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1

SK바이오팜, K-바이오산업의 역사를 쓰다

 



 

〈바이오산업 특별기획〉
Introduction: 세계에 보여준 ‘K-바이오’ 위상
① SK바이오팜, K-바이오산업의 역사를 쓰다
② 세계 최초 35분 이내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
③ 바이오의약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
④ ‘인바이츠헬스케어’,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한 고찰


 

2019년은 SK바이오팜㈜(이하 SK바이오팜)에게 매우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당사의 파트너인 Jazz Pharmaceuticals가 3월에 SUNOSI™(수면장애치료제)를 미국에서 승인받았고, 11월에는 SK바이오팜의 토종 신약 XCOPRI®(부분 발작 뇌전증 치료)가 미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전자는 대한민국 제약사가 개발해서 미국에서 승인받은 첫 번째 중추신경계 약물이 되었고, 후자는 약물의 개발과 상업화까지 모두 독자적으로 실현한 첫 번째 약물이니 대한민국 제약사의 의미 있는 깃발을 꽂은 한 해가 되었다.

두 약물 모두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였다. 십수 년전 대덕 R&D센터 시험관 안에 있던 화학물질들이 이제 버젓이 글로벌 상표를 입고 의약품이 되어 해외시장에서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XCOPRI는 SK바이오팜의 미국 현지법인인 SK Life Science가 직접 판매를 하고 있고, SUNOSI는 파트너사인 Jazz Pharmaceuticals가 판매하고 있다. 2개의 약물이 비슷한 시기에 승인을 받았지만, 다른 해외진출 전략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시장에 진출을 위해 어떤 점을 고민하여 전략을 구상하였을까?

두 약물에 대한 전략적 분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회사의 역량, 가용 재원, 임상의 특성, 약물과 그 시장에 대한 이해, 달성하고자 하는 회사의 목표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하여 최적의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약물, 임상, 시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약물 경쟁력 파악

약물의 경쟁력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약물인지 선별하는 인사이트가 가장 중요한 첫 단계라고 하겠다. XCOPRI는 처음부터 만만찮은 경쟁자가 있었다. 바로 뇌전증 치료 약물로 먼저 발굴되어 Johnson & Johnson에 기술 수출되어 개발되고 있는 Carisbamate였다. XCOPRI가 후보 물질로 탐색되어 미국 IND(임상시험계획)에 진입하기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계속 Carisbamate는 항상 경쟁 약물 레퍼런스로 인용되어 XCOPRI가 그보다 더 나은 약물인지 또한 차별성이 있는 약물인지 끊임 없이 검토하고 철저하게 점검하였다. 김연아 선수가 아사다 마오가 있어서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다고 말했던 것을 여기에 적용해보면, 경쟁 비교 약물을 바로 옆에 두고 늘 비교하며 개발 초기부터 Carisbamate와 비교하여 차별성이 있는 프로파일(profile)을 가진 약물이 아니면 아예 후보 물질 선상에서 제외하는 내부 선발전이 더 치열했기에 ‘A Game Changer’급의 뇌전증 약물 XCOPRI가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배경인 것이다.
 


그림 1. SK바이오팜의 토종 신약 XCOPRI®(부분 발작 뇌전증 치료)



내부 선발전에서 약물의 프로파일(profile)을 종합 하는 TPP(Target Product Profile)는 매우 중요하다. SK바이오팜이 신약 과제의 Go/No-Go를 결정하기 위해 운영하는 Stage Gate Model은 TPP를 세부 항목 별로 정하고 이것이 시장에서 어느정도 경쟁우위력을 가지는지 Minimum, Expected, Desired로 사전에 정해놓고 단계별 데이터를 가지고 이후 최종 분류하여 판단한다. 이때 단순히 실험실 데이터의 나열로만 기계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약물을 사용하는 의사들과 환자들, 특히 미국 시장의 경우 payer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실제 약물로서의 경쟁우위도를 반영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 약물뿐 아니라 다른 경쟁 약물의 전임상/임상 데이터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를 줄줄 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XCOPRI의 경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TPP의 항목은 ‘완전 발작 소실(zero seizures)’이였다. 일상생활에서의 발작을 줄여주는 것이 과거 통용되는 TPP에서의 척도였다면, 발작을 완전히 없애주는 것이 환자를 비롯한 시장의 진정한 지향점임을 이해하고 이 점이 임상에서 충분히 증명되도록 개발 전략을 수립하였다.

