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과학

제약업계의 뜨거운 감자, 암 치료

- 기존 항암치료의 단점을 극복하는 3세대 치료제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한때 인기를 끌던 모 드라마의 대사 중 하나다.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대사지만, 재미있게도 생물학적으로는 묘하게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암세포도 생명이니 암 치료가 비윤리적이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암세포가 다른 병원체와 달리 인체의 세포 중 하나이면서도 마치 별개의 생명인 양 행동한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암세포의 이러한 특성 탓에 암 치료는 오랜 세월 동안 의학이 넘어야 할 산이자 과제였다.

 

‘우리 중 하나’였던 변절자, 암세포

암 치료법을 이해하려면 우선 위험한 세포로부터 몸을 지키는 면역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 몸 조직 곳곳에 있는 대식세포와 수지상세포는 침입자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세포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경비’ 역할을 한다. 이들은 ‘비상경보’에 해당하는 사이토카인을 분비해서 동료 면역세포들을 침입자 근처로 불러들이는 한편, 동료들에게 침입자에 대한 ‘신상 정보’인 침입자에게만 있는 분자 정보를 전달한다. 면역세포 중 림프구는 경비 역할을 하는 세포들로부터 전달받은 분자를 통해 침입자가 몸속에 있어도 되는지, 아니면 빨리 퇴치해야 하는지 확인한다. 보통 세포막에 있는 MHC-Class 1이라는 분자가 공격 대상을 분간하는 ‘신분증’ 역할을 하는데, 이 분자가 몸에 원래 있던 것과 다르거나 다른 분자에 섞여 변형됐으면 자기 자신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서 공격하는 식이다. 여기까지가 생명체가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분하지 않고 일단 침입자로 의심되면 대응하는 선천면역, 또는 비특이적 면역 단계다.

다음 단계는 신원이 확인된 침입자에게 맞춤으로 대항하는 전담대응팀이 나설 차례다. 사이토카인에 이끌려 온 림프구 중 ‘정보팀’에 해당하는 보조T세포는 대식세포와 수지상세포로부터 넘겨받은 분자 조각, 즉 항원의 정보를 확인해 지금까지 알려진 침입자의 정보, ‘수배 전단’과 대조한 후, 침입자의 항원에만 정확하게 반응하는 ‘군수공장’인 B세포를 활성화시킨다. 활성화된 B세포는 빠르게 복제되어 침입자 분자에게만 반응하는 ‘무기’인 항체를 대량으로 생산해 T세포를 비롯한 다른 ‘전투조’ 면역세포들이 침입자를 손쉽게 격퇴할 수 있도록 표시하고 무력화한다.


그림 1. 암세포(가운데의 동그란 세포)를 공격하는 세포독성 T 세포(암세포를 둘러싼 세 개의 세포) 형광현미경 사진. T세포 내부의 분홍색 부분은 암세포와 결합하는 부위로, 이를 통해 암세포만 정확하게 인지한다. 붉은 색 부분은 세포독성 물질이며, 암세포에 결합한 T세포는 암세포에 독성물질을 주입해 사멸시킨다. © NIH

 

만약 우리 몸의 체세포에 병원체가 숨어들어서 감염시킨 상태, 즉 침입자가 멀쩡해 보이는 방에 자리잡고 숨어 있는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는 세포독성 T세포가 작용한다. 감염된 세포 속 병원체는 적당할 때 체세포를 찢고 나와 주변 세포를 감염시킨다. 체세포에 침입자의 흔적이 있을 경우 여기에 항체가 반응하여 ‘위험한 방’임이 표시되며, 세포독성 T세포가 마치 방을 폭탄으로 날려버리듯 감염된 체세포 자체를 제거해서 병원체 확산을 미연에 방지한다.

면역계는 이처럼 자신이 아닌 것을 분명하게 인지해 제거함으로써 우리 몸을 안전하게 유지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자기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암세포는 유전자 이상으로 무한히 증식할 뿐, 원래부터 몸에 있던 세포였다. 당연히 세포의 ‘신분증’ 역할을 하는 분자만으로는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과거에는 암에 대해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면역계에 대한 이해가 발전하면서 면역계가 암을 공격하는 메커니즘도 있음이 드러났다. 암세포에 특이하게 나타나는 분자를 인지해 이를 공격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조금 더 과격한 방법으로, 신분증이 없거나 뭔가 수상해 보이는 경우 의심만으로도 바로 대상을 제거해버리는 방법도 있다. 여기에는 침입자로 의심되면 일단 공격하고 보는 비특이적 면역체계의 일원인 자연살해(NK)세포가 활약한다. 현대의 암 치료에는 면역계의 이러한 메커니즘들이 전반적으로 고르게 활용된다.

