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명강연

 

2021년 11월 18일에 열린 제58회 산기협 조찬 세미나가 엘타워에서 진행됐다(유튜브 생중계). 디지털 전환(Digital eXchange) 시대, 돌덩이 취급을 받는 아날로그 사업을 금덩이로 만드는 전략적 개념과 실제 사례를 융합형 경영 전문가인 김경준 CEO스코어 대표가 전했다.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라볼 때

최근 비즈니스 메가트렌드는 디지털 전환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이 대세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이 변곡점이었다면, 2021년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선에서 디지털이 본격적인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한 때이다. 이로 인해 CTO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익히 알려진 CTO의 약자는 최고기술경영자를 뜻하는 ‘Chief Technology Officer’이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지금, CTO의 ‘T’는 Technology는 물론 Transformation뿐만 아니라 Trend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

CTO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기술과 사업의 연결이다. 그러나 갈수록 단순한 접근으로는 비즈니스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실제로 세계적인 석학들도 미래 예측에 실패하기도 했다. 왜일까. 기존 방식으로 새로운 현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은 인사이트가 주어져도 자기 입장만을 고수하면 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기술 중심으로 사회가 변화하면서 기존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실물이 없는 가상화폐는 물론, 중고 운동화가 희소성을 이유로 몇천만 원이 넘는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기성세대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MZ세대들에게는 익숙한 현실이다.

1980년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유명한 저서 '제3의 물결'에서는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 등 정보산업이 태동하면서 유통, 미디어, 제조 등의 기존 산업에 정보화 혁신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이 같은 관점을 디지털 시대에 접목해도 유효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플랫폼 등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서 금융, 의료, 서비스 등 기존 산업에 디지털 격변을 일으키는 것.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기존의 사업모델도 재편된다. 과거에는 전자, 전기, 기계, 화학 등 산업의 원재료와 생산방 식에서 분화된 사업 모델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인프라 공급자, 플랫폼 조직자, 정보 제공자, 제품 제조자의 4가지 타입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 가운데 제품 제조자는 익히 알려진 제조기업들이 포함된다. 앞으로도 고객가치를 충분히 창출할 수는 있지만, 디바이스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부가가치는 줄어든다.

그렇다면 아날로그 기업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디지털은 중요하지만, 기존의 것을 모두 버리고 디지털로 바꾸자는 구호는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하다. 오히려 아날로그 비즈니스가 지닌 ‘업의 본질’이라는 핵심을 이해하고 여기에 디지털을 접목해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격변에서 살아남는 디지털 피보팅

농구 경기에서 피보팅(Pivoting)은 몸의 중심축을 한발에서 다른 발로 이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두 발을 동시에 움직이면 파울이므로, 공을 잡았을 때 한발만 움직여 방향을 전환해 다른 선수에게 패스한다. 산업계에서는 이 용어를 기존 비전은 유지하되 전략을 수정해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피보팅은 아날로그 기업이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전략이다. 아날로그 업의 본질에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확보하는 것이 디지털 피보팅의 기본 개념이다.

디지털로의 인식 전환은 요식업처럼 진입장벽이 낮은 산업에서도 유효하다. 요식업 비즈니스 모델은 최근 몇 년 사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기성세대가 운영하는 떡볶이 가게도 주문 플랫폼에서 이용자의 팬덤이 조성되면 매출이 급증한다. 이처럼 디지털에 제대로 접근하면 아날로그 비즈니스를 활성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미노피자다. ‘주문하면 30분 안에 배달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로 급성장했지만, 진입장벽이 낮아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08년에는 주가가 3달러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도미노피자는 2007년에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고 주문 프로세스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고객 경험을 분석해 최적화 마케팅에 나섰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도미노피자의 주가는 20배 급증했다. 아날로그 비즈니스가 디지털을 접목할 때 더 큰 폭발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기타 판매회사 펜더(Fender) 역시 2000년대 이후 악기 판매가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이했지만,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고객의 의견을 듣는 간단한 시도를 통해 매출 상당수가 초보자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펜더 플레이(Fender Play) 라는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유료 구독자를 확보했다. 초보자 고객 유입은 제품 매출 확대로도 이어 졌다. 이처럼 흐름을 잘 보면 아날로그 비즈니스일수록 디지털 전환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

디지털 피보팅의 기회 영역은 어떻게 도출해야 할까. ‘중요도’와 ‘시급도’, ‘파급도’를 구분해 우선순위를 분류하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파급도가 높은 데서부터 디지털 전환을 시도한다. 디지털 기술을 핵심 영역에서 먼저 시도했다 실패하면 타격이 크다. 그러므로 지원 활동인 인사, 홍보, 경영지원 등에서 경험을 축적한 후에 본원적 활동인 제조 등에 디지털을 접목한다. 오피스 프로그램처럼 기술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구매해서 쓸 수도 있다.

이쯤에서 CTO의 개념으로 돌아가 보자. CTO는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미드필더이자, 연락장교이다. 테크놀로지와 트랜스포메이션, 트렌드를 한 몸처럼 여기며 더 넓은 시각을 가질 때, 진정한 디지털 전환 시대의 혁신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