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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과학

미국의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역작인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과학과 수학으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에 대한 사고 실험이다.

아시모프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기'에서 영감을 얻어 파운데이션을 집필했다. 이야기는 쇠락하지 않을 것만 같은 범주우적 문명인 은하제국의 수도, 트랜터에서 시작된다. 트랜터는 로마처럼 공화정에서 시작하여 제국의 수도로 성장한 행성으로, 은하도서관과 대학이 있어 인류 지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트랜터 대학의 수학자, 해리 셀던은 인류의 역사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인 ‘심리역사학’을 창시한다. 사람의 심리에 대한 수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상, 문화 등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수학적 이론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역사를 수학으로 서술하자 물리학이 그러했듯 인류의 미래도 완벽하게 예측 가능해졌다.

셀던은 계산을 통해 은하제국의 멸망과 수만 년에 이르는 인류 문명의 암흑기를 예견한다. 어떤 방법으로도 멸망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셸던은 암흑기를 1,000년 정도로 단축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위해 ‘파운데이션’을 설립한다. 이름의 의미 그대로 멸망한 인류 문명을 다시 일으켜 세울 기반이 될 조직이다. 파운데이션은 제국의 눈을 피하고자 변방의 행성인 터미너스를 테라포밍하고 이곳에서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을 백과사전화하여 보관한다. 50년간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해 온 파운데이션은 제국이 무너진 이후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여 인류 문명의 보루 역할을 한다.

이후 파운데이션이 인류 문명을 복원하는 과정이 1~3권의 줄거리를 이룬다. 총 7권으로 이루어진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파운데이션의 설립부터 발전, 외적의 침입까지 모두 셀던의 계산에 따라 진행된다. 셀던은 작품 초반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지만 인류의 미래는 셀던의 사후에도 몇백 년 동안이나 그가 생전에 계산해 둔 그대로 흘러간다. 셀던이 남긴 홀로그램 영상은 그가 계산해 둔 미래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돌파구를 제시한다. ‘수학적 해석’이라는 부분만 빼고 보면 마치 예언을 통해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선지자 같은 모습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묶어서 생각하기’

아시모프가 초창기에 집필한 3권까지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단편 묶음에 가깝다. 긴 시간을 다루는 대서사시의 특성상 에피소드마다 주요 사건과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작중에서 전지전능한 학문처럼 묘사되는 심리역사학이다.

아시모프는 심리역사학을 인간 심리의 집단적인 모습을 수학적으로 해석한 학문으로 묘사한다. 이와 가장 유사한 현실 세계의 학문이라면 사회심리학이라 할수 있겠지만, 심리역사학의 아이디어 자체는 통계역학과 닮은꼴이다.

'파운데이션'에서는 심리역사학 이전에도 사회 전체를 수학적으로 설명한다는 아이디어가 이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아시모프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불가능해서 실용성이 없었다고 묘사한다.

물리학에서도 정확히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 뉴턴이 정립한 역학(mechanics)은 깔끔한 수학적 형식으로 정리된다. 모든 변수는 초기 조건이 동일하면 항상 정확하게 같은 결과를 내놓는다. 그래서 19세기 초까지의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분자의 초기 상태만 정확하게 주어지면 미래를 오차 없이 예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에는 어떤 천체도 뉴턴 역학에 따른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천체에 대한 연구는 과학자들에게 뉴턴역학의 ‘예지력’에 대한 확신을 심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 유체 속 모든 분자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분자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추적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이 이를 해결한 방법은 ‘묶어 생각하기’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현상은 분자들의 움직임에 의해 일어나지만 수도관에서 물이 흐르는 양을 알아내거나 열기구에 얼마나 불을 켜둬야 하는지 계산할 때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 관찰할 뿐,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일일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때 분자 수준의 움직임은 미시적 상태, 물과 기체의 변화는 거시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미시적 상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거시적 상태의 법칙을 따로 연구했다.

거시적 상태를 따로 생각하는 방법은 물리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유체역학, 기체역학, 열역학 등 서로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던 다양한 현상들이 뉴턴역학을 매개로 연결되어 새로운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고전 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미시적 상태에 적용되는 뉴턴역학의 법칙에 따라 거시적 상태의 미래도 결정됐기에 새로운 역학들은 미래를 훌륭하게 예측해냈다.

작중에서도 심리역사학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원래 셀던은 수학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운데이션을 음지에서 돕던 제국 재상, 에토 데머즐의 조언과 격려에 힘입어 소규모 집단을 하나의 단위로 다뤄 수식으로 표현하고 집단 간 상호작용을 보조 변수로 도입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미시적 상태를 포기하고 거시적 상태로 관점을 바꾼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돌파구가 되어 심리역사학은 강력한 설명력과 예측력을 갖는 과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수천 년의 역사는 심리역사 학의 계산 위에서 흘러간다.

 

새로운 파운데이션, 성공적인 실험일까?

거시적 관점으로 시야를 바꾸는 물리학자들의 시도는 고전 역학의 지평을 넓혔지만 한편으로는 통계역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방법론을 잉태했다. 통계역학은 분자들의 미시적인 상태를 현실적으로 알기란 불가능하니 통계적인 관점에서 경우의 수와 가능성으로 해석하자는 학문이다. ‘하나의 확실한 답’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가능한 답’을 다루는 통계역학은 뉴턴역학의 결정론과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양자역학을 탄생시키면서 물리학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심리역사학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애플TV가 제작하여 독점 공개한 '파운데이션' 드라마는 원작과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전체 줄거리를 관통하는 심리역사학이 더 이상 전능한 이론이 아니다. 드라마에서는 파운데이션이 설립되지도 않은 상태에서부터 심리역사학의 예측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제국의 붕괴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황위 계승 과정을 비롯하여 원작에는 없던 설정을 여럿 추가했다. 셀던도 원작처럼 초반에 사망하지 않고 죽은 척하고는 터미너스로 이동했으며, 심리역사학의 예측이 곳곳에서 삐걱거리며 예기치 않은 위기상황을 계속 만들어낸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던 원작과는 전혀 다른, 우연과 가능성의 세계가 된 셈이다.

파운데이션은 2021년 11월 19일로 시즌 1이 마무리됐다. 드라마는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연대기와 비슷한 듯 다르게 흘러가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원작을 그대로 옮겼다가는 자칫 심리역사학이 학문보다는 전지전능한 신적인 교리에 가깝게 묘사될 수도 있으니 드라마적인 서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원작과는 완전히 달라진 심리역사학이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에서 어떻게 극을 이끌어갈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된다.


글/최혜원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영화와 소설의 매력에 빠져 글쓰기를 시작했다. 일을 그만둔 후에는 프리랜서로 여러 매체에 문화와 역사, 학문을 한데 엮은 폭넓은 주제를 다룬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