 

임상 전략

임상 전략은 위에서 언급된 TPP 항목이 임상을 통해 증명될 수 있도록 수립하여야 한다. 단, Regulatory에서 인정하는 endpoint에 대해 FDA(미국식품의약국)와 EMA(유럽의약품청)가 서로 다르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글로벌 임상 계획을 수립할 때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고 임상 설계를 해야 하는지 또한 달성 가능성을 면밀히 파악하여 임상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CNS(Central Nervous System, 중추신경계) 약물의 경우, 환자들의 느낌이나 기억에 의존하는 주관적인 피드백을 endpoint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뇌전증의 경우에는 발작의 빈도 수를 세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여 XCOPRI의 약효라면 상대적으로 다른 CNS 임상보다 적은 규모로 임상을 진행하고도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분석도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또한, 비록 Johnson & Johnson이 NDA(신약허가신청)까지 개발했던 Carisbamate가 최종 NDA 관문에서 추가 임상을 요청받아 결국 계약을 해지하고 약물을 돌려받는 뼈아픈 과정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대형 제약사가 뇌전증 약물을 개발하는 전체 프로세스를 경험한 것은 중요한 노하우 습득이었고, 이는 XCOPRI 개발에도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시장에 대한 이해

마지막으로 시장이다. 오랫동안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자하여 어렵사리 개발해온 약물의 마지막 단계이다. 제품의 TPP와 더불어 유통, 고객 응대, 약가 정책, 보험 제도, 마케팅 전략 등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는 단계다.

SK바이오팜은 이미 임상 데이터를 주목하여 보았던 대형 제약사와의 파트너십도 가능했지만, 독자 상업화의 길을 선택했다. 기존의 약물에서 효과를 보지 못한 난치성 뇌전증 약물로서의 call point를 분석한 결과, 미국은 약 2만 명의 신경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상업화 전략을 수립하면 150여 명의 상업화 조직으로 충분히 직접 상업화가 가능하겠다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물에 대한 이해와 임상을 통해 얻은 결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payer와 실제 처방할 의사들에 대한 복잡한 얼개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전략의 결과물인 것이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시장의 독자 상업화를 결정한 이후,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서 Arvelle Therapeutics 와 2019년 2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대형 투자자의 재원을 바탕으로 XCOPRI에 특화된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Arvelle을 선택하였고, 2020년 현재 EMA(유럽의약품청)가 MAA(시판허가신청)를 검토하고 있다. 유럽 다음으로 큰 시장인 일본은 현지제약사의 영업이 강세인 일본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여 Ono사와 2020년 10월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XCOPRI의 글로벌 시장 전략을 세밀하게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그림 2. SUNOSI TM (수면장애치료제)



그렇다면 파트너와의 전략적 제휴를 맺은 SUNOSI는 어떠했을까? 첫 번째 약물 경쟁력 파악 시 SUNOSI도 자랑할만한 경쟁력 있는 데이터가 분명히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 전임상 데이터에서 경쟁 약물로 지목하였던 타사 약물보다 기면증의 일반 동물 모델 및 유전자 조작 동물 모델 실험에서 우월한 데이터가 있었다. 하루에 여러 번 먹어야 하는 경쟁 약물에 비해 하루에 한 번만 먹어도 효과가 탁월하게 유지되는 환자 복용 편리성도 중요한 경쟁력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임상 전략에서 기면증이라는 적응증의 실질적인 임상 경험은 SK바이오팜에 없었다. 특히, 기면증이라는 적응증은 고가의 약물로 포지셔닝 할 수 있는 유리한 점도 있지만, 희귀적응증이라는 특성상 궁극적으로는 빠른 시간 안에 수면장애에 관한 미충족 수요(unmet need)가 있는 추가 적응증을 늘리는 개발 전략이 있어야 했다. 약물의 가치가 더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추가 적응증의 임상개발 또한 중요한 방향이었기에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기는 리스크가 적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시장 분석 결과에서도 기면증이라는 독특한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에 있는 소수의 1~2 플레이어가 있는 시장이기에 후발주자로서 뒤늦게 진입하여 이들과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전략적 제휴가 유리하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기면증 분야 1등인 Jazz Pharmaceuticals가 SUNOSI의 최종 개발자가 되어 기면증과 더불어 수면 무호흡증으로 인한 주간 졸림증으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동시에 P3 임상을 추진하는 적극적인 임상 전략을 추진했으며, 이미 시장에서 1등 제품인 Xyrem을 통해 압도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수면시장의 강자의 지위를 활용하는 것은 SUNOSI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십이었다.
 


그림 3. 2019 미국 뇌전증 학회에 참석한 SK바이오팜, SK라이프사이언스



K-바이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은 필수다. 궁극적으로 큰 시장이 있고 또한 해당 기술을 이어받아 끝까지 개발을 완성할 수 있는 거대 제약사와 자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직접 진출 혹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한 진출, 그 어느 것도 정해진 답은 없다. 치열한 고민 끝에 수립한 전략이 안내도를 제시하기는 하지만, 이를 실현해내는 것은 안내도에 나와 있지 않은 생각지도 않았던 고비마다 이슈들을 묵묵히 하나씩 해결해내고야 말겠다는 신약개발의 의지를 담은 리더십과 구성원의 실행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이는 K-바이오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글/신해인 팀장
SK바이오팜㈜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석사 후 SK에 입사하여 벤처투자 및 기술이전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SK바이오팜의 사업개발팀장으로 재직 중이며 SUNOSI와 XCOPRI의 파트너십을 직접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