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명강연


 

지난 9월 9일, 최고경영자를 위한 정보 교류의 장인 제56회 산기협 조찬 세미나가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날은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가 강연을 맡아 ‘비대면’, ‘MZ세대’, ‘빠른 변화’라는 키워드 안에서 CTO의 리더십에 관해 이야기했다.

 

국가의 부와 패권이 이동하는 이유

'부의 역사', '패권의 대이동'이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직업적으로 평소 다양한 책을 읽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이 두 권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두 책의 핵심은 명확하다. 바로 세계적으로 부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추적한다. 현재 세계의 패권 국가는 미국으로 꼽히지만, 과거에는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이 부의 중심에 있었다. 그렇다면 한 나라가 왜 계속해서 부와 패권을 장악하지 못했을까. 책에서는 그 이유를 ‘좋은 인력의 이동’이라는 가설로 설명한다.

스페인은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패권국가가 되었다. 그보다 더 유명한 사건은 같은 해 있었던 알함브라 칙령이다. 당시 부를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에게 가톨릭 개종을 강력하게 권고했던 이 칙령으로 인해 당시 스페인에 있던 27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지로 떠났다. 이후 스페인은 쇠락하고, 네덜란드가 패권국가가 되었다. 다음에 패권을 넘겨받은 곳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주요 기술 개발에 국가가 현상금을 내걸 만큼 기술을 중요하게 여겼다. 덕분에 증기기관이 탄생하고, 인구 집약적인 산업 발달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는 핵심 기술 인력이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미국이 패권을 잡게 되었다.

반대로 기술 인력 홀대로 패권을 놓친 국가는 프랑스다. 위그노라고 불리는 개신교도를 핍박하면서 프랑스의 기술자들이 인근 국가인 스위스로 떠났고, 오늘날 스위스의 3대 산업인 제약, 향료, 시계 등을 부흥시켰다. 한국 역시 과거 사농공상의 순서대로 중시해온 경향이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역사를 통해 기술력이 국가의 미래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국가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술 인력들이다. 그래서 소중한 기술 인력이자, 동시에 기술 인력을 이끄는 기술경영인 및 연구소장 등 기술 인력들이 책임감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오랜 기간 진로를 문과와 이과로 구분했다. 이 때문에 문과 출신은 기술을 알려고 하지 않고, 이과 출신은 인문학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이과를 구분한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기술 인력들도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 바탕에는 연구개발 역량이 있다.

 

연구개발만큼 중요한 리더십

하지만 시대가 달라진 지금, 예전 방식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부분이 리더십이다.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을 배출한 칭화대학교의 교육이념은 고금관통(古今貫通), 중서융합(中西融合), 문리삼투(文理渗透)이다. 옛날 것과 지금 것이 소통하고, 중국의 것과 서양의 것을 융합하며, 문과적인 것과 이과적인 것이 서로 섞여야 한다는 의미다. 핵심은 ‘균형’이다.

연구개발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연구 경영인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하다. 기술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리더십은 사람을 향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연구소나 공장 안에서도 수십, 수백 명의 마음을 움직여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면 리더십은 어떻게 발휘해야 할까. 먼저는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다들 노를 오른쪽을 향해 젓고 있는데 한 사람만 왼쪽을 향하면 어떻게 될까. 방향이 잘못되면 모두가 열심히 하는 것조차 소용이 없다. 올해, 3년 후, 5년 후 등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구성원과 공유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 리더십의 반대말은 자기 일만 잘하는 개별성과이다. 자기 일은 잘하지만 협조와 협업이 잘 안 된다면, 리더십을 점검해 봐야 한다.

그리고 방향에 맞게끔 제도·시스템·사람을 정렬해야 한다. 연구개발의 성패는 의지가 아닌 역량이 가른다. 현재의 제도·시스템·사람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시각 차이가 생긴다. 상사들은 위임했다고 하지만 직원들은 권한이 없다고 여긴다. 권한 위임은 ‘정말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해 덜 중요한 것을 주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 권한 위임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또한, ‘솔선수범’도 필요하다. 솔선수범이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주변을 청소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정신적, 경제적, 육체적으로 밑지는 리더십이다. 사람들에게 먼저 베풀면 부채감을 갖는다. ‘내 일은 내 일, 네 일은 네 일’로 여기는 조직과 베푸는 조직 중 어느 곳이 더 성공할까. 그 바탕의 총체가 조직문화가 된다. 기술경영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성과로 인정받고 협업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일이다.

조직문화는 철저하게 위로부터 아래로 흐른다. 좋은 리더는 지시가 아닌 질문을 한다. 질문을 받을 때 직원들이 머리를 쓴다. 그러자면 직원들이 조직 안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도 괜찮다는 안전감을 느껴야 한다. 안전감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질문과 경청이 시작된다. 그 바탕에는 존중이 있다. 만났을 때 ‘저 사람 똑똑하다’는 인상을 주는 리더가 있고, ‘잘 통한다’고 느끼게 하는 리더가 있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소통은 리더가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영어 ‘트레이너(trainer)’의 어원은 기차(train)에서 왔다. 정해진 프로토콜대로 직원들이 하게끔 만드는 사람이 트레이너다. ‘멘토(mentor)’의 ‘ment’는 어원 자체가 생각하게 하다는 뜻이다. ‘코치(coach)’는 마차(coach)에서 왔다. 마차는 마부가 앞에서 몰아야 하듯 코치는 직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코치 같은 리더는 질문을 통해서 답을 이끌어낸다.

이를 위해 리더십을 다시 정의하자. 리더십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사람은 좋은데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단기적인 목표는 달성하지만 장기적으로 사람이 떠나서는 안 된다. 구성원들이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즐기는 조직문화 안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이 CTO의 핵심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