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반도체 패키징 기판, 핸드폰 케이스, 엔진 연료 분사 노즐, 의료용 공구, 정밀 시계 등을 가공하기 위해 재료에 구멍을 뚫거나 원하는 형상으로 절단하기 위해서는 초정밀성을 요하는 마이크로 공구가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머리카락 4분의 1 정도 굵기로 구멍을 뚫거나 절삭해야 하는 정밀성을 요하기 때문에 마이크로 공구는 2010년 이전에는 만들기만 하면 알아서 잘 팔리는 블루오션에 속한 제품이었다. 대략 2010년을 기점으로 중국산 마이크로 공구가 세계시장을 휩쓸게 되면서 가격이나 공급량 면에서 중국을 제외한 마이크로 공구 제조기업들이 밀려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마이크로 공구 시장은 최근 몇 년 전까지 레드오션으로 치닫게 되었다. 여러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네오티스는 거듭된 기술혁신을 통해 2018년과 2021년 두 번이나 장영실상을 받으며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청정화한 기업이다. 거기에 더해 블루오션을 지켜낼 방파제와 같은 기술 진입장벽까지 만들어냈다. 어떻게 이와 같은 기술혁신이 가능했는지 함께 알아보자.

 

성능의 혁신적 차별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오티스(이하 네오티스)의 연구진이 개발한 절삭용 마이크로 엔드밀의 성능은 기존의 세계 최고 제품들에 비해 한 번에 작업할 수 있는 기판 수량이 2배이면서 공구의 수명이 2배에 달한다. 단순히 계산해도 작업량 2배 곱하기 수명 2배로 총 4배의 성능 차이가 난다. 어떤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소모성 공구인데 4배나 더 많은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제품이 있다면, 거기다가 가격도 착하다면 고객의 선택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경쟁제품 가격 대비 30% 나 제품 단가를 낮추는 양산기술 또한 개발에 성공하여 제품 성능과 양산기술 모두에서 경쟁사들이 넘기 힘든 기술 진입장벽까지 구축하였다. 성능에서 차별 적인 기술혁신을 이야기할 때 Value는 높이고 Cost는 낮춘 가장 이상적인 혁신을 이루어낸 것이다.


 

‘기능’과 ‘성능’이 있다. 기능(function)은 기계나 부품 등의 고유한 또는 특수한 역할이란 의미이며 성능(performance)은 어떤 것이 지닌 능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능은 구현하는 것이고 성능은 달성한다고 말한다. 쉬운 예를 들면 ‘자동차는 굴러가야 한다’는 기능을 표현하는 것이고 ‘자동차는 잘 굴러가야 한다’는 성능을 표현하는 것이다. 기능과 성능 두 가지 측면에서 각각 기술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혁신이 일어난 경우가 훨씬 더 많이 알려지게 된다. 세상에 없던 새롭고 유용한 기능이 등장하면 혁신이라 부른다. 반면에 성능은 이미 알려진 기능에 대한 능력이라 인식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변화에 혁신이란 이름을 붙여주는 것에 인색해진다. 그래서 성능이 10% 향상되었다거나 성능이 20% 개선 되었다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성능에 있어 기술혁 신이라 부르는 경우는 네오티스의 마이크로 엔드밀과 같이 몇 배 이상의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을 때만 붙여주는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라 할 수 있다.



네오티스에서 개발한 마이크로 엔드밀은 작업 수량이나 가공수명의 성능적인 면에서만 우수한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 엔드밀은 그 자체로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지만 공구이기 때문에 마이크로 엔드밀로 만들어 내는 제품의 품질 또한 우수해야 진정한 기술혁신이라 할 수 있다. 그 품질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가 가공 버(Burr)의 높이(㎛)다. 버는 절삭이나 홀을 가공할 때 재료의 표면에 생기는 돌출이라 할 수 있는데 만들고자 하는 제품이 정밀할수록 돌출 없이 표면이 깨끗하게 절삭되길 원할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라할 수 있는 수준은 마이크로 엔드밀로 가공한 후 버의 높이가 20~30㎛ 정도인데 네오티스 제품은 공인시험 결과 5.3㎛이다. 약 4~6배 차이가 난다.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초정밀을 다루는 제품에서 이 정도의 차이는 그림 2의 가공 버와 절삭면의 현미경 사진에서 보듯이 눈에 보이는 확연한 품질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에 결국 마이크로 엔드밀의 차이가 제품의 품질 차이로 바로 연결됨이 증명된다.

