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선제적 대응이 답이다
〈탄소중립 특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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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위협하는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 이해관계자들의 기후환경 주류화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기후환경 주류화와 탄소중립 실행은 다양한 산업에 새로운 기술도입을 의미하고 이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패러다임이 변할 때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선진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기후환경 주류화의 주요 요소와 선진기업들의 기후행동 참여 유형에 대해 소개한다.
돌아온 미국과 심각한 기후변화
2020년 12월, 외교부 주관의 ‘기후 행동을 위한 거버넌스 라운드테이블(Roundtable on Governance for Climate Action)’이 서울에서 열렸다. 글로벌 리더들이 모여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5주년을 기념하고, 기후 변화 대응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필자도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이전까지의 기후행동 관련 국제회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일단 참여자들의 열의에서 과거 대비 ‘온도 차’가 느껴졌다. 기후변화 대응 방안의 실행과 확산에 대한 토의에는 모두가 몰입해 의견을 제시했다. 바이든의 당선 소식이 불을 지핀 것이다.
바이든 당선 이전, 즉 트럼프 시대에는 국제 사회가 모두 미국을 우려했다. 기후변화 이슈에 미국을 끌어 들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이 돌아왔다. 중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탄소배출량(15%)을 내뿜는 미국이 다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것이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이루고,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높은 수준 이내 까지 조절하자는 전 세계적 약속이 지켜질 희망이 생긴 셈이다. 관건은 국제적인 협력을 통한 실행과 스피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의 기후변화 속도가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4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0년 지구 표면 온도가 1951~1980년과 비교해 평균 섭씨 1.02도 높았고, 2016년과 더불어 역대 가장 더운 해였다고 발표했다. 최근 7개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기간이었고, 기록은 계속 갱신될 전망이다.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량은 지난 10년(2010~2019년) 동안 매년 1.5%씩 증가했다. 증가 추세가 계속되면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 달성이 어려운 것은 물론,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3.2도 높은 수준까지 평균기온이 상승할 것으로 전문 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전 세계 국가의 경제구조와 기업의 경영전략, 개인의 생활패턴까지 신속하게 바꿔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기후환경의 주류화
인류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화석연료를 열심히 사용한 결과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고, 이는 역설적으로 삶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는 이미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전 세계 이해관계자들이 익숙함을 깨고 변화시키기 위해 나서며 기후환경 주류 화가 시작되었다. 주류화의 주요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환경목표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Conference of the parties)’에서 195개국은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기온이 2℃를 넘지 않도록 유지한다’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EU는 탄소 감축, 기후적응, 물, 폐기물, 오염 방지, 생태계 등 6가지 세부 환경목표를 설정하고 상세한 투자대상 구분 및 친환경 기준을 발표하며 국제표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산업구조가 환경목표에 부합하도록 변화하는 과정에서 주류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그림 1. 2015년 12월에 개최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② 투자자의 구체적인 친환경 요구
2020년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환경 관련 주주 제안 내용을 살펴보면, 환경 성과를 임원 보상 및 이사회 독립성과 연계하라는 요구, 환경목표 및 성과를 공개하라는 요구, 환경 관련 리스크 사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라는 요구가 주를 이루었다. 최근 환경 관련 주주 제안중 4분의 3이 기후 관련 제안이고 3분의 2가 단순 공개 요구가 아닌 구체적 행동을 요구한다는 점과 기후 관련 주주 제안 지지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어 향후 통과되는 주주 제안이 늘어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림 2. 투자자의 요구 유형
③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키는 기술가격의 하락
6월 초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년간(2010~2019년) 태양광 발전기의 가격은 82% 하락했다. 과거 100원이었던 발전기가 지금 18원인 것이다. 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을 의미하며, 새로운 모델의 등장은 지금까지 없었던 많은 친환경 사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림 3. 기술가격의 하락
④ 환경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
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의 기후 문제 주요성 인식 및 대응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을 대상으로 기업의 친환경 마케팅 전략이 주목받고 있으며, 이들이 사회 내 의사결정자로 부상하게 되면서 주류화를 더욱 촉진·확장시키고 있다.
