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R&D

뉴노멀 시대의
글로벌 R&D 전략
팬덤을 창조하라!

 


 


지난 글에서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콘텐츠 산업을 참고해서 글로벌 R&D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는데(기술과혁신 9/10월호 ‘글로벌R&D’ 참조), 불과 6개월 사이에 이런 현상은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시장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에 기반한 디지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강제로 문명 전환을 하고 있는 인류는 생활공간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의 모든 룰까지 바꿔가고 있다. 이른바 소비자 권력 시대, 팬덤 경제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2021년을 준비하는 기업들의 글로벌 R&D 전략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 법칙에 따라 준비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그 전략을 살펴보자.

팬덤 경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인류 소비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팬덤 경제의 상징이라고 언급했던 BTS는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연예인(entertainer)으로 선정되었으며, Dynamite, Savage, Life goes on 3개의 신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비틀즈가 세운 대기록들을 위협하는 중이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무사히 증시에 진입하며 시가총액 6조 4천억 원을 돌파, 엔터 분야 최대 기업이 되었다. 스타트업 벤처 스마트스터디에서 만든 ‘baby shark’는 드디어 74억 뷰를 돌파하며 유튜브 조회 수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실제로 2019년 핑크퐁 채널 영상의 총 조회 수는 BTS 공식 채널의 두배를 기록했다. 작은 상어 한 마리로 2,500개의 제품과 로열티 계약을 맺었으며 기업가치도 8천억 원을 넘겨 또 하나의 유니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콘텐츠 산업은 팬덤의 크기가 기업의 크기라는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이끄는 7대 플랫폼(애플, 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의 시총 합계는 2020년 1월 1일 기준 6,880조 원이었으나 이제는 1경 원에 육박하고 있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 시장의 주인은 포노 사피엔스들을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이라는 것을 투자 자본은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세계 8위 기업은 테슬라로 시총 660조 원을 넘으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 중이다. 테슬라도 천재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독특한 경영과 R&D 전략을 추진하며 포노 사피엔스 세대로부터 엄청난 팬덤을 창조한 기업이다. 시장경제에서 팬덤의 위력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을 거의 모든 기업들이 증명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성공적인 R&D 전략의 수립을 위해서는 ‘소비자 팬덤’의 창조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자 팬덤 경제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애플은 이미 오래전에 강력한 팬덤을 만들 수있었던 성공 비결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아이패드 2 발표회를 하면서 그 유명한 프레젠테이션을 남겼다.

“우리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술과 인문학을 결혼시키고, 기술과 휴머니티를 결혼시켜 애플의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노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성공의 비결이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모든 R&D의 중심에 ‘사람’을 세웠다. 소비자의 감동을 만들 수 있는 ‘경험’을 창조하기 위해 애플의 엔지니어, 디자이너, 개발자들은 모두 협력하고 서로 양보하며 최상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스티브 잡스가 이들이 서로 자주 만나게 하려고 건물의 한가운데 화장실을 설치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가슴이 뛰게 하는 좋은 경험만이 팬덤을 만든다. 팬덤 경제가 지배하는 애프터 코로나 시대에 성공하려면 ‘좋은 경험 창조’가 R&D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좋은 경험의 기준은 데이터, 좋은 경험의 창조는 융합

디지털 플랫폼에서 생활하는 인류는 거의 모든 일상을 데이터로 남긴다. 그래서 데이터를 분석하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고객의 좋은 경험을 창조하려면 끊임없이 데이터를 확인하고 이를 기준으로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인간은 매우 미묘한 존재다. 그래서 좋은 경험을 만들려면 심리적 요소, 디자인적 요소, 기능적 요소 등이 모두 세심하게 융합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의 R&D 전략은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지평생막걸리를 크게 히트시킨 지평주조는 2010년 폐업 위기에 몰렸다. 이때 27세였던 김기환 대표는 젊은층 공략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고 가장 먼저 고객 테이스팅을 거쳐 85년간 지켜왔던 막걸리의 맛을 바꿨다. 6도의 시큼한 맛이던 막걸리를 5도의 달달한 맛으로 바꾸고 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정밀 온도조절 장치를 도입했다. 거기에 SNS 마케팅을 확대해 10년 만에 2억 원의 매출을 20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막걸리의 맛, 용기 디자인, 고객과 만나는 소통의 채널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우리나라 중소 제조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의 R&D 전략은 결코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기술, 디자인, SNS 마케팅을 잘 융합해서 소비자 중심의 성공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AHC(3조 4천억 원), 무신사(2조 2천억 원), 닥터자르트(2조 원), JM솔루션(1조 5천억 원) 등 유니콘으로 성장한 패션 및 뷰티 분야 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전략을 통해 국내 및 아시아 시장에서 강력한 팬덤을 창조한 기업들이다.

