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INTRO 02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 경쟁과 경제 안보는 반도체를 향한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경제 안보와 기술 동맹이 강조되면서, 전 세계는 자유무역에 기반한 ‘글로벌가치사슬(GVC)’의 시대에서 보호주의에 기반한 ‘신뢰가치사슬(TVC)’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추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영역이 바로 반도체(Chip) 이다. 미·중·EU·일 등 주요국은 이미 반도체를 국가 안보의 핵심적인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경쟁적으로 반도체 관련 종합 법안을 내놓고 있다. 
미국 상원은 2021년 6월 혁신경쟁법(USICA), 하원은 2022년 1월 경쟁법(ACA)을 각각 발의했고, 최종적으로 반도체와 과학혁신 관련 법안이 제정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막대한 규모의 인센티브 및 과학혁신 관련 지원내용과 함께, 본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 내 공장 신설이나 확장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중국도 전통적인 세제 지원을 대폭 강화함과 동시에, 핵심 기술 자립과 인재 양성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은 2021년 기준 약 20여 곳의 반도체 대학원을 설립해서 반도체 인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EU 역시 2022년 2월 유럽 반도체 법안을 발의했으며, 이를 통해 역내 반도체 연구개발 역량 강화와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 안보 법안을 통해, 반도체를 비롯한 전략물자 공급망 강화, 첨단기술 연구개발 지원, 비밀특허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을 포함 시켰다. 이외에도 대만은 농업용수를 TSMC에게 먼저 제공하고, 반도체학과 신입생 선발을 1년 2회로 확대하는 등 반도체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국가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반도체 정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기술과 인재 확보에 집중되어 있다. 앞서 말한 주요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의 핵심에는 원천 기술 확보와 핵심 인재 양성에 집중되어 있다. 둘째, 단순한 역내 생산 기반 확충의 관점을 넘어 상대국에 대한 견제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 자국의 지원을 받으면 특정국에서의 공장 확대를 제한하는 조항, 유사시 지원금 회수 등과 같은 꼬리표가 붙어 있다. 셋째, 명확한 타임라인이 있다. 대다수의 반도체 생산 기반 지원 정책은 향후 5년 정도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데, 역내 생산 기반 안정화가 된 이후 더 강력한 배타적인 조치가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넷째, 배타적 성향의 국제 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칩 4(Fab 4)01를 위시하는 유사 입장국, 또는 동맹국 중심의 기술 동맹이 가시화되고 있다.


01 미국 주도로 한국, 대만, 일본 4개국이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공급망 형성을 목표로 추진 중인 협의체

우리가 정책이 없나?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반도체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2021년 5월 2030 세계 최고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하는 ‘K 반도체 전략’을 시작으로 2022년 7월에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했다. 2022년 8월 4일부터는 국가 첨단 전략산업의 육성과 보호의 종합적인 정책 지원내용을 담은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이 시행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뒷받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다음과 같은 해결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정책 간의 중복도 해소와 연계성 강화가 시급하다. 특히, 연구개발, 인재 정책 등 분야는 다양한 부처가 유사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둘째, 과도한 보호 및 육성 중심의 정책을 경계해야 한다. 반도체 분야에서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는 국제 협력을 통해 기술과 인재를 유치하고 학습해야 하지만, 현재 정책은 국내 혁신 주체에 대한 지원 확대와 보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 모든 정책이 반도체 산업에만 집중되고 있다. 현재 발표된 정책들의 목표가 실현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만약 그대로 실현된다면, 우리나라 모든 대학교와 학생은 반도체와 관련된 과목만 학습하고, 반도체 기업으로만 취업하고, 정부는 반도체 기업만 육성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차전지, 로봇, 인공지능, 양자, 우주·항공 등 또 다른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하는 전략·신기술 분야에 대한 자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마지막, 국제 정세와 외교 안보적 수단이 결합된 글로벌 전략이 부재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반도체는 현재 국가 전략 안보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국은 연구개발, 세제 지원뿐만 아니라 외교 안보를 비롯한 통합적 관점에서 반도체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우리도 통합적 관점에서의 반도체 종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반도체 초격차 무엇을 해야 하나?

반도체 초격차 강국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반도체 초격차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초격차는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어떠한 형태로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메모리 분야에서의 지속적인 우위 확보를 추구할 것인지, 시스템 분야에서 현저히 부족한 경쟁력을 제고하여 종합 경쟁력 강화를 실현할 것인지, 전체 가치사슬을 가장 고르게 갖춤으로써 외부 충격에서 가장 적은 영향을 받는 리질리언스에 집중할 것인지, 차세대 칩 분야에서도 메모리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략성 불가결성 확보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에 상응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이 모두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번째, 안보화의 남용과 일괄적인 보호주의 확산을 경계하고, 전략적인 개방형 혁신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과 내수시장이 부족한 국가는 기본적으로 개방과 협력 중심의 혁신 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R&D, 인재 육성, 공급망·통상, 규제, 표준 등 반도체 초격차 달성을 위한 핵심 구성 요소 중 어느 한 영역도 특정 국가와 기업의 단일 역량에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효과적인 단기 정책과 함께, 전환적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는 중장기 정책 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눈앞에 닥친 선택과 이로 인해 예상되는 중국에 보복에 대한 예측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조치를 효과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단기 대응에 있어서도, 사전경보, 예측과 함께 위기가 발생한 후 빠른 해결을 위한 신속 대응 해결 체계도 함께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근본적 변화에 대응하는 중장기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트윈 전환(디지털 전환, 탄소 중립) 대응과 글로벌 도전과제(기후 위기, 팬데믹 19) 해결을 위해 보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어떠한 영역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실시간으로 변하는 국제 정세를 적시에 반영하여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유한 첨단 공정 경쟁력을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하고, 차세대 첨단 반도체 과학연구 협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 지렛대로 사용해야 한다. 미국은 강도 높은 대중국 견제와 기술 동맹 구축을 시도하고 있고, 주요 동맹국은 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요국들은 미국으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첨단기술 협력 기회를 보상받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적 의존도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안보 프레임워크에 적극 가입하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최첨단 과학연구 협력의 기회를 요구하고, 이를 공고히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