 

면역을 믿을 수 없던 1세대 치료법, 면역을 이용한 2세대 치료법

면역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과거에는 외과적 수술이나 방사선으로 암세포가 있는 부위만 직접 제거하거나, 빠르게 증식하는 암세포의 특성을 이용해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만 골라서 공격하는 화학요법으로 치료했다. 이러한 방법은 암세포 주변의 정상적인 세포나 장내 상피, 모근 등 증식이 활발한 정상 세포도 함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 부작용이 심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림 2. ‘항암치료’에 흔히 떠올리는 모습. 머리가 빠지고 수척해지는 증상은 1세대 항암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를 보완하고자 개발된 방법이 2세대 항암치료법인 ‘표적항암제’다. 표적항암제는 특이적 면역체계의 메커니즘을 활용해 암세포만 정확하게 공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만약 정상 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물질이 있다면 이를 항원으로 삼아 항체를 붙인 약물이 암세포만 구분해 작용하게 할 수 있다. B세포의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그림 3. 표적항암제인 리툭시맙의 작용 메커니즘. 약물이 암세표 표면의 CD20에 대한 항체로 작용하여 NK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리툭시맙은 로슈에서 개발한 맘테라/리툭산의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이다. © 셀트리온
 

이처럼 특정한 세포에만 존재해 세포의 ‘꼬리표’ 역할을 하는 물질을 ‘바이오마커’라고 한다. 암세포는 빠르게 증식하기 위해 정상 세포와는 다른 물질대사를 보인다. 대사 결과 특정 물질을 유독 많이 만들어내기도 하고, 특정 효소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기도 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례가 인간표피 성장인자 수용체2(HER-2)로, 암세포 표면에 유독 많아 유방암과 위암의 암세포만을 인지하는 데 활용된다. 이에 대한 항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약물이나 NK세포가 작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암세포를 공격한다.


그림 4. 표적항암제인 허셉틴의 작용 메커니즘. 약물이 암세포의 성장신호를 차단하여 증식하지 못하게 한다. © 한국로슈


후자에 속하는 사례는 세포성장 신호전달 단백질인 BRAF다. 암세포에서는 빠르게 증식하느라 BRAF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세포 내 농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이 역시 정상세포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이므로 암세포의 표식으로 삼을 수 있다. BRAF를 표적으로 한 치료법은 흑색종 치료에 널리 활용된다. 암세포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염색체 이상도 있다. 암세포에만 나타나는 유전자의 특성으로 인해 BCR-ABL과 같은 융합단백질이 생성되기도 하는데, 이처럼 특수한 유전자의 형질을 표적 삼아 암세포를 공격하는 약물을 만들기도 한다. 백혈병 치료제로 잘 알려진 글리벡이 바로 이러한 사례다.

 

암세포의 기만전술과 3세대 치료제

2세대 표적항암제로 암 치료에 큰 성과를 올렸지만 문제가 있었다. 암세포가 항암제에 ‘적응’한 것이다. 암세포는 끊임없이 증식하므로 변이도 빠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몸속에 있는 암세포라도 조금씩 유전형질이 다를 수 있는데, 이 중 표적물질을 덜 생산하도록 변이한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 항암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면 이러한 변이를 일으킨 암세포만 살아남아 증식하며, 충분히 시간이 지나면 몸속의 암세포 대부분이 표적항암제에 반응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항암제에 대한 ‘2차 내성’으로, 암세포에서 BCR-ABL1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나 글리벡 내성이 생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방법이 바로 3세대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는 말 그대로 인체의 면역체계를 그대로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둔다. 표적항암제처럼 표적물질을 새로 만들어 사용하지 않고, 몸의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도록 약물로 돕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비정상세포를 수시로 제거하는 세포독성 T세포를 이용한다.

면역항암제 연구는 ‘T세포 수용체(TCR)’가 발견되면서 빠르게 발전했다. TCR은 T세포가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할 수 있도록 암세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단백질로, T세포의 세포막에 있다. 사람의 TCR은 2.5×107가지가 넘어서 다양한 종류의 암세포를 조기에 찾아내 제거할 수 있다. 우리 몸은 이미 표적항암제의 약점인 ‘다양성’을 보완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보유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메커니즘이 있음에도 왜 암 발생을 완전히 막지 못할까? 암세포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기만’하기 때문이다. T세포는 정상적인 세포는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T세포가 정상세포와 결합하면 정상세포는 ‘면역관문 분자’를 내보내 T세포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억제한다. 여기서 면역관문이란 면역세포가 면역반응을 본격적으로 시작할지 판단하는 반응단계를 말하며, 면역관문이 있기에 면역계가 우리 몸의 세포를 공격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그림 5. PD-1/PDL-1 치료제의 작용 메커니즘. 암세포가 면역체계를 속이지 못하게 차단함으로써 면역계가 정상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하게 한다. © 이원석 외/분당차병원