 

스펙 일변도 R&D에서 벗어나 팬덤 창조의 R&D 시대를 열자

우리나라 제조 산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야는 ‘스펙’을 정해 놓고 개발하는 분야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산업이다. 특히 메모리 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의 R&D 전략은 매우 명확하다. 달성해야 할 스펙을 정해놓고 모든 창의적인 수단을 동원해 이를 달성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정부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R&D 전략도 유사하다. 우리나라 주력산업들은 그동안 세계 선진국의 산업을 맹추격하며 성장해 왔다. 그래서 목표하는 스펙을 정해놓고 그것을 완성하는 방식에 적합하도록 조직을 구성하고 R&D와 양산을 병행하며 사업을 추진해 왔다. 대부분의 전문 인력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양성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영역에서 추격 대상이던 일본의 기업들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이들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중공업, 화학, 에너지 등 이들은 하나 같이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스펙을 기준으로 하는 개발 경쟁도 그래서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스펙 중심의 기준을 모든 산업에 동일하게 적용해서는 결코 뉴노멀 시대의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팬덤 경제로 전환하는 글로벌 시장의 변화를 데이터로 확인하면서 새로운 R&D 전략의 지표를 수립해야 한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모빌리티 서비스, 자율주행, 로봇산업 등 매우 다양한 산업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개념이 달라지는 시대인 만큼 많은 자동차 회사들도 유사한 전략적 동맹과 투자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자동차 전장 부품의 생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자율주행, 커넥티드 서비스, 모빌리티 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등 자동차에 들어가는 옵션들이 대부분 첨단 IT 기능들을 포함하는 만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주력인 삼성전자로서는 매력적인 시장임에 틀림없다. 업계에서는 전에 없던 양사 간의 밀접한 협력도 예상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등극한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해도 과도한 표현이 아니다. 운전의 경험에 해당되는 부분은 모두 자기역량으로 개발하고 많은 기본 부품들은 제조능력이 뛰어난 회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 받는다. 이것은 제조 측면에서는 보다 단순한 제품인 애플의 아이폰 개발 전략과 유사하다. 최근 애플은 맥북에어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자체 설계한 프로세서를 장착해 놀라운 혁신을 만들어냈다. 물론 칩을 스스로 생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고객의 경험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한 핵심 기술에는 엄청난 R&D 리소스의 투입을 아끼지 않는다. 프로세서 설계 인력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데 결코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들 기업들은 빅데이터, AI, 소프트웨어, 스마트 팩토리 등 최근 각광받고 있는 모든 신기술을 고객 팬덤의 창조에 포커싱하고 있다. 우리 제조기업들이 한정된 재원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함에 있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 이들 기업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팬덤을 기준으로 새로운 R&D 전략의 지표를 만들자

팬덤 경제에서 기술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는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며 창업한 많은 기업들이 안타깝게도 시장에서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이다. 로봇과 3D 프린터로 신발을 자동으로 생산하는 이 시스템은 신발 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꿀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물론 많은 기술발전을 이뤄내기는 했지만 언제나 실패는 뼈아프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실패의 원인은 명확하다. 생산되는 신발이 소비자의 감동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묘한 감성과 변덕을 이 시스템은 소화해낼 수 없었다. 세계적인 제조 강국인 일본과 독일은 지나치게 기술에 집착하면서 산업에 활력을 잃었고 디지털 문명시대의 패권을 미국과 중국에 내어 주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은 여전히 소중하고 또 중요 하다. 그러나 그 중심에 소비자가 굳게 자리 잡아야 한다.

영국의 모노클이라는 잡지에서는 국가의 매력도를 기준으로 매년 소프트파워 랭킹을 계산하는데, 2019년 15위에 그쳤던 우리나라가 놀랍게도 2020년 2위에 올랐다. 뉴노멀 시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팬덤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문화에 대한 팬덤은 제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020년 라면 수출은 37%가 증가했고 비비고 만두는 무려 1조 1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이 열풍은 뷰티, 패션, 전자, 자동차 산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 중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R&D 전략, 특히 소비재를 만드는 중소 제조기업들의 전환은 지속적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국가 R&D 전략의 디지털 대전환을 기대해본다.



글/최재붕 교수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 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 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을 겸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융합을 기반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포노사피엔스 코드 CHANGE 9〉,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