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안전한 원자력, 제4세대 원자로
원자력 시스템은 시대 변화에 따라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였으며, 더 안전하고 경제적인 원자로를 향해 세대를 진화시켰다. 과거의 군사용 원자로를 상업용으로 이용하면서 제1세대가 시작되었으며, 향상된 기술력과 함께 2세대와 3세대로 진화하였다. 제4세대 원자로(GenⅣ)는 기존 3세대(GenⅢ)로 대변되는 경수형 원자로보다 더 진보한 개념으로서 비(非)경수형 원자로로 불린다.
3세대와 4세대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술적 특징은 바로 냉각재이다. 경수형인 3세대 원자로는 고온의 핵연료를 식혀주는 냉각재로 물(water)을 사용한다. 하지만 4세대 원자로는 냉각재로 물 외 다양한 물질(액체금속(liquid metal), 가스(gas), 염(salt)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非)경수형으로 구분된다.냉각재를 물 이외의 다양한 물질을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높은 안전성과 경제성이다.
제4세대 원자로의 경제성과 안전성
원자로는 더 높은 온도에서 작동될수록 발전 효율이 높아지며 경제성이 향상된다. 4세대 원자로는 물을 사용하지 않아 3세대보다 월등히 높은 온도에서 운전이 가능하다. 또한 3세대 원자로가 높은 효율에 도달하기 위해 원자로 내부를 가압하는 반면 4세대 원자로는 대기압에서 운전이 가능하여 가압에 소비되는 불필요한 전력 낭비가 없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가압이 필요한 3세대 원자로는 심각한 대형 사고 발생 시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다수 필요하다. 반면 4세대 원자로는 대기압 수준으로 운영되므로 방사성 물질 누출에 대한 안전설비가 단순해질 수 있다. 그리고 3세대 원자로에서는 활용하지 못하는 고속중성자를 사용함으로써 더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으며, 핵연료의 재순환까지 가능하여 폐기물 저감 측면에서 이점이 크다. 4세대 원자로의 또 다른 특징은 대형원전에서부터 소형모듈형(SMR), 그리고 초소형에 이르는 다양한 설계가 가능하다. 따라서 경제성과 안전성은 물론 다목적 활용성까지 극대화할 수 있다.
세계 주요국의 4세대 원자로 개발현황
2000년 미국을 중심으로 원자력 활동이 활발한 주요 9개국(한국, 미국, 프랑스, 일본, 영국, 캐나다 등)이 제4세대 원자로(GenIV) 개발 협력을 위한 국제 협력체 GIF(GenⅣ International Forum)를 결성하였다. 이후 참여국은 늘어 총 14개국이 회원국으로 활동 중이다. GIF는 4세대 원자로를 냉각재의 종류에 따라 총 6개의 노형으로 구분하였다.
미국 에너지청(DOE)은 2022년 선진원자로 실증사업 예산으로 작년과 동일한 2억 5천만 달러를 배정하였다. 특히 미국의 4세대 원자로 개발은 정부가지원하고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형태로서 X energy 사의 ‘Xe-100’,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 사의 ‘Natrium’이 선진원자로 실증사업으로 선정되어 지원받고 있다.
프랑스는 SFR(소듐냉각고속로) 실증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한 나라로써 1973년 SFR 실증로인 Phenix, 1985년 상용로 Super-Phenix를 건설하고 운전한 경험이 있다. 러시아는 최근 전쟁의 영향으로 국제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지만, SFR 실험로(BOR-60), 원형로(BN-600), 실증로(BN-800)를 운영 중이다. 그리고 추가로 새로운 다목적 SFR 실험로(MBIR)를 건설 중이다. 중국은 2010년 러시아의 기술을 도입하여 SFR 실험로(CEFR)를 완공해서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 실증로(CFR-600)를 추가 건설 중이다. 특히 2021년 중국형 VHTR(초고온가스로) 모델인 HTR-PM이 전력 생산을 시작하여 4세대 원자로 실증에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4세대 원자로의 개발현황
우리나라의 4세대 원자로 개발은 지속성, 안전성, 경제성, 핵확산 저항성 측면에서 가장 기술이 앞선 SFR(소듐냉각고속로)과 VHTR(초고온가스로) 개발에 집중하여 국가계획을 수립하였다. 4세대 원자로 개발 목표는 미래 현안으로 예상되는 국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해결과 다목적 활용이다.
국내 SFR 기술개발은 한국형 SFR 모델인 PGSFR에 대한 장기개발 계획이 수립되면서 본격화되었으며, 2020년에 공학적 설계를 완료하였다. 이는 추후 건설인허가 신청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현재는 미래 시장에 대비하여 지금까지 보유한 SFR 기술을 기반으로 수출형 SMR 기술개발이 진행 중이다.
‘SFR’ 기술은 ‘파이로프로세싱’과 연계하여 국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기술적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파이로는 건식 핵연료 처리기술로써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에서 고독성 장수명 물질인 초우라늄원소(TRU)를 별도 분리하는 기술이다. 분리된 TRU는 SFR의 연료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즉 파이로 기술은 핵연료순환주기 완성의 핵심 기술이다.
한미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 성과와 미래
2011년 한미 양국은 파이로 기술개발을 위해 10년 간의 ‘한미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를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JFCS를 통해 파이로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경제성, 기술성, 안전성, 핵확산 저항성을 검증하였다. 10년간의 공동연구가 마무리된 2021년 양국 승인 하에 파이로의 기술 타당성을 입증하는 ‘JFCS 10년 보고서’를 발행하였다.
JFCS의 성과를 통해 향후 파이로 국내 실증에 필요한 미국의 장기 동의가 확보된다면, 그동안 국내에서 다루지 못했던 사용후핵연료의 처리기술 실증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가 파이로 기술을 완성할 경우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다룰 수 있는 국가가 된다. 4세대 원자로의 특징과 파이로 기술이 연계 된다면 궁극적으로 국내 기술로써 핵연료순환주기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국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환경 부담을 저감할 뿐만 아니라 국가 에너지 자립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