그림 4. 2019년 9월 ‘기후파업’에 나선 아마존 직원들
탄소중립 Racing과 선진 기업의 대응전략
기후환경 주류화 속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많은 국가들이 최근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유럽은 탄소국경세(탄소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의 상품을 규제가 강한 국가로 수출 시 세금 부과) 도입을 본격으로 논의하기 시작했고, 자동차 배출 관련 규제 및 플라스틱세 신설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 취임 이후 기후위기 해결사로 국제사회에 다시 등장하려고 준비 중이다. 중국도 지난 9월 탄소중립 선언 후 올해 2월부터 발전 부문을 시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탄소배출권거래 시장을 공식적으로 열겠다고 선포했다. 전 세계 석탄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에서 탄소에 가격을 매기겠다는 움직임은 기후변화 억제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탄소중립은 국가가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구성원이 실행해야 한다. 특히,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사업을 투자·개발·건설·제조·판매·운영할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중 기업의 역할이 막중 하다. 그럼 선진 기업은 어떤 형태로 기후행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을까? 크게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포트폴리오 변경이다. 탄소배출이 많은 자산을 매도하거나 반대로 청정 자산을 매입하는 전략이다. 세계 2위 재생에너지 생산업체이자 스페인의 한국전력공사 격 기관인 ‘이베르드롤라(Iberdrola)’는 ‘2020~2025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750억 유로를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2019 년 32GW에서 2025년 60GW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를 통해 이베르드롤라의 순이익은 34억 유로에서 50억 유로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번 투자의 85%는 미국과 유럽에 집중될 계획이다. 기업을 사고파는 데 있어서 탄소배출을 고려하는 일이 흔치 않았으나, 앞으로는 기업이 가진 기술과 공장과의 시너지를 통한 탄소절감 효과가 경영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청정에너지 구입이다. 비즈니스모델 변경 없이 청정에너지를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즉, ‘RE100’에 동참하는 것이다. RE100은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기업 간의 자발적인 약속이다. 애플, 구글, 월마트 등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RE100에 참여하는 기업이 급격히 늘어, 현재 RE100 을 선언한 기업은 전 세계 300개에 육박한다. 세계적 흐름에 맞게 국내에도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대기업들이 RE100에 동참하기 시작됐다. 국내에서도 2021년부터 기업을 포함한 전기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선택적으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는 한국형 RE100(K-RE100)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셋째는 협력을 통한 시장 선점이다. 덴마크에서는 6개의 대기업이 파트너십을 맺고, 전 세계 최초로 2023년부터 대규모 그린 수소 생산시설을 단계 적으로 운영해 해상풍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계획을 밝혔다. 이로써 연간 85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감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한 기업은 해운업체 ‘머스크(AP moller-Maersk)’, 항공사 ‘스칸디나비아항공 (SAS)’, 물류업체 ‘DSV(DSB Panalpina)’, 여객선업체 ‘DFDS’, 공항인 ‘코펜하겐공항’, 재생에너지업체 ‘오스테드(Orsted)’이다. 해상풍력으로 수소를 만드는 회사, 수소를 운반하는 회사, 수소를 연료로 사용 하는 회사가 모두 포함돼 있다. 즉, 그린 수소 가치 사슬(value chain)에 전방위로 얽힌 기업들이 모인 것이다. 이들 기업이 그린 수소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저렴한 수소의 생산과 탄소절감 효과만이 전부가 아니 다. 향후 그린 수소 영역의 가격과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소의 생산부터 물류, 사용까지 가치 사슬 전역에서 노하우를 축적하면, 두 번째 그린 수소 생산시설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지을 수 있다.
