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과학

고기, 이제는
공장에서 키운다?

 

네덜란드의 TV 프로그램, 햄버거 패티를 조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기에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쇠고기 패티다. 그러나 이 패티는 자그마치 25만 유로(3억 3천만 원)짜리다. 이 패티의 재료는 소가 아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의 마르크 포스트 교수가 개발한 배양육이었다.

 


그림 1. 2013년 포스트 교수가 선보인 배양육 패티 © Mosameat



포스트 교수가 배양육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후,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이 배양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포스트 교수가 설립한 모사미트, 미국의 멤피스미트와 잇저스트, 뉴에이지미트가 경쟁하며 차례차례 배양육을 개발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로 잇저스트의 배양육 닭고기 시판을 허가했다. 시판 허가를 기념해 개최한 시식회에서 잇저스트가 내놓은 닭고기 메뉴는 23달러(2만 4000원). 불과 7년 사이에 배양육이 가격을 만 배 이상 낮추며 현실성 있는 ‘상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땅과 물과 환경을 아끼는 새로운 축산업, 배양육

가장 먼저 배양육을 허가한 나라가 유럽 국가나 미국이 아닌 싱가포르인데는 이유가 있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다. 좁은 영토에 건물이 빼곡이 들어차다 보니 농사에 필수적인 ‘땅’이 부족하다. 자연히 식료품의 90%를 수입에 의존한다. 그러나 만약 드넓은 방목지가 아니라 공장 건물에서 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 싱가포르처럼 제한된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곳에서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그림 2. 미국의 기업, 잇저스트가 만든 닭고기. 실제 고기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 Eat Just


이스라엘도 사정이 비슷하다. 포도를 수출하기까지 할 정도로 농업 규모가 제법 되는 이스라엘이지만 이스라엘의 농지 대부분은 유지비가 비싼 관개시설에 의존한다. 물을 인위적으로 계속 공급해서 황무지를 농경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식물보다 물이 훨씬 많이 필요한 육류를 생산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림 3. 이스라엘의 패스트푸드 체인, ‘더치킨’에서 판매중인 배양육 치킨 버거. 이스라엘은 배양육 산업에 적극적이다. © The Chicken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도 배양육 연구 개발이 활발하다. 슈퍼미트, 퓨처미트테크놀로지스 등 여러 스타트업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배양육을 연구하고 있다. 알레프팜스가 2018년 12월 세계 최초로 배양육 스테이크를 발표한 데 이어 슈퍼미트는 배양육 치킨을 개발중이다.

물론 땅이 좁고 물이 부족한 곳에서만 배양육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과 동물의 권리에 민감한 유럽에서도 배양육에 주목하고 있다. 배양육은 살아있는 가축을 도축할 필요가 없어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축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한다.


그림 4. 유럽은 ‘미트포올’ 프로젝트를 통해 배양육을 개발하고 있다. 2022년까지 시장에 내놓는 것이 목표다. © Ethica Meat



농업이 중요한 산업인 유럽에서도 사료작물 재배를 줄여 농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삼림을 보호할 목적으로 배양육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2020년 10월에는 유럽의회가 사상 최초로 배양육 연구에 270만 유로를 지원하기도 했다. 지원받는 곳은 스페인 기업 바이오테크푸즈가 주축이 된 미트포올 배양육 개발 프로젝트로, 2022년 7월까지 배양육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그림 5. 싱가포르의 배양육 기업 시오크미트가 2019년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새우만두 시식회. 배양육으로 만든 새우고기를 선보였다. © Shiok Meat


같은 이유로 바다생물을 배양육으로 생산하는 데도 관심이 쏠린다. 새우는 전 세계 거래량이 가장 많은 수산물 중 하나다. 2019년 기준 48조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됐는데, 그 중 30조 원은 아시아가 차지한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 습지에서 대규모로 양식한 새우들이다. 국제삼림연구센터에 따르면 이렇게 기른 양식새우는 1kg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쇠고기의 4배에 달한다고 한다. 분자생물학자가 창업한 싱가포르의 기업, 시오크미트는 새우를 배양육으로 대체해 환경에 기여하고 깨끗한 새우를 공급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시오크미트는 배양육 새우 개발에 성공해 2019년 싱가포르에서 시식회를 개최한 바 있다. 시오크미트에 따르면 새우 배양육은 양식 새우에 비해 4배나 더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줄기세포 기술로 근육을 ‘재배’한다

짧은 시간에 배양육 기술이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배양육 기술 자체는 이미 1999년 특허로 등록된 바 있다. 빌렘 반 알렌 암스테르담대학 교수가 도축 없이 고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배양육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고 국제특허를 취득했다. 포스트 교수 연구팀이 선보인 쇠고기 패티가 바로 반 알렌 교수의 이론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그림 6. 발 알렌 교수는 2차대전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적이 있다. 포로 생활의 경험에서 전쟁의 잔인성에 환멸을 느낀 그는 생명을 희생을 최소화한다는 신념에 따라 배양육 기술을 개발했다. © NewHarvest


포스트 교수의 패티가 억대를 호가한 이유는 배양육을 만드는 데 무척이나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배양육의 기본 아이디어는 ‘근세포를 배양액에서 증식시키면 고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근세포를 만드는 근육줄기세포는 분화가 끝난 상태라 활발하게 증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육줄기세포가 근세포를 필요한 만큼 만들어내게 하려면 근육줄기세포가 분열하도록 촉진하는 성장인자가 필요하다.


그림 7. 배양육을 만드는 공정. 동물에서 근육을 추출하고 조직 줄기세포를 분리해낸다. 이들이 근세포로 증식하도록 배양하면 배양육이 만들어진다. © Maastricht Univ.