암세포는 정상세포의 이러한 메커니즘을 모방한다. T세포가 TCR을 통해 암세포를 인지하고 결합하면 암세포는 재빠르게 면역관문 조절 물질과 유사한 물질을 내보내 T세포를 속임으로써 정상세포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면역치료제는 암세포의 기만 메커니즘을 막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암세포가 면역관문을 조절하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인 PD-1/PDL-1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이 치료제는 T세포의 수용체에 다른 물질을 결합시켜서 PD-1/PDL-1이 수용체에 결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암세포가 T세포에 ‘가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도록 아예 연락수단을 차단해버리는 셈이다.



그림 6.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최근 모습. 카터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앓았으나 PD-1/PDL-1 면역치료제를 투여받고 완치됐다. 암 면역치료의 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 Larry McCormack, The Tennessean via USA TODAY Network


따라서 PD-1/PDL-1 치료제를 처방한 환자의 T세포는 정상적으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어 암 치료가 가능하다. 머크(MSD)의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와 BMS의 옵디보(Optivo, 성분명 니볼루맙)이 2014년 미국식품의약안전청(FDA)의 승인을 받고 현재 PD-1 치료제로 시판중이다. 특히 키트루다는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피부암인 ‘흑색종’을 완치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CTLA-4, LAG3, TIM3, TIGIT, VISTA 등 다양한 면역관문 조절물질에 대한 저해제가 개발되고 있다.

세포독성 T세포 자체를 항암제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환자의 종양 조직에 이미 침투한 T세포가 있다면, 이들은 환자 몸속의 암세포를 정상적으로 공격할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T세를 분리해서 배양한 후 환자에게 다시 투입하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환자의 종양에서 세포독성 T세포를 직접 분리하지 않고 혈관에 존재하는 T세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세포독성 T세포가 암을 공격할 때 T세포 표면에는 4-1BB라는 물질이 발현하는데, 이들은 혈관 속을 떠돌다 암세포가 발견되면 재빠르게 반응하는 ‘신속대응팀’ 역할을 한다. 4-1BB가 T세포와 암세포 양쪽 모두에 결합하는 ‘이중항체’로 작용해서 암세포만 빠르게 공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4-1BB를 보유한 세포독성 T세포의 혈중 농도를 높이면 환자의 종양에서 세포독성 T세포를 분리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암을 치료할 수 있다. 길리어드, 젠맙, 애드진과 같은 글로벌 회사는 물론 에이비엘바이오, 앱클론, 유틸렉스와 같은 국내 업체도 4-1BB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그림 7. 최근 주목받는 CAR-T 치료 메커니즘. 암세포를 활발하게 공격하도록 조작된 T세포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여러 차례 투약하지 않아도 된다. © 한국유전자세포치료센터/NIH


면역세포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입하지 않아도 세포독성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자극하는 방법도 개발중이다. T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할 때 CAR이라는 물질을 형성한다. CAR은 암 항원을 인지하는 TCR과 함께 작용해 T세포가 암세포를 죽이는 물질을 분비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T세포에 CAR가 형성되도록 직접 유도하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치료제가 최근 많은 주목을 받는 CAR-T 치료제다. CAR-T 치료제는 체내에서 증식하며 살아있는 약물로 작용하므로 한 번의 투여로 오랜 시간 항암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100건이 넘는 임상시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바티스의 킴리아(Kymriah)처럼 상용화된 약물도 등장했다.

이처럼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 치료에 큰 진전이 이뤄졌지만 아직 만능은 아니다. 면역계가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만큼, 면역체계를 이용한 치료법이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는 CAR-T 치료제도 신경계와 간을 손상시키는 과다면역반응인 ‘사이토카인 폭풍’을 부작용으로 유발해 이를 제어하는 방법이 연구 중이다.


그림 8. 세대별 항암제의 원리 개요. © 약사공론, 암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3세대 암 치료제-면역항암제, 2017

현대 사회에서 암은 대중적인 통념만큼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암을 극복하는 수많은 방법이 개발돼 왔으며, 현재에도 임상에서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오늘날 상당수의 암은 조기에만 발견하면 약물복용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암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생명과학과 의학이 넘어서야 할 산이다. 사람마다 달라서 예측하기 어려운 효능과 부작용도 해결해야 한다. 효과적인 암 치료법이 이미 많이 나왔음에도 수많은 연구기관과 제약회사가 암 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과학사를 전공하고 동아사이언스의 기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동아사이언스의 고경력 과학기자들이 의기투합해 독립한 동아에스앤씨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