 

양산기술 확보로 완성된 기술 혁신

앞서 성능에 대한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양산기술 개발에도 성공하였다고 언급하였는데 네오티스 기술 혁신 사례의 핵심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네오티스의 마이크로 엔드밀은 기능적인 면에서 재료를 절삭하는 공구이다. 재료를 절삭하는 과정에서 엔드밀 역시도 마모가 일어나기 때문에 성능에 한계가 존재하는 것인데 이 한계를 무려 4배나 뛰어넘은 것이다.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기술의 본질은 사실 네오티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도 이미 알고 있고, 어느 정도 품질 수준의 제품화도 가능하다.

텅스텐으로 만들어진 엔드밀의 표면에 카본 나노 코팅막을 증착시켜 텅스텐 엔드밀 표면 경도를 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기술로써 세계 최초로 제품 개발에 성공한 것은 일본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엔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마이크로 엔드밀 표면에 나노 코팅막을 일정하게 증착시키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코팅 두께가 일정치 않거나 두껍게 코팅할 수밖에 없어 경도는 높아졌으나 가격은 비싸지고 두꺼운 코팅으로 인해 절삭력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량 생산할 경우 코팅막의 품질 편차가 심한 불량품이 양산되는 더 심각한 문제까지 발생하 였다. 매월 수백만 개씩 생산하는 제품에서는 불량이몇 퍼센트만 발생하더라도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므로 단순히 실험실적 개발 결과가 우수하다고 해서 기술혁신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네오티스도 양산까지 이어지는 개발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양산 실험이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수천 개의 실험 제품을 폐기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며 도전한 결과로 카본 나노 코팅막을 증착시킨 초고경도 마이크로 엔드밀과 마이크로 드릴의 양산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의 기술적 의미는 얇고 일정한 나노 코팅막을 대량 생산 공정에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사업적 의미는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 코팅 박막공정 비용을 약 100분의 1이라는 획기적인 수준 으로 낮춘 것이 기술 경쟁력의 핵심이다. 양산제품에서 성능은 올리고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높은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비로소 기술혁신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술혁신의 성공 요인

뚜렷한 목표 설정

2010년 이후 매출이 감소하고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이와 같은 기술혁신에 도전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성공 요인의 중심에는 뚜렷한 목표 설정이라는 핵심 요인이 있었다. 기업 에서 R&D 전략을 수립한다는 것은 미래 시점의 제품 (Product)을 목표로 설정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제품을 목표로 설정하고 나면 그 제품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모든 노하우를 기술(Technology)이라 부르게 되고 모든 노하우 중 이미 확보된 기술과 확보해야 할 기술을 구분하여 기술개발을 실행하게 된다. 이때 기술개 발의 실행 단위가 프로젝트(Project)이다. 다시 여기서 프로젝트는 해당 제품의 기능과 성능에 대한 지표를 선정하고 각 지표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마이크로 엔드밀은 절삭공구이기 때문에 무조건 단단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절삭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요구되는 엔드밀의 형상이나 마찰력, 경도, 칩 배출 능력 등이 다 달라져야 한다. 다시 말해 전자제품의 기판 가공에 사용되는 것과 항공우주 분야의 첨단소재 제품에 사용되는 엔드밀이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네오티스에서는 기술개발에 앞서 전기전자, 자동차, 항공우주, 반도체 등 크게 고객사들의 사업 분야를 구분하고 해당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제품들을 목표로 설정하는 ‘R&D 전략 수립’부터 시작한 것이다. 다음으로 각각의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 기술을 도출하고, 요소 기술의 확보를 위해 프로젝트를 실행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고객사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마이크로 엔드밀의 구체적인 성능이나 기능 목표를 제시해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가 아닌 미래시점의 요구사항은 고객사들도 알기 어렵다. 따라서 네오티스의 개발진은 서울대학교, 한양대학교와 산학 컨소시엄을 구축하고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대한 연구와 예측을 통해 프로젝트의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제품 개발을 추진하는 매우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온 것이 기술혁신 성공의 가장 핵심 요인이라 볼 수 있다.

