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과학

보통의 과학

지구를 살리는 착한 소재, 
친환경 플라스틱

 


코로나19로 배달산업이 성장하면서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도 급증했다. 2020년 이후 폐기물 단가가 떨어지면서 ‘쓰레기 대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KBS


 

어제의 히어로가 오늘의 빌런

배달 산업은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상품과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내용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소재 포장재가 필요하다. 플라스틱은 가장 이상적인 소재다. 젖지 않고, 내구성도 적당하고, 산과 염기에도 강해서 음식물처럼 변질되기 쉬운 상품을 포장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무엇보다도 플라스틱은 잘 썩지 않는다.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수백 년이 지나도록 원형 그대로 유지된다.

이처럼 장점이 많은 플라스틱이지만 그 장점 때문에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플라스틱은 썩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가급적 재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재활용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조사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83억 톤 중 78%인 63억 톤이 폐기물로 발생했지만 단 9%만 재활용됐다. 버려진 플라스틱의 79%는 매립되거나 투기됐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강과 바다를 떠돌면서 해양생태계에 치명적인 위협을 준다. 바다를 떠도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한 해양생물들이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을 삼킨 바다생물은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굶어 죽고 만다.

부피가 큰 플라스틱 쓰레기도 문제지만 최근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미세플라스틱이다. 미세먼지처럼 미세플라스틱 역시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해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은 대체로 5mm 이하의 작은 플라스틱을 말한다. 미세플라스틱이 주목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플라스틱이 물속의 유기오염물질을 표면에 흡착하므로, 미세플라스틱이 유기오염물질과 결합한 채 체내에 들어가면 다양한 중독 현상을 일으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미세한 입자 자체가 생물 조직에 물리적인 손상을 일으켜 내장벽에 염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미세플라스틱이 환경에 얼마나 존재할지,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에야 연구가 시작돼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전 세계 강과 바다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기된 플라스틱 대부분이 분해되지 않은 채 미세플라스틱으로 잘게 쪼개지니 연간 수억 톤의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된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추산으로 전 세계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플라스틱의 중량이 모든 바다생물 중량의 20% 정도라고 하는데, 2050년이면 1:1의 비율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서는 미세플라스틱의 실제 독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그 엄청난 양 때문에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새로운 대안 친환경 플라스틱

아마 커피전문점에서 종이빨대를 받아들고 당황한 경험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최근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이나 비닐봉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탓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조치에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사실 뜬금없는 정책은 아니다. 해양 플라스틱 오염과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이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한국의 정책은 오히려 세계적인 움직임에 비해 늦은 감이 있다.

이미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파키스탄, UAE 등의 국가들은 식품 포장재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할 것을 법령으로 정했다. 유럽연합(EU)는 일반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 10가지를 2021년부터 사용 금지한다. 여기에는 빨대, 면봉, 물티슈, 봉투, 그릇 등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던 제품이 다수 포함된다. EU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25년까지 각 회원국이 전체 유통되는 플라스틱 음료수병 중 90% 이상을 수거하기로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캐나다 역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으로 과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플라스틱이 환경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준다고는 하지만 화학변화와 물에 강하고 썩지 않는다는 장점은 대체하기가 어렵다. 이에 기존 플라스틱의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상태에서 쉽게 분해되는 소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른바 ‘친환경 플라스틱’이다.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에서는 플라스틱 빨대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스타벅스가 종이빨대를 사용하기로 발표한 데 이어, 종이나 다른 친환경 소재로 만든 빨대 사용이 늘어났다. © 스타벅스코리아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기존의 플라스틱 제조 공정을 변형하여 생물이 분해할 수 있는 생분해 플라스틱이다. 폐기했을 때 일정한 조건만 조성되면 미생물의 작용으로 물, 이산화탄소, 메탄 등으로 분해된다. 일반적으로 6개월 이내 90% 이상이 분해될 때 생분해 플라스틱이라 부른다. 다른 하나는 사탕수수, 옥수수, 나무 등 생물에서 유래한 성분을 이용하는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이다. 바이오매스 기반 플라스틱은 일정 기간 내에 반드시 분해될 필요는 없다. 생물 유래 물질이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생물 소재에서 유래했기에 환경오염물질이 덜 발생하며 제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두 가지 소재 모두 제법 상용화된 제품이 있을 정도로 개발이 진척됐다. 식기로 종종 사용되는 옥수수 유래 소재인 PLA가 대표적인 사례다. PLA는 유기산의 일종인 젖산 여러 개가 중합해 만들어진 소재로, 옥수수나 사탕수수에서 얻은 전분으로부터 생산한다. PLA는 6개월 이내 90% 이상 생분해되어 미세플라스틱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 현재 사용되는 PLA는 일본의 가네보합섬이 1994년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PLA는 합성수지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인 폴리에스테르와 물성이 비슷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PLA가 주목받은 이후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커지고 가치사슬 전반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다양한 친환경 플라스틱이 개발되기 시작한다. PLA처럼 천연물을 사용할 경우 일반적으로 생분해가 잘 되기에 녹말을 중합한 TPS나 식물 세포벽의 주성분인 셀룰로스를 활용한 CA와 CDA 등 다양한 물질이 개발됐다. 한편 천연물 소재의 플라스틱에 부족한 물성을 보완하기 위해 석유화학 물질을 기반으로 생분해성을 높인 PBS나 PEU, PGA와 같은 소재도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현재 상용화된 친환경 플라스틱 대부분은 천연물에서 유래한 소재와 화학합성 소재를 조합하여 물성과 생분해성을 조화시킨다.

