고전과 역사를 수없이 많이 알고 있다. ‘괄목상대’나 ’대기만성’의 고사부터 오랜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천재의 반열에 오른 숱한 위인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이루려면 충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늘 강조되어 왔다. 급기야는 동기부여 강의에나 어울릴 법한 이 이야기에 과학적인 설명도 붙었다.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꾸준히 노력하면 완벽해진다?
1993년, 스웨덴 출신의 심리학자인 안데르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이 발표한 학설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에릭슨은 미국 콜로라도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함께 연주자의 연습량과 실력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독일 명문 음악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연습 시간이 많을수록 연주 실력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7년 진행된 추가 연구에서는 가장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최소한 10년, 또는 1만 시간의 집중적인 연습이 있어야 국제 무대에서 입상할 만한 실력을 쌓는다고 강조했다. ‘연습이 완벽함을 만든다’는 옛 격언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에릭슨의 연구는 매력적이었다. 에릭슨의 연구에 주목한 사람 중에는 말콤 글래드웰도 있었다. 글래드웰은 강연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에릭슨의 연구로부터 ‘성공의 비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글래드웰은 2008년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에릭슨의 연구를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소개했다. 글래드웰이 소개한 ‘1만 시간의 법칙’은 금세 세간의 주목을 받아 널리 인용되기 시작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대중 강연에 활용하기 딱 좋은 소재다. ‘성공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침도 명확했다. 마침 당시 유행하던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류의, 개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식의 자기계발론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글래드웰의 저서가 유행하는 동안 ‘1만 시간’은 개인의 열정적인 몰입을 상징하는 마법의 주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이건 하루 3시간씩, 10년만 몰입하시라.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10년이 기다리기에는 조금 긴 시간이라는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찌됐건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는 단순한 행동지침이 아닌가.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한 오해
요즘 사람이라면 ‘1만 시간의 법칙’을 보고 거부감이 들 법하다. 오롯이 개인의 몰입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소위 ‘노오력’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노력’과 ‘노오력’은 다르다. 노력은 여건과 환경이 갖춰진 상태에서 자신의 기회를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자발적인 행동이다. 그에 비해 노오력은 그 비꼬는 어감에서 짐작하듯, 개인의 사정을 무시하고 타인으로부터 강요 받는 노력을 말한다. 듣는 사람에게 노오력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개인의 배경이나 여건, 상황이 모두 무시된 채 개인의 열정과 몰입만을 요구하기 때문일 터다. 노오력은 ‘상식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을 얻겠다고 애쓰는 노력’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암벽등반에 막 입문했는데 언제고 무릉계곡을 같이 등반 하자는 강사의 말에 연습에 매진한다면 노력이다. 충분히 달성할 수 있고, 내가 기꺼이 감수할 만한 수고다. 그러나 이미 우승자가 내정된 대회에서 어떻게든 우승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노오력이다. 내가 한 노력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보답 받을 수 없는 수고이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지금 돌이켜보면 노력과 노오력을 전혀 구분하지 않고 무작정 개인의 몰입만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면이 있다. 글래드웰로서 더 억울한 점은, 그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을 언급했을 때 결코 ‘노오력하세요’와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웃라이어>에서 빌 게이츠, 비틀즈와 같은 사례를 소개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시기와 환경을 잘 타고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1만 시간은 어디까지나 여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재능이 만개하려면 좋은 환경에서 충분히 연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이야기했을 뿐이다. 따라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누구나 꾸준히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 개인의 열정과 노력으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면 오해를 넘어서서 완전히 반대로 이해한 셈이다.
애초에 글래드웰이 인용한 에릭슨의 연구부터 후천적인 노력이 선천적 재능보다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곳곳에서 마치 인류의 오랜 지혜인 마냥 확산되자 에릭슨 교수가 직접 나섰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직접 집필한 것이다. 에릭슨에 따르면 1993년의 논문에서 강조한 것은 노력의 시간이 아니라 방법이다. 성공한 연주자들은 기계적인 연습이 아닌,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을 지속했다. 의식적인 연습이란 집중과 피드백, 수정으로 요약되는 연습, 즉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나가는 연습을 말한다. 비범한 재능의 뒤에는 꾸준함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글래드웰이 자신의 연구를 왜곡했다며 에릭슨 교수가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사실 글래드웰 역시 이러한 한계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집필한 <아웃라이어>의 내용을 보자. 이 책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평범하지 않은 천재들의 성공 배경을 탐구한다. 글래드웰은 이 책에서 ‘1만 시간’을 천재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로 해석했다. 1만 시간을 들여 연습해야 천재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재능과 환경, 기회가 주어져야 1만 시간을 들여 노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웃라이어>에서 글래드웰이 소개한 사례를 보자. 글래드웰은 이 책의 마지막장에서 미국의 ‘키프 프로그램(KIPP, Knowledge is Power Program)’을 소개했다. 빈민층 아이들에게 한국식 입시 교육에 참여시켜서 명문대 진학률을 끌어올린 프로그램이다. 글래드웰은 키프라는 제도와 환경이 있었기에 같은 빈민층 학생이라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높은 성과를 얻었다고 해석했다. 개인의 노력 이전에 문화와 환경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노오력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는 학자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2010년대 들어 1만 시간의 법칙의 오류를 지적하는 논문이 속속 발표됐다. 2013년 심리학 학술지 ‘인텔리전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음악과 체스 분야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이 실제로 설립된 사례는 전체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미시건대, 라이스대, 사우스일리노이대, 영국 브루넬대, 호주 에디스코완대 공동연구진은 14편의 기존 연구를 분석하여 체스 선수의 66%, 음악 연주자의 70.1%는 지능, 성격, 연습 시작 연령 등의 요인에 따라 실력 차이를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4년 국제학술지인 <심리과학>에 발표된 논문은 더 충격적이다. 프린스턴대, 미시건주립대, 라이스대 공동 연구진이 연습과 성취도의 관계를 다룬 기존 연구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연습, 그것도 에릭슨이 강조한 의식적인 연습조차도 개인의 능력 향상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논문에 따르면 의도적인 연습이 실력 향상에 기여한 정도는 게임에서는 26%, 음악에서는 21%, 스포츠에서는 18%로 나타났다. 학업에서의 기여도는 단 4%, 직업에서는 1%에 지나지 않았다.
