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오늘날 게임(Game)은 대중적인 취미활동이자 e-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2000년도 전후를 기점으로 국내외 다양한 종류의 ‘셀러브레티 (Celebrity)형’ 게임(그림 1)01 들이 속속 등장하며 게임 산업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 게임들의 인기는 당시 PC방 광풍과 더불어 국내 게임 시장을 급 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02.
01 스타크래프트(’98), 리니지(’98), 디아블로2(’00),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05) 등 큰 인기를 끌며 게임 시장에서 사실상의 표준(Defacto)이 되었던 게임.
02 ※참고: 컴퓨터월드, “[IT 산업 20년 전] IT 분야 유망산업으로 부상한 게임 시장”, 2020. 06. 30.
게임의 인기 요인에는 탄탄한 스토리, 화려한 그래픽, 게임 플레이의 차별성 등 사용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있는 다양한 콘텐츠 요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 요소들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게임 속에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지능적’ 기능이라 할 수있다. 즉, 게임 속 유닛(Unit), 몬스터(Monster)나 NPC(Non-Player Character)03, 스토리 전개, 전략 변화 등 많은 구성 요소들이 ‘지능적’으로 작동함으로써 게임의 완성도와 흥미를 높인다.
03 게임에서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로 게임 속 마을의 경비병, 상인, 구경꾼 등다양한 종류가 있음.
게임의 지능적 기능은 단순히 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택틱(Tactic)을 다르게 하는 기능에서부터,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게임의 진행과 결말이 달라지는 형태 등 다양한 형태를 보여 왔다. 최근에는 게임 속 인공지능 (AI)이 사용자의 패턴을 학습하여 향후 게임 진행에 반영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점차 고도화됨에 따라 게임을 보다 지능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사용자에게 현실에 가까울법한 피드백을 선사하며 게임에 대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인공지능은 이제 많은 게임사 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고, 게임의 완성도를 높일 수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게임과 인공지능의 관계
게임만큼 인공지능을 개발 및 적용하기에 최적의 대상도 없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첫째, 게임도 프로그램이며 가상세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공지능을 적용하기가 쉽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실 세계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것보다 적은 기회비용으로 새로 개발한 인공지능의 지능적 기능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은 성능 향상을 위해서 학습할 데이터가 상당히 많이 필요한데, 게임 속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데이터는 별도의 표준화나 제약 없이 활용할 수있기 때문에, 데이터의 생산단가는 제로에 가깝다. 게임은 게임 속에서 자체적으로 생성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탑재한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둘째, 게임은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적용에 따른 리스크가 적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첫 번째 이유와도 연결된다. 게임은 가상 공간이기 때문에 새로 개발한 인공지능을 적용해 보고 실험해 보는 데에 있어서 현실보다 오동작에 따른 위험부담이 적다.
이 점이 왜 중요하냐면, 현재 인공지능 연구개발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렵게 다뤄지는 과제가 바로 ‘인공지능의 신뢰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현실에서 안전하게 동작해야 함과 동시에, 인공 지능에 의한 결과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현실 세계에 적용한 인공지능이 오작동할 경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또 피해는 얼마나 클지 가늠하기 어렵다.
현시점에서 많은 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신뢰성을 갖고 완성된 형태로 구현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악의적인 시스템 또는 오동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물적·인적 손실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 윤리와 법규를 정립하는 활동과 연구들이 선도국을 중심으로 적극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게임 속에서는 사실상 이러한 제약이 현실 대비 많이 줄어든다. 이 경우 인공지능의 오동작은 순전히 통제된 가상세계에서만 이루어지므로, 초기화 하면 그만이다. 인공지능 적용에 따른 리스크가 적다는 것은 다르게 해석하면, 구현 당시 인공지능의 위험 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와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말이 된다. 실패 시 초기화가 용이하다는 것은 결국 인공지능의 구현과 적용의 용이함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이유는, 게임과 인공지능은 모두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고부가가치 영역이라는 점이다. 인공 지능을 갖춘 게임일수록 사용자들에게는 더 큰 재미를 선사한다. 이는 곧 게임 콘텐츠 제작사의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고도의 인공지능을 갖춘 게임 콘텐츠는 게임의 완성도 측면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으며, 높은 사용자 수요(인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만큼 인공지능의 활용에 있어서 들이는 비용과 감당해야 할리스크 대비 이익 창출 효과가 타 산업보다 매우 크다고볼 수 있다.
게임 인공지능 개발 및 활용 현황
인공지능은 게임 콘텐츠의 지능적 요소 고도화에 활용된다. 예를 들면, 게임 내 몬스터나 캐릭터 등에 지능을 부여해서 게임의 재미를 상승시킬 수 있다. 보통의 경우 게임 내 몬스터나 캐릭터는 정형화된 전투, 대화 등의 상호작용 패턴을 가진다. 사용자가 패턴을 알아채면 공략이 너무 쉬워지거나, 단조로운 상호작용 때문에 플레이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사용자의 실력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상호 작용을 하도록 할 수 있다. 적절한 난이도를 통해서 사용자로 하여금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게임에 대한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사용자 캐릭터 주변의 NPC가더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실제 사람처럼 행동을 하고 게임에 대한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몇몇 사례를 살펴보면, 너티독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인 ‘라스트 오브 어스’의 캐릭터 ‘Ellie’는 인공지능 NPC로 게임 진행에 따라 사실적인 반응을 하여 사용자로 하여금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넥슨의 ‘야생의 땅 듀랑고’ 게임은 인공지능 기반의 절차적 콘텐츠 생성으로 사용자의 접속 수치에 따라 대륙을 생성하고, 지형과 기후에 따라 생태계가 달라지는 등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게임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엔씨소프트는 ‘블레이드 앤 솔’의 격투 콘텐츠를 통해 강화 학습 기반의 인공지능이 적용된 NPC를 선보여 실제 사람이 플레이하는 것처럼 기술을 구사하도록 했다.