넷째는 기업 경계를 넘는 탈탄소화 촉진이다. 기업 스스로뿐만 아니라 고객사나 협력사의 탄소 감축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프랑스의 한전 격인 ‘엔지(Engie)’는 고객사인 미국 유타대 캠퍼스 81개 건물 및 시설의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조명을 달고, 효율성 높은 공조시스템 설비로 교체하고, 에너지의 출입을 관리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덕분에 에너지 비용 약 2,700만 달러가 절약됐고, 2050년까지 탄소제로화를 이루겠다는 유타대의 기후행동계획에도 기여했다. 고객사와 탈탄소화를 도모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급사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것도 경계확장의 또 다른 형태이다. 월마트는 유통업의 특성상 탄소발자국의 10% 이하만이 월마트 자사에서, 나머지 90% 이상이 협력사에서 발생한다. 이런 배출 특성을 감안하여 ‘프로젝트 기가톤(Project Gigaton)’을 진행해 협력사들의 탄소절감을 돕고 있다.
마지막은 혁신적 기술의 개발이다. 빌 게이츠는 아마존 제프 베이조스, 소프트뱅크 손정의, 알리바바 마윈 등과 함께 2015년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reakthrough Energy Ventures, BEV)’를 출범했다. BEV는 2018년부터 수송, 농업, 건물, 에너지 등다양한 부문에 걸쳐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BEV가 투자한 기업 중, ‘퀴드넷에너지(Quidnet Energy)’는 에너지 저장 기술 업체다. 자연환경에 따라 간헐적으로 발전하는 재생에너지를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선, 에너지 저장 기술이 필수다. 퀴드넷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든 전기를 물의 압력으로 바꿔 땅속 셰일층에 저장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공기와 태양빛에서부터 수증기를 추출해 식음수를 얻는 ‘소스(SOURCE)’, 분자 단위로 공기의 질을 조절해 공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 ‘엔베리드 시스템즈(enVerid Systems)’ 등도 BEV 포트폴리오에 속해 있다.
우리 기업에의 시사점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로 인해 선진국 보다 기후환경 주류화 활용이나 탄소중립 실행이 녹록지 않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 및관련 서비스의 GDP 비중은 65%이다. 그리고 철강· 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제조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조선·반도체 세계 1위, 석유화학 세계 4위, 자동차·철강 세계 6위라는 영광 뒤에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및 에너지믹스라는 함정이 숨어있다. 하지만 기후환경 주류화 및 탄소중립 실행은 다양한 업종에 새로운 기술 도입을 의미하고 이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내는데, 이와 같이 패러다임이 변할 때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선진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국내 기업들이 풍력 발전 설비 세계 1위 덴마크 기업인 ‘베스타스(Vestas)’나 전기차 분야 시가총액 세계 1위인 테슬라를 단기간 내에 따라잡을 순 없다. 그러나 그간 닦아 온 제조업 분야의 강점을 살리고, 그룹사 내의 시너지를 도모하면 국내 기업들 역시 녹색 전환에 성공하고, 나아가 기후 변화를 계기로 태동되는 신사업 분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친환경 사업에 필요한 재료와 부품 들을 최상급으로 갖추고 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두말할 것도 없고, 발전 설비에 필요한 어마 어마한 양의 철강 역시 이미 글로벌 톱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광 발전 설비에 필요한 반도체 소재,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배달 하기 위해 필요한 케이블과 전력변환장치, 막대한 해상풍력 발전소 투자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해양 플랜트 건설 기술 등도 전 세계에서 우리 기업들이 앞서나가고 있다. 또한 그룹사 중심의 국내 대기업에서는 하나의 그룹사 안에 친환경 사업을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한 명의 리더 아래 에너지, 운송, IT 등 관련 사업이 조성돼 있어 더욱 신속하게 의사 결정과 실행을할 수 있다.
기후환경 주류화 및 탄소중립이라는 불편한 숙제가 국제사회에 던져지지 않았다면, 7대 메이저 석유회사가 주도해 온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상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이 상상을 실현할 기회가 온 것이다.
글/김성우 연구소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
한국인 최초로 세계은행 미래사회 외부자문위원 및 KPMG의 지속가능성 부문 아시아 태평양 대표를 지낸 글로벌 전문가로 미국 듀크대에서 환경공학 석사를, aSSIST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포스코에서 환경에너지 투자를 담당했고, 녹색기후 기금 송도 유치와 에너지 신사업 발굴 공로로 산업포장 및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서울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이도 사외이사와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 연구소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