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은 우리가 탄소중립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Nuclear is the only way we can go to be carbon neutral).” 지구 온도를 처음 측정하기 시작한 1880년 이후 2021년 8월까지 지구 온도는 1.7℃ 상승했다. 얼마 안돼 보이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지 못해 지금 보다 8℃ 이상 오르면 지구는 생명체 거주가 불가능한 행성이 된다. 마지막 빙하기였던 1만 8000년 전 지구 온도는 지금보다 고작 6℃ 밖에 낮지 않았다.
이에 전 세계는 지구온도 1.5℃ 이내 상승을 막기 위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글래스고 기후조약(Glasgow Climate Pact)’을 채택했다. 물론 COP26에서 국가별 탄소배출량 감축의 의무화 등 이행목표치를 구체화하지 못했지만 선진국과 개도국을 포함한 195개 당사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데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 ‘두 마리 토끼를 잡아’
COP26 개최 이후 80여일 지난 올해 2월 2일 유럽연합(EU)은 녹색분류체계, 즉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에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포함시키기로 최종안을 발표했다.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를 구분하는 ‘지침서’인 셈이다. 세계 최초로 지난 6월 ‘그린 택소노미’를 발표한 EU는 원자력과 천연가스의 포함 여부를 놓고 각국이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그동안 독일 등 상당수 국가가 원자력을 새로운 전력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 EU는 “원자력 없이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유럽 경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린 택소노미로 분류하는 규정안을 확정·발의했다. 다만 신규 원전이 녹색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자금과 부지 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더 안전하다고 평가 받는 핵연료(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승인했다.
그러나 국가의 원활한 에너지 수급 이슈는 경제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가동을 중단했던 산업체가 재가동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수요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산(産) 가스 공급의 제한으로 에너지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의 가스 가격은 2021년 대비 200% 이상 상승했고 석탄 가격 또한 100% 이상 올랐다.
제1·2차 오일쇼크와 같은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거나 석유 생산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피크 오일’ 시점이 발생한다고 해도 국가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공급을 하려면 국외정세에 대비한 연료 공급과 에너지 안보를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력공급 안정성을 고려한다면 현재 상황에선 원자력발전이 가장 유리하다. 원자력발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에너지밀도가 높아 연료비축이 쉽고 에너지 안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을 원자로에 한 번 장전하면 15~18개월 동안 연료를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 길어야 1개월분밖에 저장할 수 없는 화석연료에 비해 연료비축 능력이 월등하다.
프랑스의 원자력전문기업인 오라노(Orano)는 2019년과 2021년 실시한 ‘원자력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51%는 원자력을 경제의 원동력과 에너지 독립을 위한 자산(Asset)으로 인식한 반면 15%는 원자력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립 크노흐(Philippe Knoche) 오라노 대표(CEO)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부각된 원전의 안전성 우려와 재활용이 불가능한 방사성폐기물 발생 등을 꼽았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탄소중립(Net Zero)과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라는 거대한 도전에서 원자력은 유일한 대안이라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尹정부 “脫원전 걷어내고, 원전생태계 강화” 앞장
문재인 정부 5년간 ‘탈(脫)원전’ 기조로 내리막길을 걸었던 원전 산업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탈(脫)원전을걷어내고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고 안전성을 전제로 운영허가 만료 원전의 계속운전 등으로 원전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또 2030년까지 10기 수출을 목표로 적극적인 수주 활동도 전개한다. 하지만 탈원전 기조가 바뀌었다고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바로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신한울 3·4기 건설 및 계속운전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전에 원자력산업의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예비품 발주 등으로 산업계의 일감이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원전산업의 밸류체인(공급망)을 상세히 분석하고 핵심 기자재에 대한 국산화, 미래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R&D 투자, 인력양성 등도 다각도로 추진해야 한다.
◉ 신한울 1호기 첫 전력계통 연계… 상업운전 임박
2010년 4월 첫 삽을 뜬 신한울 1호기(설비용량 1,400MW급)가 지난 6월 9일 최종 전력 계통에 연계돼 상업 운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2% 부족했던 국내기술의 100% 자립이라는 숙원을 이룬 신한울 1호기는 미자립 기술이었던 원자로냉각재펌프(RCP)와 계측제어시스템(MMIS)을 우리 손으로 설계부터 제작, 성능검증을 거쳐 실용화함으로써 ‘원전기술 강국’으로 발판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2011년 12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최초로 건설 인허가를 받은 원전으로 국내외 안전 점검에서 지적된 개선사항이 설계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모두 반영됐다. 아울러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해외수출에 성공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Barakah) 원전과 동일한 신형가압경수로(APR1400) 노형인 신한울 1호기는 ‘원전 부활’의 신호탄이 될 총사업비 60억 유로(한화 약 8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원전 프로젝트의 참조 발전소다.
