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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SF’의 새로운 가능성, '승리호'

SF, 더 정확히는 하드 SF와 스페이스 오페라를 포함한 SF 영화는 극장가 단골 장르중 하나지만 한국은 나름 영화 강국이면서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걸음 비켜 서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 신호탄 중 하나가 2020년 선보인 '승리호'다. 2092년 지구가 황폐화된 세상에서 우주 청소부들이 세계를 구하는, 아주 단순한 플롯이다. 사실 쟁쟁한 SF 영화에 비하면 '승리호'는 걸작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승리호는 꽤나 후한 평점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한국 SF 블록버스터의 가능 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해외에서는 신선한 SF 세계관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다.

해외 평론가와 팬들이 가장 고평가한 부분은 바로 다양성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권의 블록버스터의 등장인물들은 지구 출신이면 거의 무조건 영어를 사용한다. 이에 비해 승리호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출신에 따라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더라도 실시간 통역 장치를 이용해서 대화한다는 설정이다. 영화에서는 한국인 캐릭터뿐 아니라 이처럼 언어가 다른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사건을 해결하고 세상을 구한다. 기존의 SF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묘사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주역들의 배경이 다. 승리호는 영문 제목처럼 우주 청소부(Space Sweepers)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 청소부는 명백히 힘들면서도 대가가 적은 일에 종사하는 하층민이다. 이런 3D 직종이 늘 그렇듯 다양한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우주 청소부로 흘러들어온다. 이처럼 힘없는 하층민들이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맞서 승리한다는 플롯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승리호의 흥행 요소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체 우주 청소부가 얼마나 힘든 일이기에 영화에서처럼 기피 직업처럼 여겨지는 걸까?

 

지구 주위를 도는 포탄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쓰레기가 국제우주정거장(ISS)과 우주비행사들을 덮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파괴된 인공위성 하나가 연쇄적으로 다른 위성에 충돌하며 거대한 파편 더미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일어난 대형 사고다. 그래비티에 묘사된 사고가 영화적 상상일 것 같지만, 과학자들도 이러한 사고의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197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왕복선이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를 하나하나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이를 연구하던 도널드 케슬러 박사는 고도 수백km의 저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이 충분히 늘어난다면 연쇄적인 충돌로 인공위성이 한꺼번에 파괴되어 대량의 우주쓰레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정리해 보고서로 발표했다. 영화의 시작을 장식한 바로 그러한 사고다.

그 작은 잔해들이 얼마나 피해를 줄까 싶겠지만 지구 저궤도를 도는 물체는 초속 10km가 넘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권총의 총알의 발사 시 속도가 초속 400m, 포탄 중 가장 빠른 포탄도 초속 2km를 넘지 못한다. 이 정도면 1kg에 불과한 잔해라도 1톤 급의 우주선을 산산조각 낼 수 있다. 이런 포탄들이 수백 개가 날아다니는 곳이 라면 결코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당시 과학자들에게 케슬러의 주장은 지나치게 멀리 간 기우처럼 보였다. 사실 유인 우주선이 인공위성이나 발사체의 잔해와 충돌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이후 줄곧 있었다. 이에 북미우주방위사령부 (NORAD)는 1957년부터 지구 궤도에 존재하는 모든 인공물을 조사해서 추적하고 있었다.

우주개발이 진행될수록 위험신호는 분명해졌다. 아폴로 사령선과 스카이랩의 표면을 정밀 조사한 결과 자그마한 충돌 자국들이 선명했다. 주로 대기권으로 돌입하던 중 지구 저궤도를 지날 때 발생한 자국들로, 과학자들의 예상보다도 많은 양이었다. 케슬러 박사는 우주선에 충돌한 잔해 중 절반 가량이 분리되어 버려진 로켓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했다. 향후 인공위성과 우주선이 발사되면 발사될 수록 위험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스스로 불어나는 우주쓰레기

케슬러 박사는 후속 연구를 통해 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우주쓰레기 대부분은 위성을 쏘아올리는 과정에서 버려진 발사체나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공위성과 우주 임무가 많아질수록 새로 발생되는 우주쓰레기가 늘어날 테고, 인공위성과 같은 비행체가 우주쓰레기에 의해 파손되어 새로운 우주쓰레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충돌이 거듭될수록 우주쓰레기가 더 많아지니 연쇄충돌에는 가속도가 붙어서 머잖아 지구 저궤도가 쓰레기로 뒤덮일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인공위성이 안전하게 떠 있을 자리가 전혀 남지 않아 GPS나 위성통신, 위성측정과 같은 기술은 모두 옛말이 되고 지구의 기술은 인공위성이 없던 1960년대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케슬러 박사의 이러한 전망은 ‘케슬러 신드롬’이라고 불린다.


 

NASA에서는 2006년 케슬러 박사의 모델을 바탕으로 우주쓰레기의 양을 예측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2006년 이후로 인공위성 발사를 일제히 멈추더라도 2055년까지 우주쓰레기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이후 계속해서 증식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성이 거의 모든 분야에 사용되는 지금, 2020년 한 해 동안에 쏘아올린 인공위성만 1,000기가 넘는다. 2021년에는 9월까지 1,400기 이상이 지구 궤도로 올라갔다. 현재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인공위성만 총 6,542기로, 정지위성 궤도에는 이미 더이상 새로운 위성이 올라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이제 케슬러 신드롬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서둘러 대비해야 할 현실이 됐다. 어쩌면 머잖아 승리호에 등장한 것과 같은 전문 청소업자들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일본의 민간 우주기업 아스트로스케일은 폐기물 청소 위성을 개발해 2020년 발사하기도 했다.

물론 케슬러 신드롬이 그렇게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 이미 현용 인공위성은 수명이 다한 후 ‘무덤 궤도’에 올려 다른 인공위성과 간섭을 일으키지 않게 하거나 대기권으로 추락해서 타버리도록 궤도를 수정하는 식으로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이 적용되어 있다. 초속 8km가 넘는 속도로 지구를 공전하는 물체는 타원 궤도를 그리므로 다른 인공천체와 만날 가능성도 적다. 그러나 수많은 저궤도 위성으로 지구상에서의 고배율 천체관측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도 나오는 지금, 우주쓰레기는 분명한 위협임이 분명하다.


글/최혜원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영화와 소설의 매력에 빠져 글쓰기를 시작했다. 일을 그만둔 후에는 프리랜서로 여러 매체에 문화와 역사, 학문을 한데 엮은 폭넓은 주제를 다룬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