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휴대폰, 노트북, 전동 공구, 청소기 등의 소형가전부터 드론, 전기자동차, 로봇,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부터 산업에 걸쳐 배터리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든 사물 배터리(Battery of Things, BoT) 환경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앞글자 K는 화장품, 패션, 먹을거리를 넘어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문화산업에까지 세계가 인지하는 접두사처럼 되었는데, 이차전지 역시 K-배터리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세계시장 점유율 44.1%의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눈부신 이름 이면에 이차전지의 소재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차전지의 핵심 중간소재인 양극재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역할이라서 매우 중요하고 기술적 관심도도 높다. 국산화율도 53%로 비교적 높고 수입의존도도 47%인 반면, 다른 핵심 소재인 음극재는 양극재와 더불어 이차전지의 에너지 밀도에 직접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수입의존도가 80%에 달하여 K-배터리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상황이다.

대주전자재료㈜(이하 대주전자재료)는 전도성 페이스트와 태양전지 전극 재료 및 형광체가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 아이템인 기업으로 10여 년 전 이차전지 음극재 개발에 뛰어들었고 최근 제품 출시 2년 만에 매출 비중 16%를 넘는 기술사업화에 성공하였다. 개발 착수 당시 이차전지나 음극재에 대한 수요가 높지도 않았던 시기에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려 개발 5년 차에 선진 기업들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았고, 다시 5년 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음극재 개발에 성공하여 2021년 21주 차 IR52 장영실상을 받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고용량, 고효율 이차전지 음극재 개발 성공의 기술적 의미

요즘 전기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기 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게 되면서 이차전지 역시 관심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차전지의 기술 발전 방향은 에너지 밀도와 충전 시간, 안전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전기자동차의 상품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핵심 부품으로 인식되었다.

이차전지의 기술적 요소들을 단순화하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소재가 양극재이고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음극재이다. 에너지 밀도를 결정하려면 일단 충전 과정을 통해 전지 내부에 에너지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하는 것이 양극재이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개발이 양극재에 집중되어왔지만 아무리 에너지를 많이 만들어 내도 충분히 저장할 수 없거나 방출 효율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음극재 역시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음극재는 흑연을 사용해왔고 지금도 흑연 음극재를 대체할 마땅한 소재가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론상으로 훨씬 용량이 높은 대체 소재가 존재하나 기술적 문제로 인해 이차전지에 실제 적용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흑연은 1g당 350mAh 의 용량을 가지지만 이론상으로 리튬이나 실리콘은 4,000mAh로 무려 11배 이상의 효율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고용량임에도 불구하고 음극재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들이 심각하고 아직까지 기술적 해결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충전했을 때 소재의 팽창이 일어나 부피 기준으로 약 3배 가량 증가하는데, 그때 소재 입자가 깨져버려 전자들의 이동 통로가 상실되는 문제가 있다(그림 1).



문제의 해결 방법은 실리콘 입자크기를 나노 사이즈로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비표면적을 작게하여 전해질과의 표면 반응을 억제할 수 있으나 소재의 상용화는 10년 이상 수많은 연구개발을 통해서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실리콘을 음극활물질로 상용화한 첫 시도는 일본의 소재 기업이 식품 포장지의 가스 투과 방지용 필름 등의 소재로 사용되었던 실리콘산화물(SiO)의 특이한 현상(SiO가 Si나노 입자와 SiO2로 상분리)을 이차 전지에 적용하여 실리콘 음극재의 핵심 문제를 해결하면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초기 상용화된 실리콘 음극재의 낮은 초기 충/방전 효율(75% 이하) 문제로 인하여 적용 확대가 안 되고, 극히 일부의 기종으로만 한정되어 저급 실리콘산화물(SiO) 시장이 형성되었다.

적용에 문제가 있음에도 여전히 실리콘 음극재는 전고체 등의 차세대 전지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이차전지의 성능 극대화를 위해 한계 성능을 돌파할 수 있는 대안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표 1에서 보듯이 흑연 대비 실리콘 산화물을 음극재로 사용하면 에너지 용량은 3~5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 초기 충·방전 효율이 흑연과 비교해 떨어지지만, 용량이 증가하는 장점이 있다.



대주전자재료에서 개발한 고용량·고효율 실리콘 복합산화물 음극재가 갖는 기술적 의미는 1차적으로 이미 상용화된 저급 실리콘 산화물 음극재와 비교해 초기 충·방전 효율을 끌어올리고 팽창으로 인한 깨짐 문제를 극복하여 기존 흑연 음극재와 저급 실리콘 산화물 음극재 시장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2차적인 의미는 해외 기술 도입이나 설비 도입 등의 외부적 도움 없이 순수 독자 기술로 개발부터 양산까지 성공시켜 본격적인 상용화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성능의 혁신과 기술 개발 과정의 혁신