 

생물로부터 답을 찾아라

최근에는 새로운 방향성도 나타났다. 천연물이나 생물이 만든 소재를 재료로 삼아 고분자물질을 만들기보다 생물 유래 물질을 간단한 처리만 거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종이, 펄프, 해조류, 버섯류 등 촘촘한 섬유 구조를 형성해 특정 방향의 내성이 강한 소재면 거의 모두 친환경 플라스틱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종이나 펄프는 주성분인 셀룰로스를 재활용할 수 있어서 이를 이용한 플라스틱이 주목받는다. 쉽게 말해 종이를 열과 습기, 화학물질에 강하도록 처리하면 재활용이 용이하고 쉽게 분해되는 종이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플라스틱처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종이에 수용성 생분해 코팅을 입혀서 물성을 강화하는 한편 재활용시 코팅과 종이를 쉽게 분리할 수 있는 제품이 주로 개발되고 있다.

키틴 역시 각광받는 소재다. 갑각류를 비롯한 절지동물의 외골격과 버섯류의 균사를 이루는 키틴은 셀룰로스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생물 소재다. 매년 약 100억~1000억 톤 정도가 생성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인류가 매년 생산하는 플라스틱이 3억 톤 정도니 충분한 물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먹을 수 없어서 버려야 하는 게나 새우 껍질을 활용한다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셀룰로스와 키틴 모두 탄수화물 기반으로, 각종 섬유나 음식물로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활용해 온 친숙한 물질이다. 이처럼 흔한 소재를 이제 와서야 플라스틱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셀룰로스와 키틴은 탄성이 좋고 기체나 액체가 잘 통과하지 못하는 데다 열에 의한 팽창률도 낮아 매우 매력적인 소재다. 문제는 셀룰로스와 키틴 특유의 ‘강력한 수소결합’이다. 수소결합 덕분에 셀룰로스와 키틴은 혹독한 환경으로부터 생물을 안전하게 보호할 만큼 우수한 물성을 획득했지만, 지나치게 결합력이 단단해 가공성이 매우 나쁘다. 그러나 최근에는 나노공학의 발달로 나노 수준의 셀룰로스와 키틴 결정질을 추출하여 활용할 수 있다.


 

미생물 역시 친환경 플라스틱의 유력한 후보다. ‘먹이’로부터 대사 산물로 플라스틱 소재를 만들어내도록 미생물의 유전자를 편집해서 생산한다. 미생물을 이용하면 식물 유래 소재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어 생산과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뿐 아니라, 생명활동의 결과물로서 생분해성이 높은 소재를 만들 수 있어 차세대 친환경 플라스틱의 강력한 후보로 손꼽힌다. 대표적인 소재가 PHA로 물이 있어도 쉽게 분해되지 않고 내열성도 높아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에서 사용하는 빨대를 PHA 소재로 만들 계획이며, 국내에서 CJ가 본격적인 생산에 앞서 시장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상업적인 수준으로 생산하려면 거대한 규모의 배양기가 필요한데 배양조건을 정확하게 맞추기 쉽지 않아서 아직은 생산단가가 높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처럼 다양한 친환경 플라스틱이 개발되고 있지만, 이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기적의 소재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분해 조건이다. 현재 생산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대부분 특정한 조건을 갖춰야 생분해가 가능하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는데, 플라스틱이 유용한 이유는 성형하기 쉬우면서도 적당한 내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분해되는’ 플라스틱과 ‘유용한’ 플라스틱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자칫하다가는 소재로서 특성도 시원찮으면서 천연물보다 분해는 잘 안 되는 애매한 소재가 나오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생분해성 소재인 PLA만 해도 용융점이 폴리에스테르보다 낮아서 옷감용 제품을 만들기에는 내열성이 약한 한편, 양모나 면과 같은 천연섬유보다는 여전히 분해속도가 느리다.

이러한 한계로 친환경 플라스틱은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개발 중인 분야다. 뒤집어 말하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에서는 친환경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인증라벨과 로고를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세계적인 장난감 기업 레고는 2015년부터 1억 5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해 지속가능한 바이오재료를 개발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진은 레고가 사탕수수 유래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 © LEGO


이미 일부 기업은 친환경 플라스틱을 제품에 활용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떼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장난감 기업, 레고조차도 자사 제품의 소재를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있다. 2018년부터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천연물 소재를 일부 활용하던 레고는 2021년부터 친환경 소재 비중을 높이고 플라스틱 포장재를 종이로 대체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생물 소재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을 ‘화이트 바이오’의 핵심 분야로 선정해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이 전세계 산업계의 일관된 흐름인 만큼, 머잖아 친환경 플라스틱도 여러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고 기존의 플라스틱을 대체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과학사를 전공하고 동아사이언스의 기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동아사이언스의 고경력 과학기자들이 의기투합해 독립한 동아에스앤씨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