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펜데믹을 3년째 겪으면서 ‘PCR 검사’라는 낯설었던 용어가 어느새 누구나 아는 일상적 용어가 되어 버렸다. 조금 관심 있게 본 사람이라면 PCR의 원리까지 이해할 정도로 친숙해졌다. 콧물 속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RNA를 분리하고, RNA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의 특정 부위를 PCR이란 기계로 증폭하여 바이러스가 있는지를 검출해낸다. 여기까지는 조금만 관심 가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콧물 속에 존재하는 바이러스가 있고 그 바이러스를 둘러싼 껍질 안쪽에 존재하는 RNA만 어떻게 분리해내는 것일까? 그것도 하루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검사를 받는데 어떻게 그 많은 샘플에서 RNA를 분리하여 24시간 이내에 PCR 결과를 알려줄 수 있을까?
DNA나 RNA 같은 유전물질을 자석으로 끌어당겨 분리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이와 같은 기술은 이미 오래전에 상용화가 되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바이오니아(이하 바이오니아)의 자성나노비드 기술은 이미 상용화가 되어있는 자성비드 기술을 나노 크기로 만들어 성능과 품질을 혁신시킨 사례이다. 아울러 바이오니아는 이 기술을 기존 기술의 성능혁신에서 멈추지 않고 분자 진단 영역이 아닌 전혀 다른 사업영역에서 새로운 기반 기술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바이오니아는 하나의 기술을 혁신함으로써 기존 사업영역에서는 세계 최고성능의 제품을 탄생시켜 매출 성장과 기술력을 인정받는 기회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얻게 된 셈이다. 이 기술은 성과를 인정받아 2022년 3주 차 IR52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나노 세계의 이해
바이오니아의 자성나노비드가 가진 기술혁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노 세계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사람의 세포는 십여 마이크로미터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쉽게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는 머리카락 두께가 약 100마이크로미터로 세포보다 10배가량 크다. 세포는 마치 공장처럼 쉼 없이 여러 가지 물질들을 만들기도 하고 밖으로 배출하기도 한다. 이 세포라는 공장을 컨트롤하는 가장 중추적인 설계도이자 관리자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DNA인데 크기가 약 10나노미터 정도로 세포 크기인 10마이크로미터의 약 천분의 일에 해당한다. 참고로 바이러스의 크기는 100나노미터 정도이고 바이러스 역시도 직경 100나노미터 크기의 껍질 안에 유전정보를 가진 10나노미터 크기의 RNA나 DNA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PCR 검사를 한다는 것은 세포나 바이러스를 둘러싼 껍질을 제거하고 온갖 물질들이 뒤섞여 있는 데서 나노미터 크기의 DNA를 분리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림 1을 보면 크기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 이해가 좀 더 쉽게 될 수 있다.
자성나노비드 기술혁신
바이오니아가 기술개발에 성공한 자성나노비드의 기술적 원리를 간단하게 말하면 세포나 바이러스의 껍질을 제거하여 세포 속 물질들이 흘러나오게 한 후 공 모양의 쇠구슬(bead) 표면에 DNA가 달라붙으면 그 쇠구슬들을 자석으로 모아서 DNA만을 추출 해내는 것이다. 이 쇠구슬 표면은 DNA가 달라붙는 성질을 가지도록 실리카로 코팅되어 있다.
쇠구슬이 자석에 달라붙는 것이나 DNA가 화학적으로 실리카에 흡착되는 원리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지식이었고 이 원리를 이용해 Magnetic Bead란 기술과 상용 제품이 등장한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바이오니아의 자성나노비드는 과거에 글로벌 회사들이 개발한 Magnetic Bead라는 기술혁신 제품을 성능과 품질면에서 월등히 앞지른 2차적인 기술혁신을 달성한 사례이다.
글로벌 회사들이 양산 공급하는 기존의 자성비드는 크기가 3~10마이크로미터 크기인 데 반해 바이오니아의 자성나노비드는 400나노미터로 10배 이상 크기가 작다. 세포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이고 DNA의 크기가 10나노미터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DNA를 분리수거하는 비드의 덩치가 너무 크면 그만큼 추출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같은 부피에 10,000나노미터와 400나노미터 직경의 쇠구슬이 각각 있다면 어느 쪽의 표면적이 더 넓은지 금방 감이 온다. 아래 전자현미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바이오니아 자성나노비드(a) 사진 하단에 표시된 척도가 500nm인 반면 경쟁사 비드 (b), (c) 사진에는 5㎛이고 (d), (e)는 20㎛이다. 이 사진 한 장이 기술력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크기를 비교했다면 두 번째로 보아야 할 것은 모양과 크기의 균일성이다. 크기의 차이는 표면적의 차이에 의해 DNA 추출효율과 관련이 있다면 모양과 크기의 균일성이 의미하는 바는 신뢰성과 관련이 있다. 모양과 크기가 들쑥날쑥한 원료와 일정한 원료가 있다면 어느 쪽이 최종 품질이 고르게 나올 것인지는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자성비드 표면에는 실리카라는 물질을 코팅하여 DNA나 RNA를 달라붙게 만든다. 산화철로 비드 자체를 나노미터 크기로 균일하게 만들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보다 핵심기술은 비드 표면에 3나노미터 두께로 실리카를 코팅하는 것이다. 액체 상태의 실리카를 400나노미터 크기 쇠구슬에 3나노미터 두께로 일정하게 코팅하는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론적인 세상의 일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전자현미경으로도 완성된 이후에나 볼 수 있는 나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그 과정을 명확히 이해하기도 어렵고 제어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림 2의 (b)~(e)에서 경쟁사 비드의 크기와 표면이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것과 비교해 바이오니아 자성나노비드의 크기와 표면의 모양을 비교해서 보면 기술력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바이오니아의 기술혁신 세 번째 포인트는 양산 스케일의 차이다. 경쟁사 비드는 한 번 생산하는데 50~100리터 반응기로 생산한다. 분말 산화철에 실리카를 일정한 두께로 코팅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공정이기 때문에 대량으로 양산할 수 있는 생산기술을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한 기술혁신 과제이다. 자성나노비드 개발부터 양산까지 전 과정을 총괄 지휘한 김재하 부사장은 양산 기술 확보가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고 말한다. 1리터 반응기부터 실험실 스케일로 출발하여 5리터, 300리터, 2,000리터를 거쳐 무려 6,000리터까지 스케일업에 성공하였다. 경쟁사의 생산기술 대비 산술적으로 60배 이상 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생산에 투입되는 시간과 인원을 고려하고 최종 제품의 품질과 성능이 월등히 높아진 점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기술적으로나 가성비로나 비교할 수 없는 혁신을 달성한 셈이다.
