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산기협 조찬 세미나
포스트 코로나 글로벌 경제 구조 변화와 중국과의 관계
지난 9월 10일, 제50회 산기협 조찬 세미나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강연은 포스코경영연구원 장윤종 원장이 코로나 이후 새롭게 전개될 메가트렌드와 글로벌 경제 판도 변화를 점검하여 한국 산업의 활로를 재정립하고 중국과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 방향에 대해 제시하였다.
변혁기에는 통찰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이번 강연은 코로나 이후 전개되는 글로벌 경제의 구조 변화 특징을 살펴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한국 산업의 활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현재 한국 산업이 전반적으로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중국과의 관계에서 기회와 활로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장윤종 원장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변혁기에는 통찰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무슨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현상을 보고도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known unknowns’ 상황은 현실에 비일비재하다.
윈도우 운영체제(OS)로 세계의 정보화를 주도했던 빌 게이츠가 아이폰을 보고도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상상해내지 못한 것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에 컴퓨터를 ‘집어 넣은’ 아이폰을 소개하면서 빌 게이츠가 지배한 데스크톱 시대의 종언과 자신이 새롭게 열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상상하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시점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TV 대담에서 만나 서로의 업적에 대해 칭찬을 했지만 당시 아이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장면이 마이크로소프트(MS)가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할 타이밍을 놓치고 주가가 바닥을 치는 경영위기를 맞게 되는 몇 년 후의 상황 전개를 예고한 것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예시는 세계적인 천재도 통찰력을 날카롭게 벼려 놓지 않으면 ‘보고도 보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봄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unknown knowns’ 상황도 있다. MS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새로운 CEO로 사티야 나델라가 2014년 취임하였다. 그는 세상이 클라우드 중심으로 변해 간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MS 사업의 핵심을 클라우드로 설정하고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였다. 이 사례는 ‘노이즈와 시그널’을 구분해내는 나델라의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나델라 CEO의 전략은 성공하였고 MS는 다시 과거의 영화를 되찾아 시총 선두그룹에 진입하였다. 코로나 이후 진행되는 구조 변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나델라 사례에서와 같이 노이즈와 시그널을 구분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known unknowns’의 상황에 빠지지 않으면서 ‘unknown knowns’ 상황을 만드는 통찰력을 갖추는 것이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기회 포착, 성공을 여는 관건인 것이다. 본 강연에서 장 원장은 글로벌 구조 변화의 특징을 수요 급감과 비대면 산업의 부상,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 미·중 갈등의 신냉전으로의 전개 등 네 가지로 제시하였다.
글로벌 구조 변화 1: 수요 급감과 비대면 산업의 부상
최근 전 세계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35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는데, 그 기세가 전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구조 변화의 가장 직접적인 양상은 수요 급감과 비대면 산업의 부상이다. 코로나 방역과 경기회복은 길항(trade-off) 관계로서 코로나 확진이 증가하면 수요 부진은 더욱 심해진다. 설상가 상으로 대규모 경제 위기 이후에는 대부분 이전의 추세를 회복하지 못하므로 코로나에서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경제는 저성장과 수요 부진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수요 부진은 기업들의 공급과잉 문제를 노출시켜 구조조정을 위한 생사를 건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한편, 방역과 봉쇄는 비대면 산업의 빠른 성장을 동반한다. 대표적으로 온라인 쇼핑, 온라인 교육/서비스, 비대면 핀테크 확산이 빠르게 전개된다. 또한 넷플릭스, 마켓컬리 등에서 보듯이 구독경제가 확산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수요 급감이 이루어지면서 전통산업 부문에서는 구조조정을 위한 생존경쟁이 격화될 것이며 비대면 산업에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구조 변화 2: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
코로나로 인한 구조 변화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에 의한 빅데이터 분석으로서 머신러닝의 보편화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사실, 2016년 알파고 이후 세계의 주목을 받은 4차 산업혁명은 벤처 붐을 조성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빅데이터 기술혁신에서는 획기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자율 주행 자동차의 더딘 혁신 템포가 대표적 사례이다. 그 와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비대면 산업이 크게 부상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다. 제조업의 서비스화(servitization)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신산업의 성장 또한 중요한 변화이다.
