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보여준
‘K-바이오’ 위상
〈바이오산업 특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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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 산업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내수시장만으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연구개발 및 인허가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높아서 투자 대비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기술경쟁력만이 아니라 마케팅을 위해 필요한 자본경쟁력, 대상 국가의 문화와 언어, 제도와 비즈니스 환경 등을 이해해야 하는 등 다양한 난관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 수출실적은 2018년 의약·의료기기 분야에서 82억 달러, 무역 수지는 2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이후 바이오시밀러 해외 수출이 급증했음에도 무역수지는 여전히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2019년에 들어서며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했다. 의약 분야의 경우, SK바이오팜이 간질치료제 혁신신약 ‘세노바메이트’로 미국에서 시판 승인을 획득했고, 2020년에는 유럽 지역에 5천억 원의 기술수출에 이어 일본에도 5,800억 원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아직 출시 초기이므로 현재까지의 매출액을 확인할 수 없으나, 미국 시장에서만 연간 5천억 원에서 1조 원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시장 진출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투자해야 하는 점과, 후기 임상과 마케팅에 투입되는 막대한 규모의 투자비용(3조 원 내외)으로 인해 해외 라이선싱이 유일한 비즈니스 전략으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2015년 한미약품을 필두로 대형 제약기업들이 1조 원대 이상의 글로벌 기술수출 5건을 달성한 이후, 매년 기술수출 실적은 증가세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기술수출의 경우 최종적으로 시장에 진출하기까지 약 50% 이상의 실패 가능성(계약 해지)을 가지고 있으며, 기술수출에 따른 실제 영업이익이 직접 판매하는 경우에 비해 약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SK바이오팜의 세노바메이트 미국 시장 진출은 우리나라도 이제는 라이선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진시장으로 직접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성공사례이다. SK바이오팜의 성공사례는 우리나라의 다른 제약기업들에 어떤 비즈니스 전략과 약물 개발 전략을 선택해야 해외시장 진출이 가능한지에 대한 가장 좋은 화두가 될 것이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성공적인 조기 방역시스템에 전 세계가 주목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 해외 수출이 폭발적으로 진행되었다. 2020년 6월, 코로나19 진단키트 해외 수출 허가 기업은 분자진단 분야에서 15개, 면역진단 분야에서 4개가 있다. 수출 대상 국가는 133개국이며, 2019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간 총수출액은 약 10억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이전 2018년 우리나라 의료기기 전체 수출액 규모가 4조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진단기기 하나만으로 1조 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이며, 의료기기 전체 수출액으로는 전년 대비 약 5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경우에도 내수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정보보호와 의료법상 각종 규제, 도시화 밀집 생활환경 등으로 인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 특히 공공의료 서비스 시스템이 잘 발달해 있어서 시스템 외부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원격진료 시범 사업을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가능성과 성장성을 가늠해보고자 했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동통신 3사의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진출, 일부 병원 및 IT 서비스 기업을 중심으로한 해외시장 진출 사례가 2019년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이 설립한 인바이츠헬스케어의 경우, 가장 큰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 진출했고, KT 역시 러시아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비교적 산업 성장 초기 단계이므로 가시적인 성과는 비교적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해외시장 진출시 극복해야 하는 진입장벽이 작을 수 있고, 향후 성장성은 의약이나 의료기기 못지않게 빠르게 확장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특별기획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진단키트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초점을 맞춰 헬스케어 산업 각 분야의 생태계를 진단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조명해 볼 것이다.
제약바이오의 경우, 라이선싱을 넘어서 해외시장 진출에 필요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마케팅에 필요한 조건들을 기준으로 개발해야 할 대상 질환을 특정하고, 의사나 보험사들의 처방행태를 고려한 약물 개발 설계도를 그리는 방식으로 연구개발 전략을 기획하는 것이 필수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이 기술 개발을 해왔던 경로와는 정반대이다. 약물 개발 전략의 변화와 함께 산업 생태계 역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코스닥 상장 혹은 라이선싱을 목표로 하는 생태계에서 해외 진출을 위한 생태계로 전환이 필요하며, 특히 자본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신약개발은 기술 경쟁인 동시에 자본력 경쟁이기도 하다. 정부의 연구 개발 지원금 2천억 원(신약개발 프로젝트에 지원되는 정부 연구개발비 연간 총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시에서 움직이는 수십조 원의 흐름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19 진단기기의 경우, 어렵게 해외 수출의 장벽을 돌파한 만큼 오늘의 경험을 장기적인 자산으로 이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전에서의 경험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이번에 맺어진 현지 파트너들을 활용하여 코로나19 진단기기를 넘어서 다양한 질환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기기와 서비스를 통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서 비즈니스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야만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경우 기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서비스의 문화·사회적 맥락, 제공되는 서비스의 콘텐츠가 더욱 중요하다. 아시아 시장을 놓고 중국과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중국을 매개로 중화권 혹은 아시아권 시장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도 좋다.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일종의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만큼 국내에서 개발된 진단기기, 의약품을 패키지로 묶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신약이나 진단기기는 개별적으로 해외 마케팅에 나설 경우, 지출해야 하는 비용과 노력이 막대하므로 디지털 헬스케어와 함께 혹은 차례대로 동반 진출하여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으로 고민해보는 것도 좋은 방안의 하나일 것이다.
글/김태억 대표
㈜리드컴파스인베스트먼트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기술경제학을 전공했으며, 기술사업화 및 제약기업 라이선싱 컨설팅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사업본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리드컴파스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재직 중이다.