개발된 실리콘 복합산화물 음극재는 2019년도부터 흑연 음극재에 일부 혼합하여 사용함으로써 이차전지라는 완제품 측면에서 보면 흑연 음극재만 사용한 제품과 비교하여 초기 충·방전 효율의 손실 없이 에너지 용량이 대략 10%를 웃도는 성능 개선을 달성하였다. 여기까지는 기술혁신이라 보기엔 미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능의 혁신은 개선의 정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혁신과 개선을 구분한다. 즉 개선의 정도가 크지 않으면 개선에 그치지만 개선의 정도가 크면 혁신으로 볼 수 있다. 대주전자재료에서 목표로 하는 개선의 정도는 흑연 음극에 5wt% 첨가시 음극 용량의 약 10%의 성능 개선, 10wt% 첨가시에 음극용량의 약 25% 성능 개선, 향후 2025년에는 25wt% 첨가시에 약 70% 이상의 성능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향후 충전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80%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을 10분 이내로 단축시키는 혁신도 기대된다.



이러한 혁신을 가능케 한 핵심기술은 기상합성 공정으로 온도, 압력, 농도 제어를 통한 소재의 조성, 입자 크기, 결정 구조, 형상을 최적화하는 기술이다. 개발된 음극재의 성능 혁신보다 의미가 더 큰 것은 실험실 장비부터 양산설비까지 모두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하나하나 자체 설계 및 제작을 통해 수많은 실패를 딛고 양산 공정을 모두 독자 개발했다는 점이다. 2010년 개발 착수 당시에는 실험 장비조차 없어 해외 특허 등에 나온 개념적 내용만 가지고 장비를 만들다 보니 시행착오는 필연적이었고, 학계나 전문가들도 양산 수준에서 실리콘으로 음극재의 성능을 높이는 것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실험 장비를 설계하고 실험을 통해 엔지니어링 데이터를 모으고 다시 설계 수정을 반복하면서 양산설비 제작까지 온전한 독자 기술을 완성하여 2019년 드디어 첫 매출을 올리는 데 무려 10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였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결과로 나타난 혁신에는 주목하지만, 그 과정의 혁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우리는 기술 발전 속도가 전례 없이 빠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술들은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수십여 년 전부터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거듭된 결과가 오늘날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기술혁신의 성공 요인과 향후 과제

대주전자재료의 기술혁신 성공에는 특징적으로 강조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현장’을 중심에 둔 접근이다. ‘현장’은 나노재료사업부 개발그룹장 오성민 부사장이 강조하는 단어이다.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을 연구원 ‘Researcher’이라고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구보다는 현실적인 가치를 창조하여 생산 현장을 통해 구현해내는 역할을 담당하는 의미에서 ‘Engineer’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성민 부사장이 생각하는 현장은 실험실에서는 되더라도 현장에서 구현할 수 없다면 가치 구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이공학을 전공했더라도 기업의 생산 현장을 이해하고 현장을 통해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기술 인재로 거듭나야 비로소 새로운 기술혁신에 도전할 수 있는 전사들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10년의 기술 개발 과정을 되돌아보면 경쟁사의 특허와 학술논문에 나온 개념적 내용만 가지고 실험 장비와 양산설비에 사용할 부품과 모듈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기 위해 화학공학을 전공한 연구원들이 기계설비와 씨름하고 동시에 소재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분석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면서 부분적으로 파악된 퍼즐 조각들을 짜 맞추며 한발씩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만 국한된 ‘연구’로는 기술의 융복합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현재의 기술 경쟁 환경에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게 됨을 누구보다 체감한 오성민 부사장은 연구원들에게 항상 현장을 강조한다.

대주전자재료를 창업한 임무현 회장은 지금까지도 현장 중심, 기술 중심 경영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최신 기술 트렌드와 글로벌 동향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공부하고 직접 연구소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은 창업 당시의 현장에 대한 열정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도 개발에 착수할 수 있게 하였고 결실을 이루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주며 연구원들과 함께 공부하는 경영자는 많지 않다.

2019년 음극재가 출시된 해에 37억 원, 2020년에 130억 원으로 수직 상승하여 단숨에 회사 매출의 8%를 넘기는 실적을 올렸고, 2021년에는 지난해의 2.5배를 기대하고 있어 또다시 가파른 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실리콘 복합산화물 음극재는 리튬이온배터리의 한계 성능을 돌파하는 핵심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다.



1988년 Ford에서 제시한 기술 전략의 범위는 기술 획득, 기술 관리, 기술 활용의 3가지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주전자재료의 기술혁신은 획득과 활용에 있어 성과를 넘은 성공을 거뒀다. 향후 과제는 아마도 기술 관리에 있다고 생각된다. 개발된 기술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가 크지만 보다 효과적인 것은 축적된 기술을 어떻게 다음 세대와 공유하고 새로운 기술 개발의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 있게 하는가의 숙제가 남았다고 본다. 어렵게 노력해서 모은 우리 집 재산을 아끼고 잘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집안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문제에 비유할 수 있다.



 



글/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