변화가 큰 분야일수록 연습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 음악이나 스포츠처럼 일정한 틀이 계속 유지되는 분야에서조차 개인의 실력에서 연습이 차지하는 비중은 1/4 수준에 머무른다. ©Brooke N Macnamara et als. / Psychological Science
이는 시간이 흘러도 큰 변화가 없는 분야에서는 연습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연구나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꾸준한 연습이 소용없다는 뜻이다. 2014년의 연구를 이끈 브룩 맥나마라 교수는 2019년 바이올린 연주자를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연습 시간의 중요성이 줄어든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덜 숙련된 그룹과 좋은 수준의 연주자 그룹 사이에는 연습시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좋은 수준과 최상위 수준의 연주자 사이의 연습시간 차이는 크지 않았으며, 오히려 좋은 수준의 연주자의 평균 연습시간이 더 많았다.
뛰어난 연주자와 좋은 수준의 연주자는 20살까지 1만 시간 이상의 연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그룹 간 차이는 크지 않았다.
©Brooke N Macnamara et als. / Royal Society Open Science
노오력을 노력으로 만드는 비밀, 실험
노력과 실력의 관계를 다룬 요즘의 연구를 보면 한편으로는 ‘노오력’만 강조하는 세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 같아 통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력해봐야 타고난 재능과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생각도 든다. 성공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 아닌가? 이래서는 거의 모든 노력이 ‘노오력’이 되는 것뿐, 타고난 대로 살라는 이야기일 뿐이지 않은가?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에릭슨과 글래드웰이 주장했듯, 맥나마라와 같은 연구자들도 타고난 재능, 가정환경, 문화권처럼 개인에게 ‘주어진’ 요소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연습하는 방법, 연습의 질, 교사와 부모와의 관계처럼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요인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최근의 연구가 개인의 개성이나 성향을 모두 무시하고 시간만 길게 들이는 획일적인 연습이 생각만큼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폭로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터다.
그래서 요즘은 ‘1만 실험의 법칙’이 화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1만 실험의 법칙은 미국의 기업가인 제임스 알투처가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한 개념으로, 같은 노력을 오래 지속하기보다 새로운 시도를 최대한 많이 해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근거자료로 보나 논리적 탄탄함으로 보나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실험’으로 바꾼 것만으로 노력과 실력의 관계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에릭슨이 강조한 ‘의식적인 노력’, 글래드웰이 주목한 문화와 환경, 맥나마라가 밝혀낸 연습시간 이외의 요소들을 모두 종합한다면 시행착오와 이를 자신의 노력에 반영하는 피드백 체계, 그리고 충분한 시행착오를 허용하는 환경이 될 것이다. 즉, 최대한 많은 실험을 통해 내게 가장 효율적인 노력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성공 공식에 가장 가깝다.
‘노력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곤 하는 토마스 에디슨의 예를 들어보자. 인간성에 대한 이런저런 구설수를 접어두고 보면, 에디슨은 그 자신이 ‘천재의 99%가 노력’이라고 강조했듯, 엄청난 노력파였다. 그러나 에디슨의 노력에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었다. 에디슨에게는 수많은 재료와 조건을 실험할 수 있는 연구실과 자재가 있었으며, 시행착오에 아낌없이 투자할 시간과 비용이 충분했다. 덕분에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로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했으며, 가장 위대한 발명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1만 실험의 법칙은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맥나마라 교수가 지적했듯, 연습이 당신을 당신의 이웃보다 더 낫게 만들지는 못할지 몰라도, 어제의 당신보다는 분명히 더 좋아지게 한다. 중요한 것은 노력에 무작정 시간을 들이기보다, 지금의 환경과 재능이 허락하는 선에서 나에게 가장 최적의 노력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말장난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노력’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교가 얼마나 무의미한 지 깨닫는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여건은 모두 다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인 성공 공식이 나에게도 들어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자 성공한 사람들이 간 길을 좇으려 하지만, 남의 길을 무작정 따라 가려다 보니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대가를 기약하기 어려운 노오력으로 그치곤 한다. 남들처럼 하는데도 성공이 요원해보이는 이유는 당신이 못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단지 그 방법이 내 방법이 아니었을 뿐이다. 올바른 노력은 당신 스스로 수없이 시행해보며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시행착오를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실패가 용인돼야 한다.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성공의 비밀은 타고난 대로 살라는 운명론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실패를 허락하라는 외침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