그래서 배양육을 만들 때는 동물의 피부에서 떼어낸 근육 줄기세포를 성장촉진인자가 포함된 배양액에 담가서 성장시킨다. 이렇게 성장한 근세포는 끝없이 증식하지는 않기 때문에 일정한 크기에서 성장이 멈춘다. 따라서 근육줄기세포에서 분열된 세포 중 일부는 다시 새로운 배양액에서 분열하도록 유도하는 ‘계대배양’을 해야 한다. 근육줄기세포 하나를 배양해서 만들 수 있는 근세포의 무게가 10억분의 3~4g 정도 되므로 100g의 배양육을 만들려면 100억 개 가량의 근세포가 필요하다. 자연히 배양육을 만들려면 배양액과 시간이 많이 든다. 2013년 포스트 교수 연구팀은 2만여 개의 근세포 조각을 층층이 쌓아서 소고기 패티를 만들었다. 3억 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지금은 훨씬 효율적으로 만든다. 근세포를 하나하나 조합하지 않고 뼈대 역할을 하는 ‘스캐폴드’에 근세포를 배양시켜서 근세포가 성장하면서 근육 형태를 이루도록 유도한다. 스캐폴드는 최종 생산물인 고기에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해조류 추출물 등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한다.


그림 8. 영국 하이어스테이크가 개발한 베이컨의 시제품. 이처럼 고기와 유사한 형태를 얻으려면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야 한다. © Higher Steaks



이렇게 만들어진 근세포는 지방이나 다당류가 없는 순수한 단백질 덩어리에 가까우므로 시장에 그대로 내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아직 배양육으로는 ‘육질’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렵다. 잇저스트가 싱가포르에서 시판하는 제품을 치킨 너겟으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겟은 어차피 잡육을 분쇄해서 다시 뭉친 식품이라 배양육과 식물성 단백질을 혼합하면 어렵지 않게 모방할 수 있다.


그림 9. 이스라엘의 배양육 기업 리디파인미트가 선보인 가공 공정 © Redefine Meat



물론 고기를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방법은 있다. 이스라엘의 미트테크는 3D 프린터 기술을 이용한다. 실제 고기를 이루는 성분인 근단백질, 중성지방, 다당류 등을 잉크 삼아 3D 프린터로 고기를 ‘성형’해내는 것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지방과 단백질이 적절하게 섞여 마블링된 고기를 제법 진짜처럼 재현할 수 있다. 식물 기반의 단백질과 지방, 전분을 배양육에 섞어 삼겹살이나 베이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중화까지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

이처럼 배양육 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지만 여전히 발목을 잡는 문제는 있다. 바로 배양액이다. 현재 배양액으로는 소 태아에서 추출한 혈청(FBS, fetal bovine serum)을 사용한다. 태아의 혈청에는 성장촉진인자가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의 태아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고 비싸다는 것이다. 배양육 생산비의 대략 80% 정도가 소태아혈정 비용이라고 한다. 게다가 소태아혈청을 생산에 사용하는 한,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배양육의 장점이 유명무실해진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소태아혈청을 대신할 수 있는 소재를 찾고 있다. 배양육 기업들이 시장 진출을 준비하면서 대체혈청을 속속 개발하고는 있지만 충분히 생산성을 갖추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생산시간도 문제다. 근세포 배양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잇저스트가 선보인 배양육 치킨너겟은 한 조각을 만드는 데 2주가 걸린다. 이스라엘의 알레프팜스는 2~3주의 시간을 들여 한 덩어리의 스테이크를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어찌 보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말 큰 난관은 소비자의 경계심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똑같은 모노글루타민산 나트륨이라고 하더라도 멸치나 버섯 분말에 있는 것은 건강식으로 여기면서도 공장에서 추출한 것은 몸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분명하게 성분이 규명되지 않았더라도 ‘천연’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너그럽게 받아들이지만 안전한 성분임이 분명하더라도 ‘식품첨가물’에는 깐깐하다.

농산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공정을 세세한 부분까지 잘 알지만, 갓 발명되어 공장에서 나온 제품은 제조과정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익숙함’이다. 잇저스트를 비롯한 배양육 분야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선다는 전략이다.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시판되는 배양육이 일반 마트가 아니라 특정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이유도 아직은 일반 소비자에게 배양육이 익숙하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충분히 비용을 지불하고 배양육을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들만 찾아와서 먹어보라는 의미다. 사실상 수익을 바라고 판매하는 제품보다는 전시관에서 체험하는 시제품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도적, 행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시장의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검사 및 인증 절차다. 세계 최초로 배양육을 허가한 싱가포르 식품청은 허가 전에 안전성 지침을 마련했다. 어느 세포를 배양했는지, 스캐폴드와 배양액, 영양분의 재료는 무엇인지, 유전자 문제는 없는지, 섭취했을 때 소화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세세하게 평가한다. 미국은 2019년 3월 미 식품의약국(FDA)이 세포 성장을 비롯한 배양육 공정 초기 단계를 규제하고, 세포를 가공해서 시판에 이르는 과정은 미 농무부 산하 식품안전검사국(The Food Safety and Inspection Service)이 관리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배양육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배양육은 기존의 고기와 똑같은 식품을 더 저렴하고 환경친화적으로 만드는 데 목표가 있으므로 성장성이 크다. 영국 금융 서비스 업체인 바클레이즈에 따르면 식물육, 배양육을 포함한 대체육 시장이 향후 10년 안에 식육 시장의 10%인 연간 1,4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배양육은 물론, 대체육 전반에서 뒤처진 한국으로서는 서둘러 준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과학사를 전공하고 동아사이언스의 기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동아사이언스의 고경력 과학기자들이 의기투합해 독립한 동아에스앤씨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