글로벌 구조 변화 3: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
파리협정에 따른 각국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만으로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탈탄소화(decarbonization)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하였다. 구체적으로 2050년에 순(net)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자는 ‘탄소중립 2050(Net-Zero 2050)’이 목표로 제시되는 모습이다. 최근의 주목할 움직임은 탈탄소 활동이 제도 차원의 논의를 넘어 시장경쟁의 핵심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폭스바겐은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2019년 11월 선언하였다. 배출가스 제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 제조에 소요되는 부품인 배터리와 강판을 생산할 때에도 온실 가스 제로를 실현하며 전기차 충전에 들어가는 전기도 신재생으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만약 폭스바겐 전기차가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면 탈탄소화는 경쟁의 핵심요소로 자리 잡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탈탄소화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글로벌 구조 변화 4: 미중 갈등과 신냉전으로의 전개
2018년 3월 시작된 미·중 무역 분쟁은 2019년 기술, 인력, 기업 등으로 디커플링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을 나타내었다. 2020년 1월에는 1차 무역협상 타결로 수습 모드로 전환하였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되고 양국 분쟁은 신냉전으로까지 치닫는 양상이다. 이처럼 격앙되는 분위기 속에서 미국은 화웨이, 틱톡 등 IT 첨단 분야에 속한 기업들에 대하여 심한 타격을 가하는 제재를 발동하였다. 현 상황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을 상정하기는 이르지만, 미국 대선 에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무역 분쟁 이전의 관계로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현 상황에서 중국의 활로는 4차 산업혁명의 빅데이터 신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것으로 국내의 풍부한 수요 기반을 십분 활용하여 자력갱생의 기술혁신에 사활을 걸고 매진할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의 국내 혁신 움직임과 EU의 중국과의 협력 시도 여부가 향후 지정학적 역학관계 변화의 관건이 될 것이다.
대중관계 개선을 위하여 글로벌 구조 변화를 활용
한국과 중국의 산업 관계는 2000년대 초중반 비교 우위에 입각한 상호보완성, 협력관계가 주류였으나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주력산업 전반에서 경쟁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중국이 12차 5개년 규획 이후 중국제조 2025, 인터넷+ 등을 통해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주력산업 구조 고도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이 중국의 직간접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조만간 추월 위기를 맞고 있다. 업종별로 석유·섬유·디스플레이·자동차 분야는 중국의 직접적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철강·기 계·가전·통신기기 분야는 부분적 위협, 조선 분야는 직접 위협과 역위협이 공존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경쟁관계에 처해 있는 국내 산업은 코로나로 인한 글로벌 구조 변화로 인해 새로운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첫째, 수요 급감에 따른 공급과잉이 심한 자본집약적 전통산업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 발전에 사활을 걸고 매진할 것이므로 국내 산업은 중국과의 혁신 경쟁과 협력을 적절하게 병행하는 한편, 중국의 접근이 어려워진 미국, 유럽과의 혁신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셋째,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신기술산업 발전에 필요한 신형 인프라 사업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기업들은 중국 진출을 통한 시장 확보와 기술협력에 적극 나서야 할것이다.
한국 산업의 기회와 활로는 주력 제조업에 있어
코로나 구조 변화에 대한 국가별 대응은 상이하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고 디커플링하면서 기존 우위를 유지하려는 전략이고 EU는 탄소중립 2050을 주도하면서 그린 기술 혁신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전략을 갖고 있다. 중국은 내수시장에서의 자력갱생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신기술 우위 확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각국의 전략은 자신이 보유한 우위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 산업은 경쟁우위가 제조업에 있으므로 디지털과 그린을 주력 제조업과 융합하여 제조업의 혁신산업화를 달성하고 제조업을 앞세워 세계와 경쟁하고 협력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윤종 원장
포스코경영연구원
프랑스 파리 10대학 경제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산업연구원 4차산업혁명연구 부장, 부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