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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꿈의 신소재를 개발했다는 뉴스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뉴스를 가만히 읽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이 신소재가 어디에 요긴하게 쓰일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절로 하게 된다. 신소재란 기존 소재의 결점을 보완하거나 예상치 못한 효과를 극대화하거나 우수한 특성을 창출해서 아주 높은 물성과 기능을 구현한 재료를 말하는데, 신소재에 관한 상상이 재미있는 것은 기존에 불가능하던 일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여 세상을 바꿀 정도가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규소로 만든 실리콘 반도체 신소재는 기술혁명을 중심으로 새로운 첨단 기술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였고, 어쩌면 영화 울버린의 초능력 자가치유 소재는 생활 속 휴머노이드 로봇 세상을 앞당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근거림을 갖게 한다.

연구 개발된 기술이 실험실을 떠나 세상과 연결되는 시작점 중 한 곳인 공공기술의 기술사업화 조직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이런 신소재 기술에 매료되어 찾아오는 많은 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금속, 세라믹, 복합재료 등 다양한 신소재 연구 개발자를 직접 만나보기도 전에 이미 기업가들은 이 신소재를 사용할 곳에 대한 상상으로 들떠있고 실제 이것이 가능할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기대감 속에서 막상 기술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연구개발자와 기업가의 관점의 차이가 커 더 이상 기술 사업화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에서 신소재가 실험을 벗어나 기업가를 만나는 순간 가장 많이 받는 요구는 일단 개발된 신소재를 써보고 싶으니 일정량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개발된 신소재의 적용 가능성을 보기 위한 테스트를 하고 싶으니 수 킬로그램의 샘플을 팔아달라고, 이후 샘플 테스트 결과 진전된 가능성이 보이면 신소재를 독점 공급받아 사업하고 싶다고들 요구한다. 즉 신소재에 관심을 갖고 연락이 오는 기업가의 90% 이상이 소재를 사용하여 부품이나 완제품을 판매할 소재부품, 완제품 기업들이다. 이후 기술사업화가 단절되는 지점은 그럼 이 신소재는 누가 만들어서 공급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현재 국내 소재 기술사업화 밸류체인의 공공기술사업화 조직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공백은 소재를 직접 생산해서 판매할 소재 제품 기업가가 없다는 점이다. 신소재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소재부품, 완제품 기업들도 막상 소재의 직접 생산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모든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실험실을 떠난 신소재 기술은 시작부터 맞이하게 되는 주된 어려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기술의 개발과정에서 기술사업화의 필수라고 할 수 있는 특허의 확보가 신소재 개발과 동시에 진행이 된다. 신소재에 관한 발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발명보다는 기존 물질의 조성에 관한 수치 한정 선택 발명(선행발명에 기재된 구성요건이 상위개념으로 기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상위개념에 포함되는 하위개념을 구성요건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는 발명으로 선행발명의 범주에 속하게 되나 선행발명이 인식하지 못한 우수한 효과를 가진 하위개념이 이루어지는 특허로 인정됨, 물질 수치 한정 발명은 일정 구성요건이 물질의 함량 등 수치를 한정한 발명을 의미함)이거나 기존 소재의 새로운 기능 발견을 통한 용도발명(물건, 방법, 생산방법 등 특허법에서 인정되는 발명의 범주인 ‘기술적 상상의 창작’이라기보다 ‘발견’에 기초한 발명으로 실무적으로 특허를 부여하여 보호되고 있음)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신소재 발명을 특허화하기 위해서는 단순 아이디어로는 특허성의 입증이 부족하므로 반드시 실험을 기반으로 하여 수치 한정 경계 범위에서 다수 개의 실시 예와 비교 예를 제시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신금속 소재를 특허 출원하기 위해서는 금속 소재를 녹이는 것부터 기초물성의 테스트, 가공성 및 장기 내구성에 대한 실험을 필요로 하게 되고 이 과정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렇게 어려운 실험을 거쳐 조성 범위 수치 한정 특허를 취득했지만, 신소재 발명 특허는 여전히 선행특허의 침해 가능성이 남게 되고 나아가 수치 한정의 진보성에 관한 무효 가능성의 불안을 안고 있다. 