이 같은 게임에 활용되는 알고리즘은 지도학습 (Supervised Learning)을 바탕으로 정답을 예측하는 모델,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주어진 게임 환경에서 최적의 행동과 전개를 하는 모델, 언어 이해를 위한 양방향 문맥 모델링(BERT), 적대적 신경망(GAN)을 통해 입력과 유사한 결과를 생성하는 모델 등이 활용된다.
인공지능은 게임 콘텐츠 외에도 게임의 개발 및관리영역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게임 제작 시 인공 지능을 활용하여 완성도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등 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예로, 유비소프트는 게임 속 캐릭터의 사실적인 움직임 구현을 위한 모션 캡처(Motion Capture) 사전 작업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자동 보정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기존 수작업으로 4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4분으로 단축시켰으며, 보다 높은 품질의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을 구현할 수 있었다.
또한, 인공지능으로 사용자의 패턴을 학습 및 분석 하여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넷마블은 ‘콜럼버스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 맞춤형 게임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임 퍼블리싱, 마케팅 등의 운영 노하우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하여 축적된 사용자들의 패턴과 습관을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임의 보안과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인공지능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넥슨의 ‘라이브 봇 디텍션(LBD)’ 은 게임 내 데이터를 자동으로 저장하고 심층학습(Deep Learning)을 통해 분석하여 게임 핵 등 불법 프로그램이나, 어뷰징04 등을 탐지한다. 이 시스템은 1% 미만의 오차율로 사용자의 행동 패턴이 얼마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가를 판가름한다.
04 Abusing, 게임 내 불법 프로그램 사용, 버그의 악용, 승부조작 등 부정행위.
게임 시장의 성장 가속화
게임 시장은 지난 20년간 급성장해 왔다. 앞서 언급한 셀레브레티형 인기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 했던 1999년 국내 게임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0% 성장한 9,014억 원 규모를 형성했었다. 당시 세계 시장 성장율(25%) 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수출 실적도 1억 달러를 넘어서며 IT 분야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국내 게임 산업은 고속 성장을 했는데, 인기 게임의 등장, PC의 보급과 고속 인터넷의 확산, PC방의 증가 등 인프라의 성장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하여 비대면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게임 등과 같은 콘텐츠의 소비는 급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한국 게임 시장 규모는 2019년보다 9.2% 성장한 17조 93억 원으로 추산됐다. 그리고 올해 한국 게임 산업 규모는 작년보다 7.4% 커진 18조 2,683억 원으로 예측하고 있다05.
05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 2020. 12. 18.
최근에는 액션, 아케이드, 스포츠, 슈팅 등 다양한 장르에서 가상현실(VR) 기반의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실감형 게임들은 앞으로 게임 시장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 시킬 것으로 주목된다. 또한, 시장 에서는 향후 고도화된 인공지능 기술 융합형 VR 게임 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게임 산업 비즈니스 모델 다각화의 필요성
게임 산업의 성장에 따라 게임사들은 치열한 시장 경쟁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전담 연구팀을 구성하고, 인력을 대폭 확대하는등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을 추진 중이다. 국내 대표 게임사인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도 인공 지능 연구개발 조직을 별도로 두고 이러한 행보에 동참하고 있다06.
06 △엔씨소프트: 2011년부터 200명 규모의 AI 랩, 자연어 처리팀 등 2개 센터 내 5개 랩운영, △넥슨: 2017년부터 400여 명 규모의 인텔리전스 랩 운영, △넷마블: 2018년 약 100명 규모의 AI 센터(마젤란, 콜럼버스) 운영
게임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것은 게임 자체의 완성도 향상과 보다 쾌적한 게임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이와 동시에 축적된 인공지능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게임 산업으로 진출할 수있는 성장 동력 모색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머신러닝 기반의 스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인공지능 기자, 야구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지(PAIGE)’ 등을 발표한 바 있으며, 최근 KB증권 등과 합작한 인공지능 투자 증권사 출범을 추진했다. 게임사 비즈니스 모델 전환의 대표적 사례이다.
인공지능은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융합할수 있는 기술이다. 많은 산업들이 인공지능 융합을 추진하는 초기 단계에 있으며, 고 수준의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다. 게임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 인공지능의 적용·활용·고도화가 용이하다. 게임사 들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축적한 인공지능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에 융합할 수 있는 핵심 원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글로벌 IT 및 인공지능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게임 산업의 이러한 행보는 글로벌 IT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