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5


 


해마다 장마를 겪고 나면 전국의 하천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대개는 알맹이만 쏙 빼먹고 난 것들이다. 원자력 분야는 어떠한가? 그간 우리는 경제발전에 따른 원자력의 이용·개발에만 치중하여 신규원전 개발 및 건설, 원전 수출 등에 더 많은 공을 들여온 게 사실이다. 원전 이용의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해결 의지가 크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관련하여 선도국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핀란드, 스웨덴 등은 원자력의 이용이 본격화된 1970~80년대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여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마련을 위해 법과 절차를 마련하고 국가계획에 따라 부지를 선정한 후 인허가를 거쳐 처분장을 마련했다. 특히, 핀란드는 가장 먼저 심층처분장(ONKALO)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계획대로 시설 운영 허가 절차가 진행된다면 2023년부터 모의 핵연료집합체를 활용하여2~3년간의 시운전을 거쳐 2025년경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관리사업자인 Posiva는 ONKALO에 2070년까지 Olkiluoto 1, 2호기와 Loviisa 1, 2호기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고 그 이후에는 운영허가 연장을 통하여 Olkiluoto 3호기에서 발생 예정인 핵연료를 처분할 계획이다. 스웨덴의 관리사업자인 SKB는 핀란드보다 처분장 건설 인허가 신청은 먼저 했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여건 변화로 당초 예상했던 기간보다 늦어진 올 1월 드디어 처분장 건설 허가를 획득했다. 처분장 건설 착수 후 완공까지는 약 10년이 소요될 것이며 시설 운영 허가는 스웨덴 원자력 활동법에 따라 원자력 규제기관인 방사선 안전청(SSM)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밖에 프랑스도 지난 20년간 일반부지 지하연구시설(Generic Underground Research Lab.)을 통한 기술개발과 지역주민 협의 과정을 거쳐 처분부지를 확정하고 올해 2/4분기 중 건설허가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스위스 등의 국가들의 경우도 지하연구시설에서 사용후핵연료의 심층처분에 필요한 안전성 입증과 기술 실증을 차근차근 진행 중이며, 부지선정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국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준위방폐물 처분부지 선정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난항을 겪었다. 정부는 1980년대부터 울진, 영덕 등을 시작으로 처분부지 선정을 위해 9차례나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결국 2005년 고준위방폐물관리사업을 별도로 분리한 후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공모와 주민투표를 거쳐 경주에 중저준위방폐물 처분장 마련에 그쳐 반쪽의 성공만을 거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고준위방폐물 문제는 큰 진전 없이 현재에 이르게 되었고, 그 사이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도 여유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히도 2020년 6월 원자력계에선 최초로 다부처 공동 사업의 형태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확정된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안전성확보를 위한 핵심기술개발 사업」이 지난해 4월 착수되었다. 본 사업의 목표는 2029년까지 약 4,300억 원을 투자하여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시 안전성 실증기술 개발, 지하연구시설을 이용한 심층처분 안전성 실증 기반기술, 그리고 심층처분 규제 기반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효율적이고 성공적 추진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공동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핵심기술 개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정부는 근거 마련을 위해 2021년 1월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핵심기술개발 사업운영관리규정」을 제정하였다. 한편, 사업단 조직은 단장 이하 사업지원본부 아래에 사업기획팀, 사업관리팀, 커뮤니케이션팀으로 구성되었다.



사업단의 사업 범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용후핵연료를 습식 또는 건식 장기저장 후 안정한 지질 분포지역의 지하 500m 심도에 심층 처분을 위한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것으로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관계 없이 사업 초기 단계에서 기본으로 준비되어야 할 범용성격의 관리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리시설 설계기술 개발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혁신적인 고효율 처분 개념개발 사업의 결과는 향후 사업단 사업과 합쳐져 최적화될 예정이다(그림 1).

사업의 추진체계는 다부처 재원의 매칭 분담, 「공동성과·공동책임」의 사업운영 체계로서 총 3개 전략과제, 7개 중점과제로 구성되며 저장·처분분야 전략과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연계하여 수행하고, 규제분야 전략과제는 독립성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단독으로 수행하게 된다(그림 2). 2029년까지 3단계로 추진되는 본 사업은 사업단 출범 후 2021년 4월까지 7개 중점과제에 대한 상세기획을 거쳐 2021년 5월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원자력안전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순으로 과제가 착수되었으며, 사업 2차 연도에 해당하는 올해의 투자 금액은 총 사업비의 5% 이내로 설정된 사업단 운영비를 포함하여 415억 원 규모이다.

본 사업의 성과목표는 9년간 900여 건의 결과물을 생산하여 핀란드, 스웨덴 등 기술 선도국 대비기술수준 90%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심층처분 실증 관련 주요 핵심기술과 규제 요소기술에 대해 최종적인 결과를 종합하여 심층처분 종합안전성입증보고서(Safety Case Report)를 작성한 후 이를 OECD/NEA, IAEA 등 국제기구 검토(Peer Review)를 받아 완결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한 본 사업을 통해 확보된 기술은 후속으로 연계되는 심층처분시스템 성능 및 안전성에 대한 지하연구시설(URL) 실증사업에 적용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관리시설 부지 적합성 조사, 중간저장시설 설계 및 건설인허가 신청 업무 등 고준위방폐물 관리사업에 활용될 것이다.



주관 연구개발기관으로는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이며, 공동 및 위탁기관까지 포함하면 국내 산·학·연 등 44개 기관에 이르고, 모두 700여 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후속 조치로서 제2차 고준위방폐물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유럽 연합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2050년에 처분한다는 명문화된 계획 등이 없으면 원자력을 더 이상 친환경 녹색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올 초 대선을 치르면서 원전의 가동률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을 추가 건설하여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국정과제에 담았다. 이 정책의 성패는 이제 점점 늘어나는 사용후핵연료가 쥐게 되었다. 사업단의 저장·처분 기술개발 외에도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여 고준위방폐물의 부피와 독성을 줄이기 위한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 연계시스템 기술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최근에 파이로프로세싱만으로도 처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특별법 제정 시에 처리기술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으나, 이 기술만으로는 방사성 독성을 줄일 수 없다. 오히려 처리 과정에서 위험도가 올라가고 처리시설 건설 및 운영비용 증가, 관리시설 부지 확보 어려움, 중저준위방폐물 추가 발생, 소각로 비연계에 따른 미국의 장기 동의 획득 어려움 등 풀어야 할 숙제만 늘어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원자력 기술이 아름다워지려면 원자력 이용에 따른 쓰레기를 잘 처분하여 그 기술이 이용된 자리도 아름답게 정리되어야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원자력계는 국회가 특별법을 원만히 제정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안전한 기술개발을 통한 국민 수용성 증진 노력, 사업단 확보기술의 일반부지 지하연구시설 실증사업 연계추진, 처분장 부지 선정에 필요한 기술지원, 처분장 건설 인허가 등 후속 절차가 중단 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원자력에너지 이용에 수반되는 책임을 미래세대에 떠넘기지 말고 우리 세대에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