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수소경제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수소자동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건물 공장 발전소 등을 수소로 가동하는 기술 개발이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두산, 효성, 코오롱 등 주요 대기업 15곳은 지난달 초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을 출범하고 수소경제 활성화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골드만삭스는 2050년 세계 수소경제 규모가 1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50년은 세계 각국이 정한 탄소 중립 원년이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호주 등도 수소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2월 백악관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 고등과학연구소인 아르파(ARPA)-C를 설립한다고 했다. 아르파-C의 핵심 강령 열 가지 중 절반은 수소 기술을 겨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린수소(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없는 수소), 무탄소 차량, 무탄소 발전 등이다. 수전해(물 전기분해 수소 생산)와 수소자동차, 수소연료전지 발전소와 사실상 같은 뜻이다.

전문가들은 수소경제의 본질을 ‘탄소 중립을 위해 수전해와 연료전지 두 기술이 전 산업 분야에 확산되는 것’이라고 본다. 연료전지는 자동차부터 가정, 건물, 공장, 기차, 드론, 선박, 우주선까지 용처가 무궁무진하다. 수소는 무색, 무미, 무취, 무해, 무독한 데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물질이다. 생산 지역이 특정한 곳에 국한되는 화석연료 등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어디서든 만들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산업을 넘어 안보 차원에서 수전해와 연료전지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연료전지 구조는 간단하다. 수소를 넣으면 백금 등 촉매가 수소를 양성자(수소 이온)와 전자로 깨뜨리고, 전자는 전해질을 따라 움직이며 전기를 만든다. 이때 떨어져 나온 양성자는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물이 된다. 이 과정을 얼마나 싸고 빠르게, 가볍고 작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연료전지의 3요소는 촉매, 전해질막, 그리고 이를 전극과 합쳐놓은 막전극집합체(MEA)다. MEA와 기체확산층(GDL), 분리판을 모아놓은 셀을 수백 장 쌓으면 '연료전지의 심장' 스택이 된다. 100kW 수소차엔 400여 장 셀로 구성된 스택이 들어간다. 차량이 커질수록 에너지 밀도상 2차전지보다 연료전지가 훨씬 유리해진다. 드론이나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고고도에서 악천후와 관계없이 오래 작동시키려면 연료전지가 필수다.

문제는 열악한 국내 소재부품 생태계다. 국내 기업 가운데 연료전지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연료전지는 사용하는 전해질(이온이 이동하는 운동장)에 따라 이름이 나뉜다. 인산염(PAFC), 용융탄산염(MCFC), 고체산화물(SOFC), 양성자교환막(PEMFC) 연료전지 등이다. 육상선수가 단-중-장거리와 마라톤 선수로 나뉘듯, 각자 최적 성능을 내는 온도와 분야가 다르다. MCFC는 대형 발전소, SOFC는 건물과 가정, PEMFC는 차량에 적합하다. 세계에서 상용 수소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은 현대자동차(넥쏘)와 토요타(미라이)뿐이다. 넥쏘와 토요타에 들어가는 연료전지가 PEMFC다. PEMFC는 상온에서 동작하고 가볍지만 비싼 백금 촉매를 쓰는 단점이 있다. 백금 촉매는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일본 다나카금속, 영국 존슨매티 등에 의존한다. PEMFC 전해질막은 듀폰 등의 제품을 쓰고 있다. MEA 설계는 일본 토요타, 미국 3M 등이 지배하고 있다.



차세대 연료전지인 SOFC도 원천기술이 절실한 분야 중 하나다. SOFC의 최대 장점은 다른 연료전지와 달리 수소의 순도를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효율도 가장 높다. GE, 지멘스, 미쓰비시, 롤스로이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가스발전 효율을 높이려고 거액을 들여 개발해왔다. 그러나 고난도 기술이 필요해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현재 SOFC 글로벌 선도업체는 미국 블룸에너지와 영국 세레스파워다. 두산이 세레스파워와 함께 SOFC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수전해는 연료전지와 함께 수소경제의 양면을 이룬다. 수전해는 물에 전기를 가해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것으로, 연료전지의 역반응이다. 수소라고 다 같은 수소가 아니다. 현재도 석유화학 공정이나 천연가스 등을 통해 얼마든지 수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탄소배출이 없는 '진짜 수소'인 그린수소 생산 방법은 수전해가 사실상 유일하다.

