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공평한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정작 세상은 공평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일 때가 많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프로젝트로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쉴 새 없이 일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시간이 남아돈다. 비슷한 아이디어의 상품이라도 어떤 것은 대히트를 기록하는가 하면 다른 것은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잊힌다. 이런 불평등은 대체 왜 나타날까? 피할 수 없는 숙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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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소수와 사소한 다수
따지고 보면 자연 자체가 불평등하다. 분자구조가 거울에 비춘 것처럼 대칭적인 모양을 한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하나는 자연에 풍부하지만 다른 하나는 드물다. 사람의 수정란이 분열하면서 뇌를 형성할 때, 뇌 형성 물질은 특정 방향으로 쏠림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서 이 때문에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비율이 다르게 나타난다. 미시적인 세계를 들여다봐도 평탄하고 고요하기보다는 곳곳에서 거품이 터지듯 요동쳐서 불평등으로 가득한 것이 세상이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이러한 자연적 불평등에 대한 해답이 없다.
다만 원인을 모르더라도 현상은 분석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흔히 80대 20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파레토의 법칙’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가 창안했다. 파레토는 부의 분배에 대한 연구로 경제학에 중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가 어빙 피셔와 거의 동시기에 고안한 무차별곡선은 경제 주체가 최적의 효용을 선택하는 과정을 체계화함으로써 수요-공급 이론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기도 했다.
파레토는 유럽 국가들의 소득분포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면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어느 국가든 상위 20%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80%를 소유했다는 점이다. 파레토는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여 파레토 분포라는 그래프로 시각화했다. 그는 파레토 분포를 근거로 사회의 80%를 좌우하는 유능한 소수, 엘리트 계층이 존재하며 역사는 거대한 변혁과 진보가 아니라 단지 엘리트 집단의 교체가 반복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는데, 이로 인해 파시즘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파레토 분포 그래프. x축은 경제 주체의 숫자, y축은 이들이 소유한 상대적인 부의 양을 뜻한다.
재미있게도 파시즘의 선구자인 파레토의 이론은 그에 대항하는 자본주의의 총본산,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 이론으로 재탄생한다. 품질연구가이자 엔지니어인 조지프 엠 주란은 파레토의 통찰을 접하고는 이를 생산 관리에 적용했다. 주란은 파레토 분포로부터 ‘치명적인 소수와 사소한 다수’라는 개념을 취해 이를 품질 관리에 적용했다. 제품의 결점 중 80%는 20%의 요인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품질 관리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인을 일일이 모니터링하기 현실적으로 곤란한 상황에서 무엇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주란이 변용한 파레토 법칙은 이후 마케팅 전략의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최적화’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고액 자산가를 위한 금융기관의 PB 서비스, 백화점의 VIP 마케팅, 쇼윈도의 디스플레이 전략 모두 80%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20%의 소수에 집중하는 방식의 마케팅이다.
빅데이터가 발굴해 낸 ‘긴 꼬리’
전통적인 시장 구조에서는 파레토 법칙이 유효했다. 기업이 투입할 수 있는 자원과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은 제한적이었고, 이를 단시간 내에 경영에 반영하려면 사소한 다수는 무시하는 방식으로 선택과 집중을 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CT의 발전으로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어 공간적인 제약이 줄어들고 실시간으로 거래 정보를 수집하며 데이터가 급속도로 축적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20%의 수익, 80%의 시장에도 기업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 매체, <와이어드>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은 잠재 시장이 작아서 기존의 경영 환경이라면 무시당했을 상품이라도 온라인 상거래에서는 긴 시간 동안 유의미한 수준의 매출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대면 거래에서는 상품을 진열하고 보관할 공간이 제한되다 보니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은 퇴출시키고 주력상품 위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비인기 상품은 매장에서 금세 자취를 감췄고 소수자의 취향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공간적 제약이 없는 온라인 매장에서는 비인기 상품의 정보도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이러한 제품은 단기적으로 큰 매출을 생성하지 못하지만 시장이 작은 만큼 고객의 충성도도 높아서 지속적인 매출을 발생시킨다. 앤더슨은 이러한 제품들이 파레토 곡선에서 오른쪽의 긴 꼬리 부분에 속한다는 의미로 ‘롱테일’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롱테일 전략의 개요. 파레토 곡선 오른쪽 부분의 노란색 꼬리 부분이 기존의 경영 환경에서 무시되던 긴 꼬리, 틈새 시장이다.
앤더슨은 두 가지 통계에 주목했다. 미국의 디지털 주크박스 업체인 이캐스트가 보유한 앨범 중 98%는 분기 당 1곡 이상 판매됐다. 파레토 법칙에 따르면 전체 시장은 20%의 히트상품이 주도하고 나머지는 들러리여야 했지만, 거의 모든 제품에는 숫자는 적으나마 확실한 고객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애플 아이팟의 음원 서비스, 아마존의 도서 판매에서는 하위 80%의 매출액이 전체 매출의 50% 가까이 차지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기존의 경영 상식에 반하는 결과였다.