 

요소 기술의 자체 개발

네오티스의 제품이 일본, 중국, 대만의 경쟁제품들을 기술력으로 앞선 명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또하나는 여러 가지 필요한 요소 기술들을 자체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줄인 카본 나노 코팅막 양산기술 성공이 그 한 가지 사례이고 이 외에도 고객의 잠재된 니즈를 찾아 해결한 요소 기술들이 많다.

머리카락 굵기의 엔드밀에 형상을 정밀하게 만들어 내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하루 생산량만 수 만개에 달하는 제품을 일정한 품질로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꼭 필요한 요소 기술이 측정기술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측정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명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 양산기술의 획기적인 진보도 측정기술을 자체 개발하여 보유한 덕분이라 할 수 있으며 엔드밀의 개발 단계에서 뿐만 아니라 양산 현장에서도 이 측정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기존에도 측정 기기나 측정기술은 있었지만 이를 개량하고 자체 프로그래밍하여 자사만의 측정방법을 고안해내고 요소 기술로 내재화시킨 것이다.


 

요소 기술들을 확보한 사례는 더 있다. 예를 들면 카본 나노 코팅막 공정에서 코팅 불량이 발생한 제품들은 실시간 측정검사를 통해 판별되고 이를 회수해 과거에는 폐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불량 코팅 막을 제거하는 에칭기술을 개발하여 다시 코팅 공정에 투입하므로 코팅 불량률 제로를 달성한 것이다.

구멍을 뚫는 드릴과 절삭을 하는 엔드밀 가공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형상을 개발하여 공구 교체시간을 없앨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 사례나 절삭된 재료들이 엉켜 새둥지 모양의 Bird nesting 형성을 방지하는 형상의 제품을 개발한 사례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있다.

네오티스는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해외 기술을 도입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하여 기술력을 흡수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무모하리만치 자체적으로 기술 확보를 시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남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시도만 했다면 얻을 수 없었을 곳곳의 요소 기술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것이 블루오션을 지켜주는 회사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설정형 문제 정의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것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 원래 그래왔던 현상이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계속 그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현상이라도 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혁신은 일어날 수도 또는 안 일어날 수도 있다. 네오티스는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네오티스의 기술혁신은 계속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마이크로 드릴이나 엔드밀을 만드는 원소재는 텅스텐이며 희소금속에 해당한다. 중국에 자원편중성이 높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의 핵심전략소재이다. 어쩔 수 없이 수입해야 하는 원소재라고 생각하면 비싸도 쓸 수밖에 없지만 네오티스에서는 이를 문제로 정의했다. 비싼 텅스텐을 좀 더 값싸게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원 재활용의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한국재료연구원, 충북대학교와 함께 연구 중이다.

과거 마이크로 공구 산업에 진출하면서부터 네오티스는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이제 회사의 DNA처럼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당시 마이크로 공구 산업은 생산 숙련공에 의해 품질이 좌우되었다고 한다. 실보다 가느다란 마이크로 공구를 숙련공이 확대경으로 보면서 깎아야 하기 때문에 숙련공의 확보가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네오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구의 3D 설계부터 제작까지 연계할 수 있는 자동화 장비를 자체 개발하였다. 말하자면 핵심 경쟁력의 판도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한 것과 새롭게 문제를 정의하고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여 해결해 나아가는 차이는 회사의 미래와 직결된다. 당시에 네오티스가 숙련공 확보에 급급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기술혁신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술혁신 성공이라는 기술 자산

네오티스가 개발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 가공용 마이크로 엔드밀은 2018년 15억 원 매출을 시작으로 우수한 성능과 가성비를 고객에게 인정받아 2019년에는 내수 25억 원, 수출 10억 원을 달성하였으며, 2020 년에는 코로나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내수 50억 원, 수출 20억 원으로 총 7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여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을 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레드오션으로 치닫던 마이크로 공구 시장에서 마이크로 엔드밀만으로 이뤄낸 매출 성과다.

그간의 기술혁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청정화했고 이제 푸른 바다를 건너 힘차게 항해를 시작했다. 이 항해가 더욱 기대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네오티스 연구원들과 직원들이 고객도 말하기 어려운 고객의 잠재니즈를 찾아 끊임없이 앞서간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기술혁신 성공의 경험이다. 경험은 귀중한 기술 자산이 된다. 이미 성공의 경험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하는 로드맵이 또한 준비되었기에 푸른 바다를 건너는 멋진 항해가 펼쳐질 것으로 확신한다.



 


글/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