◉ 기장연구로 건설공사… 10년 만에 착공
새로운 연구로 건설로 주목을 받고 있는 ‘수출용 신형연구로(일명 기장연구로)’ 건설공사 역시 10년 만에 7월 착공이 예정돼 있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원자력 의·과학 특화단지 내에 20메가와트(MWt)급 연구용 원자로 1기와 동위원소 생산시설 등을 건설하는 기장연구로 프로젝트는 중성자를 이용해 암 치료는 물론 반도체 생산, 비파괴 검사 등 다양한 연구에 활용되는 거대 국책 사업이다. 특히 그 동안 전량 해외수입에 의존하던 방사성 동위원소의 국내소비량을 100% 자력으로 공급하여 수입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일본, 중국, 동남아 등 해외수출도 기대해 볼 수 있어 향후 50년간 38조에이르는 경제적 파급효과와 150여 명의 고급연구원 유치 등 막대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 신고리 5ㆍ6호기, ‘K-원전’ 수출 다각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에 들어선 신고리 5·6호기(1,400MW×2)는 ‘원자력발전’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유례없는 공론화를 통해 59.5%의 ‘건설 재개’ 결과를 얻으며 사장(死藏)될 위기에 처한 ‘K-원전’의 수출 경쟁력을 진화시킨 횃불이 됐다. 국내외 선행원전의 경험 및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교훈(Lessons Learned), 규제기관의 인허가 요구사항 등이 반영됐고, 이를 토대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표준설계인증(DC)과 유럽수출형(EU-APR™)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을 취득했다.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 및 기술력을 입증하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체코, 폴란드, 남아프라카공화국,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수출이 가능해져 원전수출 시장을 다각화할 수 있게 됐다.
◉ 방사선융합복합기술 개발에 역량 집중
원자력산업계는 4차 산업혁명 기술 등 융합을 통한 영역의 확장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동원전 일차계통 기기기·구조물의 이상상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해 고장을 미연에 방지하는 지능형 고장진단 기술, 딥러닝 기반 사고 시나리오 결과 고속 예측 기술, 초소형원전과 선박용 부품 제조를 위한 3D프린팅 제조기술 개발과 지능형 안티드론 통합 시스템 실증에 착수한다.
특히 방사선을 이용한 다양한 융합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된 우리나라 대용량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한 스트론튬-82(Sr-82) 생산 등 방사성의약품 공급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밖에도 방사선을 이용해 미세먼지와 축산악취를 저감하는 환경정화 기술에 대한 본격 실증에 나선다. 감염성 결핵, 폐렴, 심내막염 등 난치질병에 대응하는 방사선 의료기술(신약) 개발 등 우리 생활 가까이 다가가는 다양한 기술을 이전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산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속가능한 K-원자력, 무엇이 필요한가
한편 탈원전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던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021년 기업이미지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69.2%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11.6%에 불과했다.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불필요하다’는 여론보다 무려 6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2017년 56.5% ▲2018년 58.9% ▲2019년 63% ▲2020년 64.7% ▲2021년 69.2% 등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고, 반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7년 18.5% ▲2018년 17.3% ▲2019년 15.2% ▲2020년 14.6% ▲2021년 11.6%로 지속 하락했다.
결국 지난 5년 탈원전이 정치적 이슈로 쟁점화됐지만 국민들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안보를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원자력발전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반증이다. 그럼 지속가능한 ‘K-원자력’으로 바로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원자력정책 컨트롤타워가 시급하다. 개발-규제-실증-상용화-수출 등 전 과정에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소통해야 한다.
둘째 신한울 3·4호기는 물론 원래 추진하기로 했던 신규 원전 건설이 병행돼야 ‘원전 생태계’가 빠르게 복원될 것이며, 이를 위해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도 충분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셋째 기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인 만큼 우수 인력 양성과 유입을 위한 프로그램 및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우려는 지난 40여 년의 안정적인 운영능력과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소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