이러한 변화는 온라인 마켓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온라인 시장은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고 판로를 확대하더라도 고정비용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모든 상품을 제약 없이 공급할 수 있으므로 이전에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던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과거였으면 무시당했을 이들 소수의 소비자가 일단 구매를 시작하면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추천 상품을 제시함으로써 추가적인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파레토 법칙을 근본적으로 뒤바꾼다. 롱테일 전략은 20%의 고객을 버리고 80%의 고객을 취하는 전략이 아니다. 20%의 고객에 더해 그간 소외됐던 80%의 고객을 추가로 확보하는 전략이다. 고객 한 명이 소비할 수 있는 양은 제한되어 있으니, 롱테일 전략이 실행되면 결국 파레토 곡선의 꼬리는 굵어지고 머리는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20대 80의 법칙이 근본부터 부정되는 셈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러한 전략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ICT가 발달하기 전에는 대면 거래의 한계로 소수를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던 시도는 대부분 실패하거나 소규모로 근근이 살아남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전 세계 소비자의 검색 및 구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종래의 공간적, 시간적 제약은 거의 사라졌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위력은 막강해진다. 이제 기업은 소비자 집단이 아니라 특정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몇몇 스타트업 기업은 이를 아예 생산 공정에까지 도입했다. 예컨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펑션오브뷰티’는 생산 공정을 모듈화해서 개별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한 제품을 판매한다.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향과 기능을 선택하면 해당 선택에 해당하는 성분이 생산 공정에 공급되어 ‘나만의 맞춤형 샴푸’가 탄생하는 방식이다. 개인 맞춤형 기술은 개인의 취향이 매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패션 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응하는 ‘개인맞춤 생산 방식’은 제조업에도 도입된다. 독일 인공지능연구소(DFKI)는 2010년경부터 ‘모듈러 무빙 팩토리(Modular and Moving Factory)’를 연구하고 있다. 생산라인을 기능별로 분할하여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공장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다. 기능별 모듈이 주문에 맞춰 자동으로 이동하여 생산라인을 재구성하며, 이 과정은 인공지능이 조율한다. 의약 분야에서는 이미 현장에 도입을 앞두고 있다. GE 헬스케어의 ‘플렉스 팩토리(Flex Factory)’ 사업으로, 중소 제약업체를 대상으로 생산 라인을 세포 배양부터 단백질 정제까지 맞춤 디자인하고 각 라인을 컨테이너 크기로 제작하여 설치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자신만의 공장을 설계하기는 부담스러운 중소기업들이 쉽게 원하는 공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기성품 모듈을 선택해서 조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꼬리는 머리가 될 수 있을까?
바야흐로 롱테일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개인 맞춤형 시장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롱테일은 새로운 머리가 된 것일까? 다수 대중의 취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까? 꼬리를 바라보는 동안 놓치는 것은 없을까?
개인화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과제가 대두됐다. 개인화가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SNS를 통한 소통에서 문제가 되곤 하는 ‘확증 편향’의 또 다른 형태다. 개인화 서비스를 접하는 소비자는 자신에게 딱 맞춰 구성된 서비스를 경험한다. 리뷰에는 나와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가득하고 내가 생각한 제품들이 줄줄이 추천된다. 이렇게 파도타기식으로 내 취향에 맞춘 제품을 선택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폐쇄적인 원에 갇혀버리고 만다. 심할 경우에는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 성향이 실제 세계에서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세상이 내게 친절하게 돌아간다고 믿는대서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여하고 사회 전반의 소외감을 낮춘다는 점에서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괴리가 발생한다. 긴 꼬리에 속해 있던 사람은 자신이 몸통에 속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전체의 80%를 장악한 20%의 주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 통신 채널보다 열려 있어야 할 것만 같은 SNS에서 작은 사회가 종종 나타나는 이유다.
주관적 인식과 현실의 괴리는 미국 대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페이스북 내부 고발자 프란시스 하우건은 영국 하원 의회 특별 위원회에 출석해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세계 곳곳에서 증오를 부추긴다"고 증언한 바 있다. 광고 이익은 이용자에게 유관한 피드를 제시했을 때 극대화된다. 따라서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기존 취향이나 세계관에 부합하는 피드만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자연히 이러한 알고리즘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이용자 집단간 벽을 두텁게 하기 마련이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크리스티안 푹스에 따르면 이러한 알고리즘 편향성은 자본주의적 디지털 환경이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롱테일 전략이 자본주의적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ICT와 결합한 만큼, 현재의 ‘개인화’ 알고리즘은 개인을 위한 알고리즘이라기보다 이윤을 극대화화하는 데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화 알고리즘은 사용자들이 최대한 자신의 플랫폼에서 눈을 떼지 않도록 자극적이고 편향된 콘텐츠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특징은 온라인쇼핑이나 SNS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필터 버블’이다. 필터 버블은 엘리 프레이저가 그의 저서, <생각 조종자들>에서 소개한 개념으로 정보 여과 현상을 말한다. 맞춤형 정보를 제공받은 결과 이용자가 특정 정보만 편향적으로 접하는 현상이다. 알고리즘 추천을 수동적으로 따르다 보니 다양한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추천 알고리즘은 그 속성상 반드시 필터 버블을 유발한다. 이용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더 심하다. 사용자에 대한 정보가 축적될수록 사용자가 아직 경험하지 않았거나 기존 사용 패턴과 거리가 있는 다양한 갈래의 정보들은 사용자의 추천 리스트에서 점점 사라진다. 결국 이용자는 기존에 관심 있던 정보만 공급받는다. 구글 애드센스를 탑재한 페이지를 이용할 때 내가 검색한 적이 있는 제품 광고가 제공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텐데, 이러한 현상이 바로 필터링 알고리즘의 결과물이다.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법칙은 각각 20세기와 21세기의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파레토 법칙이 효율성을 이유로 소수 취향에 대한 무시를 낳았듯, 롱테일 법칙은 맞춤형 추천에 의한 편향성과 파편화를 유발한다. 물론 소비자가 마냥 수동적이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 내내 ‘잘난 20%’만 신경 쓰는 세상을 비판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여줘서 간사해 보이기까지 한 추천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무엇이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을 낳기 마련이니까. 다만 마케팅과 콘텐츠가 결합하면서 소비 생활과 커뮤니케이션의 경계가 흐려지는 만큼, 롱테일과 같은 마케팅에도 철학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