수전해의 핵심장비인 전해조 역시 전극과 분리막 등 셀이 쌓인 스택이 핵심이다. 기존 계통전력과 연계할 수 있으면 1세대 수전해, 재생에너지와 연계할 수 있으면 2세대 수전해라고 한다. 2세대 수전해는 북유럽과 미국 등이 2000년대 후반부터 개발해왔다.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로 꼽힌다. 2세대 수전해는 알카라인, 양성자교환막(PEM), 고온 수전해(SOEC) 이렇게 크게 세 가지다. 연료전지와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전해질에 따라 나뉜다.

알카라인 수전해는 수산화이온(OH-)을 통과시키는 고분자전해질을 사용한다. 전극 소재는 니켈, 코발트 등을 쓴다. 노르웨이 넬과 일본 아사히카세이가 선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PEM 수전해는 양성자(H+)를 통과시키는 불소계 고분자전해질에 백금, 루비듐, 이리듐 계열의 귀금속을 전극으로 사용한다. SOEC는 양성자를 통과시키는 고체 세라믹을 전해질로 쓰는 차세대 전해조다.

수전해는 연료전지보다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전해조 안에서 수소와 산소가 섞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소는 질량이 극히 작고 가벼워 어떤 물질이든 통과할 수 있다. 전해조 안에 수소와 산소가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산소 안에 수소가 4% 이상 섞이면 폭발이 일어난다. '분리막'이 수전해에서 중요한 이유다. 알카라인 수전해 분리막 '지르폰'은 벨기에 아그파가, PEM 수전해 분리막 '나피온'은 미국 듀폰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없애 강철을 만들 때 코크스 대신 수소를 넣은 수소환원제철 역시 궁극적으로 수전해 기술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이 현실화되면 제철소에서 뿜어내는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물로 바뀐다. 포스코 그룹이 이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수전해의 가장 큰 문제는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느냐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쓰면 탄소 중립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그러나 낮과 밤, 일조량, 풍속, 기후 등에 따라 공급량이 크게 요동친다는 단점이 있다. 공급량이 갑자기 떨어지는 저부하 영역에선 산화극과 환원극이 뒤바뀌거나, 안에 귀금속 재료들이 깨지면서 전해조가 망가지기 쉽다.

그래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기술이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계 수전해다. SMR은 소듐냉각고속로(SFR), 고온가스로(VHTR) 등 차세대 원자로를 말한다. SMR은 가동 온도가 500~1,000도로 기존 경수로형 원전(300도)보다 높다. 고온 수전해(SOEC)와 연계하면 효율적인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수소 연 생산력을 2018년 13만 톤에서 2030년 194만 톤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때까지 수소차 100만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작년 수소차 판매량(5,786대)의 172배 규모다. 수소충전소는 1,000곳(현재 60여 곳)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어 2040년까지 수소 kg당 충전소 평균 공급가를 3,000원 이하로 내리겠다고 했다. 현재 가격(8,000~9,000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대차 넥쏘 연비(kg당 약 95km)를 볼 때 계획대로라면 2040년엔 1만2,000~3,000원만 있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셈이다. 올 2월부터는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총 매출 가운데 수소 사업 관련 매출과 투자 금액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수소 전문기업' 인증 후 행정,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수소 충전소를 건설할 때 환경부 승인을 받으면 다른 법률 인허가 절차를 모두 획득한 것으로 간주하는 대기 환경법 개정안도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


 

수소 저장기술은 크게 세 가지다. 고압 기체 또는 극저온 액화, 그리고 수소를 다른 금속이나 소재에 침투시킨 뒤 필요할 때 특정 조건에서 꺼내 쓰는 담체(carrier) 기술이다. 현재 국내에서 수소는 모두 고압 기체로 튜브 트레일러에 담겨 유통 공급되고 있다. 극저온 액화, 담체 기술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정부가 2030년 개발을 목표로 하는 액상수소유기운반체(LOHC)도 담체 기술의 일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