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동부 지역에서 탄생한 핀테크 기업 레볼루트, 독일 동베를린 지역에서 탄생한 IT 배달기업 딜리버리 히어로, 프랑스 파리 외곽지역 17구에서 탄생한 카풀 기업 블라블라카. 이들의 공통점은 유럽의 도시 슬럼가에서 탄생한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혁신 스타트업이 들어서면서 유럽의 도시 빈민가는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 독일 베를린의 ‘실리콘 알레’, 프랑스 파리의 ‘에콜 42’와 ‘스티시옹F’ 등으로 탈바꿈되면서 슬럼가의 기적을 일궈냈다(그림 1).
유럽의 도시 슬럼가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혁신 스타트업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민간의 스타트업과 투자 자금의 유치, 공공의 부지(낙후지역)와 인프라 제공이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다양한 클러스터 육성정책을 수립·추진 중이나 아직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최근 글로벌 창업생태계 분석기관인 美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이 발표한 글로벌 창업 생태계 보고서(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21)에 따르면 글로벌 창업생태계 280개 도시 중 영국 런던은 2위, 한국 서울은 16위에 랭크되었다. 특히 총 6개 평가항목 중 서울의 창업생태계는 지식 축적(Knowledge, 10점), 네트워킹(Connectedness, 9점) 항목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나, 생태계 활동성(Performance, 6점), 자금 조달(Funding, 5점), 시장 진출(Market Reach, 5점)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았다.
문제는 낮게 평가받은 항목 모두 공공이 직접 플레이어(player)로 기획·참여한 부문이란 점이다. 이렇듯 민간의 영역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에는 공공이 직접 시장의 플레이어가 되려고 하는 것에 있다. 여전히 지자체별 창업생태계 정책에는 공공이 직접 BM(Bench Mark, 벤치마크)을 개발하거나 시장을 개척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공의 역할은 규제 개혁, 부지 제공(테스트베드), 세제 혜택 등 정책적 뒷받침에 한정되어야 한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이 전도되는 순간 창업생태계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저출산 고령화, 청년 유출 문제는 도시 슬럼화뿐만 아니라 지방 소멸 현상도 초래하고 있다. 이의 문제 개선을 위해 올해 7월 ‘지방 소멸 위기지역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되었다. 지방 소멸 위험지수(한국고용정보원 매년 조사)란 대한민국 인구의 수도권 집중, 저출산, 고령화의 심각성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지수로,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고령 인구 수로 나누었을 때, 0.5 미만이면 소멸위험단계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 지역은 105개로, 전체의 46.1%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93개(40.8%)보다 올해 12곳이나 증가한 수치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문제다.
관련 사례로 삼진어묵은 저녁 6시만 되면 슬럼화되는 부산 영도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삼진어묵 영도점 뒤편 폐가 건물 6동을 매입해 아레아6(AREA6)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였다. 동 사례는 민간 주도형 재생사업으로 디지털 신기술 활용은 미흡하지만, 지역 자체를 콘텐츠화시킨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로컬 혁신 사례를 전국구 혹은 글로벌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기반 선순환 클러스터 전략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구로공단, 구미공단, 창원공단 등 지역 공단이라는 산업 클러스터와 테크노파크·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별 대학과 연구소 등 지역별 R&D 혁신클러스터가 선순환하는 구조가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과 연구소는 논문 연구 중심의 단절적 구조로, R&D 성공률은 95%가 넘는 반면 기술 이전율은 20%대에 불과하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이다. 또한 R&D 혁신 클러스터의 주체인 산학연의 연결 고리인 인적 교류가 너무 취약하다. 좋은 사례로 미국의 ‘I-Corps’는 과학 기업가(Science entrepreneur)들이 연구실을 벗어나 산업현장으로의 깊은 진입에 성공하였다. 혁신 조직의 개별 역량이 아니라 산업계와의 연결 역량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도 제조, 교통, 도시개발, 환경, 의료, 금융, 농업 등 분야별 엔지니어들의 노하우, 설비데이터, 비정형 기록, HW, SW, 디바이스, 알고리즘 등이 디지털 자산화되어 축적된 디지털 스레드 라이브러리(Digital Thread Library)와 현장문제 해결 전문성을 지닌 제조 엔지니어, 농업 전문가, 서비스 디자이너, 생태계 설계자 등을 찾고 연결할 수 있는 문제해결 전문성 딜리버리 네트워크(Expertise Delivery Network)를 구축하는 등 연결, 융합, 시너지를 위한 클러스터 혹은 마켓 플레이스를 마련해야 한다. 그 장을 통해 R&D 혁신, 지역, 산업의 어울림 마당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는 산업단지, 농어촌, 도시 등 지역별 디지털 전환 경험이 있는 리더와 그 전환에 사용되는 HW/SW/디바이스/콘텐츠 공급사 조합을 목록화하여 이를 비즈니스 모델과 재활용 가능한 상호운용적 기술 아키텍처로 연결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우리에게 선사한 선물 중 하나는 Copy&Paste를 통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증식력이기 때문에 목록화와 축적 아키텍처 인프라가 중요하다(그림 2).
이것이 R&D 혁신 클러스터와 산업 클러스터의 선순환 전략이며, 실제 작동을 위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 디지털 마켓플레이스(Digital marketplace)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디지털전환 시대, 사회와 경제의 새로운 거래구조를 디자인하고, 선순환 유인구조를 통해 경제 승수 효과를 증폭시키는 아키텍트, 큐레이터, 에반젤리스트 등 에코시스템 디자인 씽커(Ecosystem Design Thinker, 새로운 밸류체인과 생태계를 만드는 디자인 씽커)가 늘어남을 느끼고, 서로 만남의 장을 늘여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들이 산업별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의 수많은 경험을 기반으로 산업 내 엔지니어 간 교류의 장을 구축하고, 상호 기술력을 인정·축적·전수하며 젊은 엔지니어, 농업 전문가, 도시 서비스 디자이너 등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자생적 혁신에 참여하는 유인구조를 설계한다(그림 3). 이제 지역 혁신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당면과제는 과거의 구획화되고 단절된 산학연 구조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 협력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그 실행은 디지털 스레드 라이브러리, 문제해결 전문성 딜리버리 네트워크, 디지털 마켓플레이스 등을 통해 가능하며, 그 설계자는 에코시스템 디자인 씽커이다. Shall we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