자성나노비드 개발은 2014년에 착수하여 2017년 개발에 성공하였다. 2018년 여름 첫 양산에 성공한 자성나노비드는 2019년부터 판매에 들어갔고, 2020년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막대한 양의 PCR검사가 이루어졌고 바이오니아의 자성나노비드와 자성나노비드가 포함된 핵산 추출 키트는 단지 회사 매출 성장을 넘어 코로나19 방역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필수품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바이오니아 기술혁신의 비법 그리고 새로운 도전
바이오니아는 1992년에 농기계 창고에서 창업하여 국내 최초로 DNA를 합성한 유전자 기반 바이오벤처 1호 기업이다. 국내에서 생명공학이 산업의 한 분야로 성장하는 30년 역사의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니아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국내외 특허 수만 700여 개에 달한다. 평균 잡아서 매년 23건 이상의 특허를 30년간 확보해야 나올 수 있는 숫자다. 바이오니아가 지금처럼 중견기업의 규모를 갖춘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700여 개의 특허는 바이오니아 자체가 혁신 기업이라는 설명 외에는 다른 설명을 할 수 없으며 자성나노비드 개발 성공은 해마다 시도되고 있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기술 도전 중 하나의 성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비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기술에 대한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다. 이를 기술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발상부터 기획과 프로젝트 관리, 조직문화,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하게 성공 요인을 추출할 수 있겠지만 학문적 분석보다는 남다른 철학이 기술혁신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비법은 끝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박한오 회장의 기술에 대한 철학이다. 바이오니아는 매년 연구개발에 백억원 가량의 연구비를 쏟아부어 왔다. 쏟아붓는다는 표현이 약간은 거칠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바이오니아가 중견기업 규모가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인데 현재 매출 규모에서 보아도 백억원의 연구비 투자는 일반적인 기업의 매출 대비 R&D 비용을 훨씬 상회한다. 규모가 커지기 이전의 바이오니아에서 백억원의 연구비는 적자를 감수할 수 있다는 각오가 없으면 투자하기 어려운 금액으로, 기술개발만이 유일한 지속 성장의 길이라는 철학 없이는 이런 과감한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회장님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맨이자 발명가이고 기술자이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철학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두 번째 비법은 연구 과정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한다. 바이오 소재 관련 기술은 돈과 시간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고 다른 분야에 비해 기술개발 성공의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이다. 앞서 자성나노비드의 기술적 원리를 서술한 바와 같이 이미 다 알려진 원리여도 원하는 성능과 품질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렵고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 비드를 공급하는 Merck나 GE Healthcare와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왜 지금까지 이십여 년 전 개발된 자성비드를 이십여 년 동안 바이오니아 수준으로 향상시키지 못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성나노비드를 개발하는 각 단계에서 수백 번의 실험을 통해 최적화를 거듭하는 과정은 인내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믿고 기다려주는 신뢰가 더 중요하다.
무언가 그럴싸한 비법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겠으나 위의 두 가지가 기술혁신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보인다. 사실 비법의 이면에는 회사 내부에 신제품 및 신기술 기획 프로세스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어 믿음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과학적 방법이 숨어있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경쟁사 기술이나 제품 그리고 시장성을 분석하고 지식재산권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고 수익성 검토를 하는 기획과정이 부서별로 분담되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프로세스가 오랜 시간 내재화되어왔다. 여타의 다른 회사들도 유사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겠지만 차이점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이다.
수백 번의 실패를 거치며 얻게 된 나노코팅 기술은 현재 전자파 차폐를 할 수 있는 ‘은 코팅 구리 나노와이어’ 개발의 기반 기술로 활용되어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5G 시대에 반도체,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PC뿐만 아니라 태양전지, 디스플레이, 전자제품,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전자파 차폐 소재는 매우 핫한 이슈이다. 값비싼 은을 대신하여 구리에 나노 두께로 은 코팅을 한 와이어 형태의 망상구조 나노 소재는 표면적을 최대로 넓히고, 가격은 낮추고, 전자파 차폐 효율은 극대화할 수 있다.
바이오니아의 나노코팅 기술은 지금까지의 유전자 분야 사업영역을 넘어 완전히 다른 사업영역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은코팅 구리 나노와이어 신소재 기술은 올해 3월 유럽특허 등록을 마쳤고 1,500리터 스케일의 연속식 파일럿 설비를 완공했다. 2025년까지는 대규모 양산시설을 남공주산업단지에 건설할 계획이다. 잘 키운 기술 하나가 신사업으로까지 기반을 넓혀 주는 효자가 되었다.
글.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