나아가 등록 특허의 구성 물질의 수치 범위 경계-바깥 영역에서 등록 특허를 회피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위협에도 노출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등록 특허가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 20년 이내에 신소재 기술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응용 기술이 아닌 원천소재 특허의 존재로 기술사업화에 장애가 있다는 소식을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을 만큼 신소재 특허가 산업 생태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보지도 못하고 존속 만료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신소재가 특허출원 후 20년 가까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소재 자체의 시장성 결핍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주된 부분은 소재의 양산생산기술이라는 큰허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보았던 형상기억합금의 일종인 니티놀 신소재는 그 성능과 잠재적인 응용처가 1930년대부터 연구되었지만, 소재의 제조기술 부족으로 1980년대가 되어서야 상업적인 연구가 시작되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심장 스텐트 기구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실제 기술사업화에서 사용되는 기술 성숙도(Technology Readiness Level)를 기준으로 실험실에서 연구개발진이 TRL 5~6(시작품 단계)에 이르는 시점에 신소재 기술사업화 파트너 기업을 찾게 되는데, 막상 파트너를 찾더라도 소재의 양산생산기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TRL 3~4(소재 합성 및 배합 실험)로 다시 돌아가 연구개발을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 실험실에서 생각하는 소재의 최적 구성과 생산 공정은 생산 규모 혹은 경제성 문제에서 더 이상 대량생산공정에 적용되기 힘들거나 상당 부분 변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또 다른 전문 연구개발 영역에 해당하며 이 기간이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산업 생태계를 바꿀 정도의 소재 기술 사업화가 국내에서 더욱 어려운 점은 실험실을 떠난 이후에도 상용성 검증 및 개발과정이 상당히 길고 복잡하고 많은 비용이 들게 되는데 동시에 개발되어 생산된 소재를 사용할 수요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며, 이로 인해 적용 가능성이 보이더라도 국내에는 선뜻 신소재를 생산해 보겠다고 나서는 소재 제품 기업가를 찾기 힘들다. 최근에 기술사업화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다고 할 수 있는 바이오산업도 장기간 검증과 대규모 비용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유사한데, 바이오산업에는 초기 바이오 기술이 신생 바이오 벤처를 통해 빅파마(Big Pharmaceutical Company, 대형 제약회사)로 유입되는 중간 기술 시장 모델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시장에 의해 중간 기술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신소재 기술사업화를 위해 2020년 정부가 소재부품장비산업법 입법을 통해 수요-공급 기업 간 ‘협력모델’(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수요기업 사이 또는 공급기업 사이의 수평적 협력, 수요·공급기업 사이의 수직적 협력 등 참여하는 기업 간에 상호 이익을 위하여 구축한 협력체계)을 추진함으로써 소재 기술의 사업화 밸류체인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다만 협력 모델에서 공공기술 개발 주체는 여전히 기술 공급자에 불과하고, 이 기술을 이전받아 소재 제품을 공급할 국내 기업은 아직은 영세하고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려워 원천기술을 사업화할 능력이 아쉽다. 국내 소재 제품 기업은 여전히 신소재를 개발하고 사업화하기보다는 대부분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일본의 소재 기업으로부터 핵심 소재나 기술을 들여와 가공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생태계의 시발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의 공공기술사업화 영역의 화두는 기술 창업이고 국내에 소재 제품 전문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좋은 방안도 소재 전문 기술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이오 기술 시장이 빅파마로부터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기술 시장 생태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중간기술 시장을 만들었다면 신소재 기술 시장은 국가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생태계 순환 자금을 초기에 기술 창업기업에 공급하고 이 기술 창업에 공공기술 개발 주체가 직접 뛰어들어 사업화 리스크를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최근 한국재료연구원에 서는 기존 마그네시아의 단점을 극복하여 알루미나 시장을 대체할 고열 전도성 마그네시아 신소재 기술을 출자하여 미래 전기차 배터리 부품 소재 생산 전문 업체 ㈜소울머티리얼(정인철 대표)을 설립했다.


신소재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간 응용시장을 찾고 추가 기술 개발에 힘쓴 연구개발진도 대단하지만,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어려운 신소재 기술의 창업을 결심한 대표자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5년이 넘는 개발과 사업화 노력을 거쳐 기업의 형태를 간신히 갖추게 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다만 벤처 투자시장에서 비인기 업종인 신소재 생산기업에 투자해 준 한국 과학기술 지주와 연구소기업 제도를 통해 마그네시아 방열 세라믹 소재의 국산화·실용화를 지원할 한국재료연구원이 ㈜소울머티리얼의 기술사업화에 함께 할 것이다. 최근에 국내에도 많은 중견·대기업들이 소재 제품-부품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어 신소재 기술 시장에도 기회가 열리고 있다. ㈜소울머티리얼처럼 공공으로부터 시작된 소재 기술 창업의 바람이 신소재 기술 시장에 기술과 기업을 공급함으로써 소재 사업화 생태계 시발점의 기초를 시작하여 신소재 기술 시장이 활짝 열리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